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파워콤 이정식 사장 ‘맥주’ 발언 구설수


“LG파워콤 이정식 사장은 지금 만취상태다”. 하나로텔레콤 노동조합은 지난 10월 20일 LG파워콤 이정식 사장에게 항의내용이 담긴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정식 사장이 최근 공개석상에서 하나로텔레콤 인수와 관련해 자사를 비꼬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LG파워콤의 하나TV차단 파문으로 하나로텔레콤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 사장의 발언으로 양사 갈등의 골은 더욱 깊게 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 10월 17일 저녁 이사장은 서울 소공동 웨스턴조선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사장은 이날 “내년까지 가입자 200만 명을 확보하겠다”며 LG의 최근 실적에 고무된 상태였다. 그는 또 다음 달부터 주문형 비디오(VoD)서비스를 시작하고, 내년 상·하반기에 걸쳐 제공되는 인터넷전화(VoIP)와 인터넷TV(IPTV) 등의 트리플 서비스(TPS)로 독자적인 수익을 낼 것이라는 야심찬 계획도 곁들였다.
그러나 이사장의 이날 언행은 다소 지나친 감이 있었다. 최근 LG의 상승세를 반영한 듯 강한 자신감까지 보이는 것은 좋았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이날 이사장의 발언수위는 넘어야 할 선을 넘었다. 발단은 기업인수합병설이 나도는 하나로텔레콤 인수설과 관련한 발언이 도화선이 됐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한 기자가 하나로텔레콤의 인수가능성에 대해 묻자 이사장은 “특공대정신으로 무장된 우리 직원의 열정을 희석시키고 싶지 않다”며 “맥주를 타서 희석시켜 마시는 대신 그냥 스트레이트로 마셔 버리겠다”고 대답했다.
이사장의 발언은 자사임직원에 대한 칭찬으로 들리지만 하나로텔레콤측에서 볼 때는 자사 임직원을 공개석상에서 비하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한 하나로텔레콤 측은 불쾌한 심정을 즉각 드러냈다. 하나로텔레콤을 대표해서 이 회사 노조가 나섰다. 노조는 ‘LG파워콤 이정식 사장에게 드리는 공개서한’이라는 제목의 공개서한을 보낸 것. 이 서한에서 노조는 이사장의 발언을 강하게 비판했다. 노조에 따르면 ‘하나로텔레콤이 특공대정신을 희석시키는 회사다’라는 발언은 우리 회사 임직원을 비하하는 ‘망발’이라고 말했다.

노조서 공개서한 보내
또 “LG파워콤에서 자행하고 있는 불법영업, 직원·계열사 강제할당 영업이 특공대 정신이라고 한다면 이는 곧 대한민국의 특공대 출신들을 모독하고, 욕보이는 발언”이라며 이사장의 사죄를 촉구했다.
노조의 불쾌감이 심했던지 LG의 영업방식에 대해서도 비꼬았다. 노조는 “뒤늦게 시장에 참여한 파워콤은 과당경쟁, 출혈경쟁, 제살깎기식 경쟁 등으로 시장을 혼탁하게 만들고, LG계열사와 협력사 노동자들을 동원해 불법을 강요하고, 강제할당 영업을 실시하고 있다”면서 이사장의 경영관에 의문을 제기했다.
‘LG파워콤은 양주, 하나로텔레콤은 맥주’로 비유한 발언에 대해서도 하나로 노조는 숙취해소 음료 3병을 공개서한과 함께 보내는 것으로 응수했다.
아울러 공개서한의 말미에는 “독한 양주 많이 드시나 봅니다. 독한 양주 많이 드시면 몸에 해롭습니다. 지금 파워콤에서 하고 있는 불법, 강제할당 영업이 귀사의 독배는 아닌지 오늘 밤은 술을 멀리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라며 냉소적인 메시지를 남겼다.
이 회사 노조 관계자는 “한 기업의 경영자가 공개석상에서 경쟁사 직원들을 폄훼했다는 것은 기업 간에 지켜야할 최소한의 상도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며 분명한 입장을 밝힐 필요성이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이후 사태가 확산될지 여부는 LG측의 반응에 달렸다”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현재 LG파워콤은 공식적인 대응을 꺼리는 분위기다. LG측 관계자는 “이사장의 발언이 다소 무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비록 공개서한의 형태이긴 하나 그런 일을 가지고 일일이 대응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심각한 감정싸움 가능성도
지금까지 사태를 지켜 봤을때 양사간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있다는 양상이다. 그러나 양사의 속사정을 한꺼풀 풀어 헤쳐보면 이날 이사장의 발언보다는 양사의 이해관계가 얽힌 것이 갈등의 본질이라는 시각이다.
사실 LG측과 하나로텔레콤의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9월 LG파워콤이 포문을 열었다.
LG측은 자사망을 이용하는 하나로테레콤의 하나TV 서비스를 차단했다. 때문에 LG망을 사용하는 하나로텔레콤 인터넷 가입자들은 하나TV에 가입할 수 없는 상황이다.
LG측은 하나TV 서비스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트래픽 증가부담에 상응하는 이용대가를 요구해왔으나 하나로텔레콤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갈등 심화로 소비자만 피해
양사 갈등의 심화로 소비자의 피해가 확산되자 정보통신부가 ‘선개통, 후협상’이라는 중재안을 내놓았지만 양측 모두 거부했다.
LG파워콤의 차단은 독단적인 행보는 아니다. 하나TV의 급속한 성장은 기존 케이블TV를 위협할 수준으로 올라선 것이다. 위협을 느낀 케이블TV협회는 부랴부랴 방송위원회에 제소하기도 했고, 경쟁사 관계에 있는 KT도 LG파워콤에 동조했다.
결국 하나TV 차단을 둘러싼 양사의 갈등은 통신위원회의 조사 착수로 번졌고, 통신위는 하나TV차단으로 피해를 입은 가입자와 하나TV의 과도한 트래픽이 다른 업체에 피해를 줄 수 있는가에 대한 여부 등을 집중 조사했다.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양사가 왜 팽팽한 긴장관계에 놓여있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라이벌 회사 사장의 발언으로 번진 양사의 갈등은 그간 사정을 살펴볼 때 이해관계에 따른 대리전에 불과하다는 것이 재계의 평가다.
후유증도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양사의 갈등이 지속될수록 우려스러운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양사가 초고속인터넷사업분야에서 수위를 다투기 때문이다. 하나TV차단에서 나타났듯이 피해는 결국 소비자에게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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