“역시 삼성….” ‘이상호 X파일’을 계기로 삼성의 막강 법무팀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언론과의 전쟁’ 선포로 하나둘씩 베일을 벗고 있는 법무팀 규모가 웬만한 로펌을 방불케 하기 때문이다. 이는 참여연대가 지난 4일 삼성의 인적 네트워크 현황을 분석해 공개한 이른바 ‘삼성보고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과거 삼성을 조사했던 ‘스타급 검사’나 고위급 판사들이 상당수 ‘삼성맨’으로 변신해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 “삼성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지 못했으면 ‘잘 나가는’ 법조인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참여연대가 공개한 삼성의 인적 네트워크 중 법조계 출신은 총 59명. 이들은 학계나 언론계와 달리 삼성의 임직원으로 취업한 경우가 28명(47.5%)으로 가장 많았다. 그만큼 삼성과 끈끈한 결속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눈에 띄는 사실은 검사 출신이 판사나 변호사 출신에 비해 훨씬 많다는 점이다. 59명의 법조계 출신 인사 중 검사가 28명(47.5%), 판사 22명(37.3%), 변호사 6명(10.2%)이었다. 특히 특수부 출신 검사들이 삼성측으로부터 집중 로비를 받았다.

최한수 참여연대 경제개혁팀장은 “삼성이 특수부 출신 검사를 선호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면서 “이들은 기업 및 경제 관련 수사를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기업 비리를 방어하는 전술을 지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8월 세간의 이목을 모으며 ‘삼성맨’이 된 이종왕 전 수원지검 특수부장이 대표적인 케이스. 현재 삼성구조본 법무실장(사장급)을 맡고 있는 이종왕씨는 수원지검 특수부장과 대검 수사기획관 등을 지낸 엘리트 검사 출신. 이씨는 지난 99년 옷로비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박주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소환하는 문제로 수뇌부와 갈등을 빚다 옷을 벗었다. 이후 법무법인 김&장 변호사로 들어가 굵직굵직한 사건을 맡기도 했다. SK의 부당내부거래와 분식회계 사건을 시작으로, 대북송금 의혹사건, 현대그룹이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과 박지원 전 문화부장관에게 200억원과 150억원의 뇌물을 제공한 사건 등의 변호를 맡았다. 대선자금 수사 때는 SK와 현대, LG그룹의 변호를 맡았다.

2000년 이후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대사건’의 한복판에는 늘 이씨가 있었던 셈이다. 참여정부와도 인연이 깊다. 그는 노 대통령과 사시 17회 동기로 노 대통령 탄핵 국면 당시 해외에 머물다 급거 귀국해 대통령 쪽 변호인단에 합류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삼성의 입장에서는 이씨가 ‘믿을 만한 보험’인 셈이다 .서우정 삼성구조본 부사장 역시 서울지검 특수1부장을 거친 경제통이다. 지난 98년 세풍 관련 수사를 지휘한 경험도 있다. 이밖에도 이기옥 삼성구조본 상무가 린다김 사건을 수사한 경험이 있고, 엄대현 상무도 현대전자 주가조작사건을 맡았다. 김수목 삼성구조본 상무의 경우 DJ의 차남 홍업씨가 현대, 삼성 등 대기업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사건의 수사팀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다. 고위직 판검사 출신은 주로 재단이사(14명)나 사외이사(16명) 형태로 영입된 것도 눈에 띄는 부분. 송정호 전 법무부 장관은 현재 삼성전기 사외이사로 재직 중이고, 이종찬 전 서울고검장은 삼성SDI 인사팀 상무보로 근무하고 있다.

한 때 여성 대법관 후보로 거론되던 이영애 전 춘천지법원장도 현재 삼성생명 공익재단 이사로 재직 중이다. 이 밖에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법률고문으로 2002년 불법대선자금 모금을 주도한 혐의로 수감됐던 서정우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삼성중공업 사외이사를 역임했고, 김종건 전 법무부 차관과 최명부 전 대검중수부장도 한때는 제일기획 사외이사와 에스원 사외이사로 몸담았었다. 헌법재판소의 경우 윤영철 헌재 소장이 과거 삼성전자 고문(법률실장)을 지냈고, 고중석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도 삼성SDI 사외이사를 거쳐 현재는 삼성중공업 사외이사로 재직 중이다. 최근들어 판·검사 출신에 대한 삼성의 구애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 판사 출신 영입인사는 지난 79년 1명을 빼면 모두 97년 이후 삼성 식구가 됐다. 특히 최근 1~2년 사이에는 그 수가 급증했다. 법조계 출신 59명 중 14명이 지난해부터 올 상반기에 모두 영입됐다. 참여연대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삼성에 취업했거나 사외이사가 된 법조인은 2000년 5명, 2001년 5명, 2002년 2명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에는 2003년 4명, 2004년 10명, 2005년(7월 현재) 8명으로 과거보다 배 이상 늘어났다. 그룹경영과 관련한 법적리스크가 커진 것이 가장 큰 이유로 분석된다.이같은 삼성의 법조 출신 인사들에 대한 영입에 대해 일각에서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특히 일부 법조인사의 경우 삼성과 관련된 사건을 담당하다가 나중에 삼성으로 영입되는 사례도 적지 않아 논란의 소지가 되고 있다. 최한수 참여연대 경제개혁팀장은 “법조인들에 대한 삼성의 무차별적인 영입은 공직자윤리법 위반은 아니지만, 법조계 윤리상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김상균 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경우 이건희 회장과 삼성에버랜드가 관련된 소송의 담당 판사였다. 그러나 김씨는 사건이 계류 중인 상태에서 지난 2월 퇴직한 뒤, 한달 후에 삼성전자 소속 삼성구조본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해 12월 삼성구조본 부사장으로 취임한 서우정 전 서울지검 특수1부장 역시 한때 논란의 대상이 됐다.

서씨가 삼성으로 자리를 옮길 당시 특수 2부에서는 이재용씨가 연루된 ‘삼성에버랜드 CB 편법증여’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최 팀장은 “당시 서 부사장이 특수1부장으로 직접 수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직무 과정에서 수사 정보를 들을 수는 있는 위치에 있었다”며 “이같은 상황에서 서 부사장이 삼성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또 법조계 일각에서는 삼성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느냐가 ‘가치평가’의 잣대가 되고 있는 풍조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법조인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 중 하나가 삼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지 여부”라면서 “삼성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별 볼일 없다는 식으로 인식되는 게 요즘 법조계의 풍토”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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