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회장이 한때 ‘해신(海神)’을 꿈꾸었다는 사실은 재계에서도 아는 사람이 드물다. 김 회장은 지난 80년대 초 알짜배기 해운업체 두 곳을 거느리면서 업계 쟁패를 꿈꿨다. 그러나 84년 단행된 해운산업합리화 조치로 이같은 꿈은 물거품이 됐다. 이 과정에서 김 회장은 고초를 겪기도 했다. 범양상선과의 인수·합병(M&A)이 한창인 상황에서 박건석 전 회장이 자살해 버린 것. 이로 인해 김 회장은 검찰조사를 받는 등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다. 다음은 김우일 전 대우구조조정본부장이 털어놓는 일화 한토막.

김 전 본부장에 따르면 김 회장은 평소 해운업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세계 경영을 위해 해운업은 필수라고 판단해서다. 특히 대우그룹의 경우 자동차 수출물량이 많기 때문에 의욕적으로 해운사업에 진출했다. 김 회장은 70년대 말부터 해우선박과 대양선박을 차례로 인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 84년 단행된 해운산업합리화 조치로 김 회장의 계획은 이뤄지지 못했다. “당시 두 회사가 거느린 대형 선박만 수십척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지시로 해운업계가 통폐합되면서 회사를 울며 겨자먹기로 넘겨야 했습니다.”매각 상대는 범양상선. 즉시 실사팀이 구성됐다. 6개월여 동안 실사를 벌인 끝에 두 회사의 부실 규모는 100억원으로 평가됐다. 그러자 범양상선이 매각 대금 265억원 중 100억원을 공제할 것을 요청했다. 물론 대우그룹은 터무니 없는 요구라며 반박했다.

그러는 사이 양사의 협상은 지지부진하게 흘러갔다. 이때 김 회장이 내놓은 아이디어가 장부에 없는 부외자재 리스트를 만드는 것이었다. 자체적으로 부외자재를 추산해본 결과 150억원 정도라는 계산이 나왔다. 이때부터 김 회장은 당초 매각대금인 265억원에 50억원을 보태 315억원에 매각하겠다고 엄포를 놓기 시작했다. 결국 양사는 범양상선이 20억원을 대우측에 추가 지급하는 선에서 협상을 마무리했다. 물론 추가된 20억원은 비공식 루트를 통해 받았다. “당시 범양상선에 추가로 요구한 부외자재 대금 20억원은 장부에 나와있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공식적으로 돈을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대신 이 돈은 비자금으로 조성해 그룹 경비에 사용했습니다.” 대금은 계약금 26억5,000만원에, 중도금 100억원, 잔금 100억원을 지급하는 식으로 합의했다. 문제는 여기서 불거졌다. 계약금만 치른 상태에서 대양상선이 양사의 합병공고를 내버린 것. “당시 양사는 잔금이 완납될 때까지는 합병을 못하도록 계약서에 명시했습니다.

이것을 조건으로 경영권을 넘겨줬습니다. 그런데 대양상선이 허락도 없이 합병 발표를 해버린 것이죠. 미국에 출장 중인 회장에게 보고를 했더니 불호령이 떨어지더군요. 당장 합병무효 소송을 진행할 변호인단을 구성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대우측은 우선 약속대로 잔금을 지급하라고 지속적으로 압박을 가했다. 그러나 범양상선측은 ‘배째라’ 식으로 버텼다. 해볼테면 해보라는 것이었다. 이러는 사이 중도금 상환 날짜가 다가왔다. 범양상선측은 지불을 미루더니 결국은 3개월짜리 어음을 끊어줬다. 3개월이 지나 어음 만기가 돌아왔지만 여전히 막무가내였다. 그렇다고 해서 어음을 돌릴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랬다가는 회사가 부도나 보증금과 잔금까지 받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김 회장은 게릴라전을 택했다. 김 전 본부장을 중심으로 건장한 청년 20여명이 매일 범양상선 사무실에 진을 쳤다. “회사 영업이 안되니까 결국은 연장어음을 끊어주더군요. 15일에 자금 들어오니까 그때 가서 모두 처리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또다시 불거졌다. 어음 만기를 앞두고 범양상선 박건석 회장이 10층 사무실에서 투신자살한 것. 박 회장의 죽음은 비자금 사건으로 증폭됐다. 회사 임원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찼다. 범양상선도 은행관리에 들어가는 등 급속하게 기우뚱거리기 시작했다. 검찰은 범양상선의 모든 자산과 부채를 동결했다. 대우의 어음은 법정관리가 있기 직전 결제됐다. 이로 인해 대우그룹도 검찰의 조사를 받는 등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다는 게 김 전 본부장의 귀띔이다. “어음 결제는 근거가 있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장부에 없던 돈 20억원이 터질까봐 조마조마했습니다. 다행이 이 문제는 검찰에서 터지지 않아 큰 문제 없이 넘어갔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 박건석 회장 사건은(?)

지난 87년 4월 19일 일요일. 신문 지면을 통해 박건석 회장의 자살 소식이 알려졌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10층 사무실에서 창문을 열고 투신자살한 것. 박 전 회장의 자살 소식은 재계는 물론, 정계까지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특히 “O사장은 인간이 되시오. 천벌을 받습니다”라는 유서 내용은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당시 검찰은 해운경기 불황으로 1조여원의 빚이 있는 데다, 외화도피와 탈세 혐의로 국세청 조사를 받는 부담 때문에 자살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박 전 회장은 부친이 운영하던 석유판매대리점(미륭상사)의 자산을 종자돈으로 범양상선을 창업한 뒤, 수년 만에 굴지의 대그룹으로 키운 장본인이다. 그런 그가 그만한 일(?)로 자살할 리가 없다는 소문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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