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헌납’ VS ‘경영권 편법 승계’
‘사회헌납’ VS ‘경영권 편법 승계’
  • 현상필 
  • 입력 2007-01-11 09:54
  • 승인 2007.01.11 0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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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조수호 전회장 지분 증여 막후

한진해운은 지난해 11월 타계한 고 조수호 전회장의 유언에 따라 “고인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 164만주를 출연, 재단법인 ‘양현(洋賢)’을 설립한다”고 밝혔다. 현재 설립이 추진되고 있는 양현재단은 ‘매칭그랜트’방식이다. 고 조 전회장의 보유지분 2.28%와 한진해운의 자사주 2.28%가 동일하게 증여될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회장의 사재 출연으로 그가 보유했던 한진해운 지분은 492만 9,537주(6.87%)에서 328만9,537주(4.57%)로 감소했다.
하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총수의 사망 이후 장학재단에 일정량의 지분을 증여한 한진해운에 대해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분확보’의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을 보내고 있다.

조수호 전회장의 타계 직후 한진해운 안팎에서는 경영권의 향배를 가늠하는 몇 가지 시나리오가 제기됐다. 이 시나리오는 크게 외국계 자본에 의한 ‘적대적 M&A가능성’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위탁경영설’로 압축됐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 국내외 우호지분이 더 우세한 이유로 실현가능성이 극히 낮았다. 조양호 회장의 위탁경영설 역시 현재로선 현실성이 낮다. 한진해운이 박정원 사장 중심의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양호 회장의 위탁경영설은 조 전회장의 지분상속과도 연관이 깊다. 그가 보유하던 한진해운 주식 6.87%를 누가 넘겨받느냐에 따라 한진해운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재계에서는 “가족이 지분을 상속받을 경우 지분감소에 따라 경영권이 축소될 것”이라고 관측하기도 했다.
지분 상속대상자는 미망인 이은영씨와 두 딸이다. 하지만 가족들이 이 지분을 상속받을 경우 700억원 가량의 상속세를 납부해야 했다. 무리한 현금부담으로 인해 상속세를 지분으로 대납할 경우 지분이 절반으로 감소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천문학적인 증여·상속세는 ‘조 회장 일가가 장학재단 증여라는 방식을 통해 편법적으로 경영권을 확보하려 했다는 의혹’을 낳는 배경이 됐다.

한진해운 측은 장학재단 설립 목적에 대해 “유족들이 지도층의 사회적 책임과 부의 환원이라는 평소 고인의 철학과 의지에 따라 (재단법인)증여를 결정했다”며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지도층의 사회적 책임을 보여주는 미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진해운측이 아직 설립되지도 않은 재단에 지분을 증여했다는 점에서 경영권 확보를 유지하고, 증여·상속세를 피하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재계에서는 “장학재단에 증여된 지분 역시 고 조 전회장의 잔여 보유지분과 마찬가지로 한진해운의 우호지분으로 남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 26일 한진해운은 이와 관련해 “미망인 최은영씨가 양현재단의 이사장에 내정됐다”며 “현재 해양수산부의 설립허가를 받아 사무국을 조직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현재단의 이사장으로 선임된 최씨는 재단이 보유한 지분 4.56%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씨는 재단에 출연하고 남은 고 조 전회장의 잔여지분 4.59%도 상속받게 된다. 따라서 최씨가 확보하게 되는 한진해운 지분은 모두 9.15%로 사실상 단일 최대주주의 위치를 확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진해운측은 “조회장 일가의 경영권확보 차원에서 재단 증여가 이루어졌다”는 세간의 의혹에 대해 거북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재단설립과 지분 출자가 고인의 순수한 유지를 따른 것”이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한진해운측은 지분출자가 재단 설립 이전에 결정되었고, 재단구성이 아직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도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반응이다. 한진해운 업무 관계자는 “조수호 회장은 생전에도 재단설립에 대한 견해를 수차례 밝혀왔다. 재단설립에 대한 준비는 이미 오래 전부터 회사에서 준비해오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 여사가 이사장에 선임돼 재단 보유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갖는다고 알려졌지만, 한진해운의 경영권확보와는 거리가 멀다”며 “재단법인 양현은 해양수산부 산하의 법인 재단이다. 한진해운의 자회사나 계열사가 아닌 만큼, 재단 운영에 대한 권한은 제한적이다”라고 밝혔다.
한진해운은 최은영씨의 독자경영 가능성에 대해서도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최씨는 다만 최대주주로만 남아 경영일선에 참여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한진해운측 설명이다. 현재 한진해운은 경영에 관한 주요 사안은 이사회에서 결정하고, 그 결과를 전문경영인인 박정원 사장이 수행하는 자율적인 책임경영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미망인 최은영 여사의 경영참여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한진가 형제들이 한진해운을 두고 새로운 경영권 분쟁을 양산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함께 맞물려 흘러나오고 있다. 이미 유산상속 등을 둘러싸고 한진가 형제들이 두 차례 분쟁을 겪었던 전례 때문이다.

