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초동 남부터미널 일대가 최근 ‘맥주전쟁’에 휩싸였다. 하이트맥주가 서초동 일대 호프가게에서 터줏대감으로 자리매김했던 오비맥주의 ‘카스’를 서서히 밀어내면서 서초동 상륙작전을 시작하고 있어서다. 이에 자존심이 상한 오비맥주도 “본사 인근에서 하이트맥주가 팔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수성에 나서고 있다. 맥주공급권을 둘러싼 주류대전 1차전이 벌써 서초동에서 시작된 셈이다. 남부터미널 지역 인근 상권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생맥주 전문점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주류1번지’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곳이 주류1번지로 불리는 진짜 이유는 남부터미널 일대를 중심으로 국내 최대규모의 소주회사인 ‘진로’와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오비맥주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서초동 남부터미널 일대는 주류관계자들 사이에서 “오비맥주의 ‘카스’, 진로 ‘참이슬’의 ‘성역’”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이트 “서초동을 공략하라”

이 일대에서 생맥주를 다량 판매해 소위 A급 업소로 분류되는 대형 생맥주집은 약 8개 정도. 소형과 중형 생맥주 집까지 모두 합치면 150여개 가까이 되는 그야말로 주류 타운이다. 특이한 점은 거의 모든 주류업소에 오비맥주와 진로만이 있을 뿐, 다른 종류의 술이 거의 없다는 점. 앞서 말한 대형 A급 8개 업소 역시 모두 카스 생맥주를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곳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오비맥주의 성역이라는 이곳에서 최근 하이트맥주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서다. 이 일대 생맥주 가게 업주들에 따르면 “최근 들어 손님들이 카스가 아닌 하이트를 찾는 경우가 늘고 있다”면서 “생맥주 브랜드를 바꾸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하이트맥주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하이트 생맥주 가맹점도 간간이 눈에 띌 정도다. 오비맥주가 절대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던 이곳이 흔들리게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이에 주류업계 관계자들은 “하이트맥주가 진로 인수를 추진하면서 진로직원들이 본사지역인 서초동 일대에서 하이트맥주를 찾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즉 하이트맥주라는 새주인을 맞이한 진로 직원들이 서초동 일대 단골 술집들에서 하이트맥주를 찾기 시작하면서 오비맥주의 지배력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

OB맥주 “하이트를 막아라”

오비맥주 일색이던 서초동 일대 생맥주 가게들 중 몇 곳은 이미 하이트맥주로 간판을 바꿔 단 상태다. 한 생맥주가게 업주는 “근래에 진로직원들이 ‘하이트’를 찾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면서 “어떤 손님들은 밖에서 사와 마시기도 할 정도”라고 말했다. 하이트맥주 관계자도 서초동의 변화에 대해 같은 반응이다. 그는 “최근 서초동 일대에 생맥주 공급량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며 “과거에는 거의 전무했지만, 지난 6월부터 서서히 주문량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오비맥주도 반격에 나섰다. 성역이라 자부하며 소홀했던 서초동 지역에 대한 판촉활동을 대폭 강화하기 시작한 것. 이로 인해 오비맥주 서초동 본사 직원 전원이 매일 남부터미널 주변의 생맥주 업소들을 돌면서 기존 생맥주 가맹점들에 대해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홍문순 오비맥주 영업부사장은 최근 사내 이메일을 통해 “사내 커뮤니케이션 강화 차원에서 매일 퇴근 후 회사 1층 펍에서 실시하던 맥주 파티를 하이트맥주 진입 방어 차원에서 인근 업소에서 해 판촉전을 강화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하이트-진로 시너지효과 서초동부터

하이트 가맹점들에 대한 적극적인 유혹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관계자들은 “오비맥주로서는 본사 인근에서 경쟁사 맥주가 팔리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인데, 기존 자사 가맹업소들을 경쟁사 업소로 고스란히 넘겨주는 것은 더더욱 안된다는 비장한 현실인식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경쟁 주류업체들이 우려했던 하이트와 진로 결합의 시너지 효과가 서초동에서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 “한식구 됐으니 한울타리 써야지”

하이트맥주가 서초동으로 옮겨갈 것이란 주장이 재계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현재 하이트가 입주한 청담동 본사 건물을 팔고, 서초동 진로본사 부근으로 이전할 것이란 것이 ‘하이트 이전설’의 전모. 주류시장을 통합 지휘할 헤드쿼터가 필요한 데다, 진로 인수로 빡빡해진 유동성에도 다소 숨통이 트일 수 있다는 게 배경이다. 하이트와 진로도 이 같은 소문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하이트 관계자는 “아직 인수추진단의 내부 실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라 뭐라고 확실한 대답은 할 수 없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며 본사 이전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본사가 아니라도 현재 위스키 계열사인 하이스코트가 이전할 수 있다”고 말해 일부 이전 가능성도 점쳐진다.진로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진로관계자는 “이번 인수로 인해 양사간 공조체제 구축이 불가피해졌고, 하이트의 청담동사옥은 공간이 부족한 만큼 하이트가 굳이 청담동 사옥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하이트의 새로운 사옥후보지는 어디일까. 가장 유력한 이전 대상지로는 진로본사 앞 오키즈건물(옛 아크리스백화점). 이 건물 8∼18층은 진로 소유인데다 얼마 전 리뉴얼까지 마친 상태여서 이전 최적지로 꼽히고 있다. 특히 남부순환로와 남부터미널역을 끼고 있어 교통과 위치 등 모든 면에서 기존의 청담동사옥보다 뛰어나 양사의 업무 시너지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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