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는 삼성과 현대차 그룹 등 38개 재벌 총수 일가의 지난 10년간 지분 취득과 변동 내역을 조사,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참여연대가 지난 4월 6일 발표한 ‘38개 재벌 총수 일가의 주식거래에 대한 보고서’에는 총수 일가가 재산을 급격히 불리는 데 활용한 수법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참여연대가 조사한 방식은 회사기회의 편취, 지원성 거래, 부당주식 거래 등 편법거래가 지주회사와 총수일가 간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특히 상식과 합리를 벗어난 계열사 간 거래를 통해 이들 재벌 총수 일가만이 배를 불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 4월 1일 공정거래법에 의해 지정된 55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자산 2조원 이상)중 지배주주가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38개 그룹에 대해 회사기회의 편취(Usurpation of Corporate Opportunity), 지원성 거래, 부당주식거래 행위에 대해 분석했다. 경영진 및 지배주주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회사의 이익을 가로챈 ‘회사기회의편취’를 한 혐의를 받고 있는 기업은 현대차그룹의 글로비스, SK그룹의 SK C&C, 신세계그룹의 광주신세계와 조선호텔베이커리, 효성그룹의 효성건설, STX그룹의 STX건설, KCC그룹의 코리아오토글라스, 하이트그룹의 하이스코트 등이다.

38개 그룹 부당행위 ‘정밀분석’

이들 기업들은 기존 사업 부문을 분할하가나 밀접한 사업연관성(line of business)이 있는 회사(주로 비상장 회사)를 신설한 후 회사에 이익이 될 수 있는 사업기회를 봉쇄하고 사적 이득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계열사와 사업 연관성이 크게 밀접하지 않은 회사를 설립한 후 총수 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기업에 물량을 밀어주는 ‘지원성 거래’가 많이 나타났다. 대표적 사례는 현대차그룹의 엠코, 대한전선그룹의 삼양금속, 그 외 각 그룹이 대부분 계열사로 두고 있는 광고회사, IT회사, 건물관리회사 등이다. 또한 경영권 승계 등 오너일가의 이익을 위해 현재가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주식 또는 CB, BW등 주식연계 증권을 발행하여 회사에 손실을 끼친 부당주식거래도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그룹의 삼성에버랜드·삼성SDS·e삼성, LG그룹의 LG석유화학, 두산그룹의 (주)두산,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아시아나아이디티, 현대산업개발그룹의 현대산업개발, 하이트맥주그룹의 하이트맥주 등이 그 대표적 기업으로 꼽힌다.참여연대의 한 관계자는 “상장회사에 초점을 맞춘 그간의 지배구조 개선 노력이 한계를 드러냈다. 상장회사는 외부의 감시와 견제가 작동할 가능성이 높은데 반해 비상장사의 지배구조는 취약하다. 회사기회의 편취와 지원성 거래는 상장 주력회사의 사업기회 및 이익을 총수일가가 지배하는 비상장사로 옮겨가는 편법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비상장회사의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실체법적·절차법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배구조 개선 시급해

삼성그룹(이건희 회장)은 문제성 거래건수가 10건으로 가장 많이 드러났다.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 작업 과정에서 총 8건의 부당주식거래가 발생했다. 삼성전자 CB 발행 건을 제외한 나머지 9건은 모두 비상장회사를 이용했다. IT관련 사업에서 2건의 회사기회(가치네트, 서울통신기술)를 편취했다. 이재용이 경영하던 e-삼성의 손실을 계열사가 떠안는 방식으로 부당주식거래를 했다.현대차그룹(정몽구 회장)은 최근 ‘회사기회의 편취’ 수법을 가장, 전형적으로 그리고 가장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회사기회의 편취 사례는 글로비스, 오토에버시스템즈, 위스코, 본텍 등이고, 지원성 거래는 건설사인 엠코 등 1건이다. 광고업체 이노션에 대한 비중이 커져가며 향후 지원성거래 금액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LG그룹(구본무회장)은 지주회사체제의 특성상 총수일가와 계열사간의 주식거래 가능성은 낮다. 지난 2002년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기 이전의 3건의 문제성 거래(LG석유화학, LG홈쇼핑(현 GS홈쇼핑), LG애드)를 제외하면, 그 이후에는 LS그룹의 파운텍(2004년 설립) 1건뿐이었다.

