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로비 의혹 재판 참관기


현대차 로비의혹 사건 재판과 관련한 진실게임이 증인들의 엇갈린 진술로 미궁으로 빠질 조짐이다. 지난 10월 9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법정에서 열린 전 안건회계법인 김동훈 대표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등 주요 증인들이 참석해 검찰과 설전을 벌였다. 특히 김동훈씨의 진술이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을 비롯한 다른 피고인들의 진술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부실채권을 탕감받기 위해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를 로비한 혐의로 기소된 현대차 로비의혹 사건은 겉돌 전망이다.


이날 재판에는 회계사 한 모씨를 비롯한 8명의 증인이 소환됐다. 법정에 나선 피고인은 김씨를 포함한 9명. 현대차 로비 공판은 원래 3개의 사건으로 분류되었으나, 3건 모두 안건회계법인 대표 김씨가 연루된 사건이기 때문에 하나로 병합됐다.
재판 시작과 함께 이종석 부장판사는 10월 10일자로 알선수재 혐의를 받고 있는 김동훈씨의 구속영장이 만료됨에 따라 구속영장 연장 재발부를 알렸다.
또 재판의 쟁점이 되고 있는 뇌물을 전달한 현장에 대해 검증을 실시키로 했다. 검찰은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과 박상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가 김씨로부터 서울 강남의 일식집 등 2곳에서 뇌물을 전달받은 현장검증을 실시키로 한 것.

증인들 기소내용 전면 부인
현장검증은 당시 돈을 건넸다고 진술한 시간과 유사한 시간대에 변호인을 포함한 최소한의 인원만 참석 하에 열기로 했다. 이는 지난달 18일에 비공개로 진행된 ‘샘소나이트 가방’을 이용한 현금조달 과정의 현장검증 이후 두 번째로 실시하는 것이다.
한편 현금 1억원을 담을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던 샘소나이트 가방을 이용한 현장검증 결과에 대해서도 검찰과 변호인 측의 공방이 계속됐다.
현장검증 당시 첫 번째 시도에서는 변호인이 가져온 샘소나이트 가방에 2,000원의 돈뭉치 5개가 들어가지 않아 가방이 닫히지 않았으나, 검찰측이 돈뭉치의 위치 배열을 달리하자 가방안에 돈이 들어갔다. 이는 검찰의 주장이 사실에 근접함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변양호 전국장 변호인 측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변호인측은 가방에 돈을 넣어 피고인들에게 전달했다는 검찰의 조사결과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며 현금 전달 자체를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에 물러서지 않았다. 검찰측은 이날 재판정에서 “흔히 샘소나이트 가방이라 함은 업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들고 다니는 가방을 일컫는 말인데, 이것을 갖고 특정 상표를 지칭하면 안된다”며 변호인 측의 반론을 일축했다.
이처럼 돈 전달 과정에 대한 현장검증에 대해서도 양측의 치열한 설전과 함께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더구나 이번 공판에서 이루어진 증인신문은 그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대부분의 증인들은 검찰의 기소내용을 전면 부인했다는 점이다. 특히 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 관계자인 류 모씨는 이인원 예보사장의 소개로 김동훈을 만났다는 검찰의 조사결과를 재판과정에서는 부인으로 일관했다. 이같은 증언은 검찰의 주장에 악영향을 미칠 사안이다.
이날 검찰 측의 질문에도 류씨는 시종일관 “잘 모르겠다”, “만난 적은 있는 것도 같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는 부인을 되풀이해 검찰을 맥빠지게 했다.

핵심증인의 진술도 결론 못내
이처럼 증인들의 진술번복이 계속되자 판사는 류씨의 검찰 진술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류씨는 “검찰 조서작성 시 그렇게 진술한 것 같다”고 말했고 판사의 재차 확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검찰 진술조서의 신뢰성에 큰 상처를 남긴 것이다.
재판의 그 다음 중요 포인트는 류씨와 김동훈씨 주변인물과의 관계다. 류 씨는 재판정에서 ‘검찰 수사관과의 전화통화에서 “검찰 조사 당시 김동훈을 만나지 않았다고 진술했어야 하는데 사실대로 다 말해 주변사람들에게 혼이 났다”는 말을 했다’는 언질을 했다.
검사는 집요했다. 류씨를 상대로 검찰은 “주변인물이 누구냐”고 다그쳤다. 류씨는 검찰의 집요한 질문 공세를 요리조리 잘 피해다녔다. 다만 류씨는 “주변인물을 거론한 적은 없으며, 당시 자신에 대한 자책감을 표현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류씨와 검찰의 공방이 지루하게 이어지자 판사가 개입했다. 판사는“주변인물에 대한 질책과 자신의 질책을 말하는 자책감에 대한 뜻을 명확히 인지하고 증언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하지만 류씨는 “당시의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한 발언”이라며 슬쩍 피해갔다.
류씨의 완강한 부인으로 주변 인물들의 개입 혹은 증거인멸에 의혹을 제기했던 검찰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이어진 김모씨와 회계사 한모씨 등의 증언도 검찰의 기소내용과 달리 부인으로 일관했다. 주요 포인트인 김동훈씨와의 접촉에 대해 완강하게 부인했다. 특히 회계사 한모씨는 이미 두 차례에 걸쳐 검찰의 진술을 번복한데 이어 이번 공판에서도 마지막 세 번째 진술을 다시 번복하며 변 전국장과 김동훈씨가 한번도 접촉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변씨의 30년 친구로도 알려진 한씨의 계속되는 증언번복으로 피고인석에 앉아있던 변 전국장은 “왜 없는 사실을 진술하거나 번복해서 친구인 나를 곤경에 빠뜨리냐”며 강하게 항의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4시간이 넘는 증인들에 대한 질문과 증언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판은 결국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증인들의 증언의 신뢰성에도 의문을 남겼다. 오후 7시 재판장이 피고인들의 저녁식사를 지시하면서 30분의 휴정을 거친 뒤, 예정되어 있던 나머지 5명의 증인 중 신모씨와 김모씨의 증언만을 마치고 나머지 3인에 대한 증언을 다음 공판으로 미뤄야만 했다.
이날 현대차 로비사건 재판은 시간이 지나도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첫 공판에서 연원영 전캠코사장의 회유에 따른 허위 진술과 번복을 시작으로 피고인들의 되풀이되는 진술번복으로 아직까지 김동훈씨와의 접촉 과정, 금품제공 시기와 장소에 대한 확인조차도 제대로 검증되지 않고 있다. ‘독이냐 약이냐’의 논란이 일고 있는 공판중심주의의 본격화와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도)이 활성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번 공판이 과연 얼마나 진실을 밝히고 정당하게 법의 심판을 선고할 수 있을지 의문을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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