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한 A씨(주취자)의 모습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경찰이 이런 일까지 개입해야하느냐. 이건 사장(점주)과 이 사람(주취자)의 책임이지 우리가 개입할 수 없다.” 서울시 성동구에 위치한 한 주점에서 주취자가 계산을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점주가 다급하게 부른 경찰이 내놓은 대답이다.
 
현장에는 관할 지구대의 경찰 2명이 출동했다. 경찰은 현장 상황에 대한 조사 함께 필요하다면 중재까지 나서야 하지만, 주점 내부로 들어선 한 경찰관은 불만 섞인 표정과 말투로 “누가 신고했냐”, “왜 불렀냐” 등의 말을 반복했다.
 
점주는 경찰에게 “고객이 술에 취해 계산을 못하고 있다”면서 “(주취자의) 일행마저 말도 없이 가버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집이라도 찾아서 보낼 수 있게 가족의 연락처를 알아봐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경찰은 “개인정보보호법에 의거해 도움을 줄 수 없다. 경찰이 이런 일까지 개입해야하느냐”고 말했다.
 
앞서 주취자(이하 A씨)가 있던 테이블에서는 그와 일행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갑자기 ‘주르륵’ 소리와 함께 액체가 쏟아졌다. A씨의 일행이 맥주 500cc잔을 뒤엎은 것. 술에 취한 탓이다. 

시간이 좀 더 흐른 뒤 일행은 화장실을 간다며 나가다 주점 입구 유리문에 머리를 박았다. 출입문 오른쪽에는 자동문 버튼이 있었지만 술에 취해 누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장실을 다녀온 후에도 출입문을 들락날락 거렸다. 

결국 일행은 A씨를 두고 사라졌다. A씨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고개를 푹 숙인 채 일명 ‘헤드뱅잉’을 하고 있었다.
 
1시간여 쯤 흘렀을까. 마감시간이 다가온 여성 점주가 잠이 든 A씨를 깨웠다. 점주는 주점에서 혼자 일하고 있었다. 

점주는 A씨에게 “마감시간이다. 일어나야 한다”며 반복해 말했지만 A씨는 미동도 없었다. 결국 점주는 A씨를 흔들어 깨으려 했지만 그는 고개만 끄덕거리고 다시 고개를 떨궜다.
 
주점에는 여성 점주, 다른 테이블 남성 손님 2명, A씨 등 총 4명만 있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한 남성(이하 B씨)이 A씨를 깨워 계산대 앞으로 향했다. 

A씨는 지갑에서 여러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꺼냈다 넣었다를 반복하며 시간을 끌었다. 이후 A씨는 점주에게 2개의 카드를 건넸다. 결제를 해봤으나 ‘한도 초과’라는 글귀만 되돌아 왔다. 

B씨는 옆에서 지켜보던 중 아직 결제를 하지 않은 1개 카드가 남아있는 것을 보고 그 카드로 결제할 것을 권유했으나 주취자는 눈을 치켜뜨며 “이 XX 걸리적 거리네 XXX” 등의 욕설을 퍼부었다. 

A씨는 점주에게 위협적인 말투로 말하기도 했다. A씨는 본인 테이블 자리에 앉았다가 다시 계산대로와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수십 번. 마감시간은 훌쩍 지나고 점주도 사태가 심각해지는 것을 느껴 결국 경찰을 불렀다.
 
경찰청의 신고 접수 답변 문자 <사진=점주 제공>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식의 주장을 늘어놓았다. 오히려 사소한 일로 신고를 했다고 질타하는 모양새다. 경찰은 점주에게 “그럼 (A씨를) 무전취식으로 체포하느냐. 그럼 (점주가) 경찰서까지 따라 가야한다. 괜찮느냐”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
 
A씨 때문에 1시간여 동안 불편을 겪었던 탓일까. B씨의 일행은 경찰에게 “시민을 보호해야할 경찰이 뭐하는 것이냐”며 소리를 질렀다.
 
B씨는 일행을 말리며 경찰에게 자세한 상황을 설명했다. B씨와 일행이 잠시 나가 얘기를 하던 중 경찰이 뒤따라 나왔다. 

경찰은 B씨와 일행에게 “요즘 세상이 바뀌어서 그렇다. 좀 이해해달라”고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연이어 점주도 밖으로 나오자 경찰은 “이분들(B씨와 일행)에게 고마워해야한다. A씨의 핸드폰으로 아내에게 연락을 해 놨다. 밑에서 대기하고 있겠다”며 자리를 피했다.
 
경찰이 내려가고 점주는 B씨에게 “고마워하는 건 내가 개인적으로 할 일이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아무런 조치도 못해주면서 왜 엉뚱한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 했다.
 
몇 분쯤 흘렀을까. 경찰 한 명이 올라와 점주에게 “다른 신고가 들어와서 가야한다. (점주의) 연락처를 달라”며 A씨와 점주를 두고 떠났다. B씨와 일행은 A씨의 아내가 올 때까지 주점 내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당시 시간은 새벽 3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이러한 상황은 A씨의 부인이 오면서 종료됐다. 부인은 점주에게 돈을 건네며 자세한 경위를 물었다. 점주가 모든 내용을 설명하자 한숨을 쉬며 자리를 떴다.
 
A씨는 “계산을 해야 한다”는 거듭된 점주의 요청에도 모든 짐을 들고 “화장실을 가야한다”면서 주점 밖으로 나서려 했던 점, 점주와 B씨 등에게 위협적으로 행동한 점 등을 비춰볼 때 경찰은 충분한 상황 설명을 듣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책임을 질 수 없다는 논리로 “왜 신고했냐”는 말만 되풀이했다. 

경찰의 미온적인 태도는 분명 문제가 있다. 주취자 업무 처리로 인해 경찰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신고자가가 피해를 받을수 있다는 점도 이해는 되지만 국민의 신체‧생명‧재산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경찰이 이렇게 소극적인 자세로 사건을 대한다면 과연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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