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잠행했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1년 4개월의 침묵을 깨고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달 수필집 ‘황교안의 답(청년을 만나다)’을 발간한 황 전 총리는 최근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공교롭게도 여론조사에서 범보수 진영 차기 대권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한 다음이었다. 자유한국당 친박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황 전 총리의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위한 신호탄이 아니냐는 해석이다. 이미 정치권 안팎에서는 김병준 비대위가 막을 내리는 내년 초 전당대회에서 당권에 도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권 도전설도 불거졌다.

그동안 황 전 총리는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대권 후보부터 서울시장 후보 등에 거론됐지만 일절 나서지 않았다. 언론과의 공식 인터뷰도 하지 않고 페이스북을 통해 현안에 대한 입장을 간간히 밝혀 존재감을 알렸다. 정치권 언저리에 머물면서 ‘정치’와는 선을 긋고 있었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과 총리를 지낸 꼬리표 때문이다. 정치적 상황은 크게 바뀐 것이 없다. 다만, 변한 것은 황 전 총리다.

그는 출판기념식장에서 대권 도전 여부에 대해서는 “많은 얘기를 듣고 있다”고 했고 당권 도전에 대해서는 “지금은 청년을 챙겨야 할 때”라며 즉답을 피해갔다. 대선은 2022년 5월에 있다.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는 내년초에 개최될 전망이다. 황 전 총리가 대권에 관심이 있다면 너무 이른 ‘조기등판’이다. 그렇다면 내년 전당대회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대권 도전 여부는 그 다음이다.

황 전 총리의 행보를 보면 고건 전 총리를 반면교사로 삼고 있는 모습이다. 고 전 총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총리로서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무난하게 수행했다. 이로 인해 그는 2005년 초 지지율을 30%까지 끌어올렸고 2006년까지 한나라당 이명박-박근혜 후보와 맞설 유일한 여권 후보로 자리매김했었다. 여권 후보는 즐비했지만 이명박·박근혜 후보에 비하면 도토리 키재기 수준이었다.

‘고건 신드롬’까지 생기면서 대세론의 중심에 있었지만 정치 기반을 잡지 못한 채 2007년 초 출마를 포기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고건 총리 기용은 결과적으로 실패한 인사”라며 힘을 실어주지 않았고 고 전 총리의 지지율 하락을 부채질한 바 있다.

고 전 총리는 2007년 1월 16일 대선 출마 포기와 정치활동을 접겠다고 선언하면서 “현실정치의 한계를 느꼈다”, “우리나라 선거 정치사에 있어서 제3후보나 선거용 정당의 전철을 초래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황 전 총리와 고 전 총리의 공통점은 야권 내 마땅한 대선 후보가 부재하다는 점, 관료 출신으로 현실정치 경험이 부족하고 정치적 기반도 없다는 점이다. 다른 점은 황 전 총리는 친박 세력과 태극기 세력을 등에 업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를 받을 공산이 높다. 따라서 오갈 데 없는 친박계 의원들이 우군이 될 수 있는 데다 대구·경북이라는 탄탄한 지역 기반을 챙길 수도 있다.

무엇보다 제3지대에서 보수 대안 세력을 통합해 제3후보로 나서는 게 아닌 기존 정당에 참여해 당권을 거머쥐고 세를 모아 대권에 도전한다면 확실하게 고건 전 총리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과의 차별화된 전략이다. 반 전 총장은 2017년 조기 대선에서 늦장 출마에 여도 야도 아닌 대통합을 내걸고 무소속으로 나왔다가 출마 선언문 잉크도 마르기 전에 중도 하차했다.

황 전 총리의 첫 번째 무대는 내년 초가 될 전망이다. 충분히 베팅해 볼 만하다. 현재 거론되는 한국당 내 당권·대권 출마자로 새로운 인물이 영입될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고 과거 관료출신 대권 주자들이 기대했던 추대나 대세론으로 넘어가려고 해선 안된다. 필패다. 정면승부를 해야 할 것이다. 정치는 도박꾼의 아수라장이 아닌 승부사의 냉정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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