‘제 3차 형제의 난’ 가능성은 없나
2005년 말, 고 조중훈 회장의 차남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4남 조정호 메리츠증권 회장은 장남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의 발단은 조중훈 회장이 남긴 ‘정석기업’에서 시작됐다. 정석기업은 빌딩관리전문업체로 한진그룹의 소규모 계열사이다. 비상장법인인 이 회사는 표면상으로 250여억원에 불과한 연매출을 기록했다.
조남호·정호 회장측은 소송 당시 “유산 분배 과정에서 처음 약속했던 것과 달리 형이 공동으로 분배하도록 된 비상장법인을 숙부의 차명자산으로 만들었다”며 “애초에 약속했던 대로 각자 소유의 주식을 달라”고 주장했다. 한진그룹측 역시 “정석기업의 주식은 조양호 회장의 소유가 아니라 타인의 재산이므로 임의로 지분을 이전할 수도 없고, 조양호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라며 반박했다.
소규모 비상장 계열사의 지분을 놓고 형제간 법정 공방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재계 일각에서는 “이미 그 때부터 경영권 쟁탈을 위한 형제들의 다툼이 시작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바로 정석기업의 장악여부에 따라 한진그룹의 경영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석기업은 한진그룹의 주력계열사인 (주)한진의 지분 14.14%를 보유한 최대주주였다. 정석기업의 보유지분율은 조양호 회장의 보유주식(5.91)의 2배를 상회했다. (주)한진은 대한항공의 주식 9.43%를 비롯해 대한항공의 지분까지 보유하고 있다. ‘정석기업의 주인이 누가 되느냐’가 곧 ‘한진그룹의 경영권을 누가 손에 넣는가’라는 문제로 직결된다.
결국 이 소송은 지난해 10월 이들의 숙부인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과 외숙부 김성배 한진관광 고문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 6만 9,057주를 조남호 회장에게 3만 4,528주, 조정호 회장에게 3만 4,529주를 각각 증여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한진가 ‘형제의 난’은 다른 또 다른 방향에서 전개되기도 했다. 조남호·정호 회장측은 “한진그룹이 삼희무역을 설립, ‘브릭트레이딩’이 대한항공과 독점으로 형성하고 있던 납품권을 빼앗아갔다”는 이유로 조양호 회장과 원종승 한진그룹 전무를 업무상 배임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했다.
조남호 회장측은 소송배경에 대해 “고 조중훈 회장이 4형제가 순이익을 공평하게 분배받도록 설립한 브릭트레이딩을 제쳐두고 삼희무역을 세워 이익을 독점하려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조양호 회장측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린 바 있다.
현재로선 희박하지만 차후 최은영씨의 경영참여에 대해 형제들의 반발이 우려된다는 주변의 지적도 있다. 과거 정몽준 의원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현대상선의 지분매입을 두고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시동생의 난’을 지켜봐왔기 때문이다.

법적규제로 가능성 희박
일부의 추측대로 이 같은 형제간의 다툼이 유산상속에 따른 이익을 노린 것인지, 사사로운 감정싸움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종합해보면 한진해운을 둘러싼 경영권 다툼에 대한 우려를 낳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견해도 나온다.
그러나 현재의 우려와 달리 현실적으론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이 한진해운의 경영권분쟁에 뛰어들 가능성은 희박하다. 공정거래법 시행령에 따르면, 계열 분리된 회사는 분리 이후 3년 내에는 원래 소속되었던 그룹의 계열사 주식을 투자목적 등의 이유로 추가 취득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에 계열분리한 한진중공업의 경우 2008년 10월 이후에야 한진해운 지분을 인수할 수 있다. 메리츠금융그룹은 2005년 3월에 계열분리됐다. 계열사간의 임원겸임도 허용되지 않으며, 보유지분도 3~15%로 제한을 두고 있다.
한진해운 측은 이를 근거로 “한진중공업과 메리츠금융그룹은 한진해운의 주식자체를 취득할 수 없어, 항간에 떠도는 형제간의 경영권다툼에 관한 이야기는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상필  dj0927@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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