SK그룹 ‘고전적 수법’

SK그룹(최태원 회장)은 SK C&C, 와이더댄, 이노에이스 등은 ‘회사기회의 편취’의 고전적 사례로 분석되고 있다.SK C&C는 회사의 사업 성장성과 수익성의 기반이 확보된 시점에서, 계열사가 보유했던 회사의 지분을 지배주주가 인수하여, 계열사의 기회를 편취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설립 당시 SK C&C의 지분은 SK(주)와 SK건설이 100%를 보유했다. 그러나 1994년 SK그룹이 SK텔레콤을 인수하여, SK C&C가 SK텔레콤과의 거래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회사가 성장하고 수익을 창출하게 된 시점인 1994년과 다음 해인 1995년에, 지배주주인 최태원 회장 일가(최태원 회장, 최종현 전회장의 사위인 김준일 이사. 이후 김준일 이사의 지분은 SK네트웍스와 최기원씨가 인수)는 SK(주)와 SK건설로부터 각 각 보유하고 있던 70%와 30%의 SK C&C지분을 주당 400원에 인수했다.2002년 12월, JP모건과의 이면계약으로 인해 SK증권이 입은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최태원 회장이 SK C&C 지분 4.5%를 SK증권에 증여했다. 당시 주당 가격을 58만6,000으로 평가됐다.한마디로 회사사 성장할 가능성이 커지자 최태원 회장 등 총수일가가 주식을 싸게 매입하여 시세 차익을 얻었다.

광주신세계 5백억 시세차익

신세계그룹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녀인 이명희 회장이 지배주주로 있는 신세계그룹의 광주신세계와 조선호텔베이커리는, 회사의 사업부문을 별도법인으로 설립한 후 사업관련성과 거래처 확보로 인하여 안정적인 수익성이 보장된 계열사의 지분을 지배주주의 자녀가 인수하여, 회사의 유망한 사업기회를 지배주주가 편취하고, 편법적인 부의 상속이 이루어졌다.광주신세계는 지난 95년 신세계의 100% 지분 출자로 광주광역시에 별도법인으로 설립했다. 당시 자본금이 5억원에 불과했던 광주신세계는 1998년 4월 주당 5,000원에 총 25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하는데, 이 때 신세계가 불참하고 지배주주인 정명희 회장의 아들인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이 인수하여, 지분 83.33%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됐다.

5대 광역시 중 하나로 인구수에서 국내 6위인 광주광역시와 그 배후지를 시장으로 하는 광주신세계는 신세계의 브랜드를 이용하고 구매라인도 공유하여 설립 2년만인 지난 97년 이미 55억 8,500만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면서 당기순이익으로 33억 6,600만원을 얻었다.광주신세계는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했고, 2002년 주당 3만 3,000원에 거래소시장에 상장했다. 이로써 정용진은 수 억원대의 상장차익을 확보한 셈이다. 한편 2006년 3월현재 광주신세계의 주가는 신세계그룹이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이마트 신설 및 광주터미널 대규모 쇼핑타운 건설계획 등에 힘입어 13만원대를 호가하고 있다. 광주신세계를 신세계의 지점으로 하거나, 적어도 광주신세계의 유상증자 당시 정용진 부사장이 인수하지 않고 신세계가 인수하였더라면, 정용진 부사장이 취득한 주식평가차익 및 배당이익 등은 모두 신세계가 취득할 수 있었던 이익일 것이다.

STX 편법 거래 통해 성장

신흥 재벌로 등장한 STX그룹은 회사기회의 편취와 지원성 거래를 통해 성장하고 있다. 기존 계열사의 사업부문을 분할하여 회사를 신설하면서 지배주주가 지분을 취득하고, 계열사와의 거래를 통해 영업규모 및 이익을 확대하고, 부실기업(구 쌍용중공업)의 임원이었던 지배주주가 경영권을 장악한 이후 최근 사업영역 및 계열사 수를 늘려가고 있다.참여연대의 한 관계자는 “불법 부당 거래는 상법과 세법 등 관련 법의 허점을 약용하고 있다. 정부가 지배주주는 물론 회사보다는 오너 일가의 사익에 매달리는 경영진의 부당행위를 근절하고 엄단할 수 있도록 법 보완,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무엇보다 투명 경영이 최고의 해법이다. 재계는 이번 발표를 편법 상속에 대한 경종으로 받아 들여 거듭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