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차례상 앞에서 절을 하며, 이 연휴가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유난히 밝았던 이번 한가위 보름달을 우러르며 남은 이틀이 이년 혹은 이십년처럼 느리게 흐리길 기원했다. 고민도 컸다. 한가위 당일이야 귀경길에서 보내니 그렇다 치고 내일도 쉬는 날이긴 한데 출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뇌하면서 잠을 설쳤다.
 
포기하는 심정으로 내리 남은 휴일 이틀을 쉬었지만 다른 의원실은 다 출근했으리라 생각하니 쉬는 것도 편하지는 않았다. 결국, 국정감사로 인한 스트레스를 떨치지 못하고 한가위 연휴를 보냈다.
 
가을은 국정감사의 계절이다. 국회 사람들에게 국정감사는 한 해 농사에 비유된다. 국회의원을 모시는 보좌진들에게는 업무 역량을 평가받는 시간이기도 하다. 늦은 한가위로 국정감사 일정이 한가위 앞으로 잡히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번처럼 한가위 끝나고 국정감사가 잡히면 한가위 연휴를 온전히 쉬는 것은 불가능하다. 집안 어르신 볼 낯이 없지만 차례만 올리고 상경길에 오르고 가족들에게 한없이 미안해하면서도 사무실에 나올 수밖에 없다. 부실한 준비로 국정감사를 망치면 자리 보전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다들 알기 때문이다.
 
국회에 들어오고 나서 그 흔한 단풍구경 한 번 가 본 기억이 없다. 짧은 가을이 왔다가도 설악산에 단풍이 내리는지 내장산에 불타오르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단풍이 올라오는 속도보다 빠르게 국정감사 시작하는 날은 다가온다.
 
국정감사를 받는 정부, 기관들이 자료를 주는 속도는 한가위 전날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처럼 애를 먹인다. 느리고, 막힌다. 귀경길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것처럼 언제 자료가 손에 쥐어 질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국회는 붐빈다. 평소 얼굴을 안 보이던 대관업무 담당자들이 보좌진들과 얼굴을 익히려 바쁘게 드나든다. 감사 대상인 정부와 각 기관에서도 자료를 들고 의원실마다 설명을 다닌다. 기자들도 의원회관을 돌며 기사가 되는 아이템을 가진 보좌진이 어디 없나 얼굴을 들이민다.
 
국정감사장에서 한 건 터뜨려 보겠다는 욕심을 가진 보좌진들이 가장 환영하는 사람은 내부 비리 정보를 가진 제보자다. 다양한 시민단체들도 자신들의 관심사를 국정감사에 반영시키기 위해 두툼한 자료뭉치를 들고 제휴할 보좌진을 고른다.
 
국정감사의 성과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언론에 얼마나 보도되었느냐, 1면을 잡았느냐, 방송사 메인뉴스를 탔느냐 하는 정도가 잣대가 되지만 모든 국회의원이 다 1면을 잡을 수는 없다. 이름도 아리송한 시민단체들이 국정감사를 모니터링하고 끝나면 우수의원을 선정해서 시상도 하지만 그 과정의 공정성을 믿는 보좌진은 없다.
 
오늘도 내일도 기자들을 만나 밥이라도 먹어두고 국정감사 평가하는 단체 관계자들과 안면을 트는 것도 국정감사 준비의 하나일 뿐이다.
 
매년 국정감사를 실시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뿐이다. 미국 의회는 상시청문회 제도가 국정감사를 대신한다. 국정감사는 20일간 몰아치기식으로 1년 동안의 국정을 감사한다. 매년 국정감사가 끝나고 나면 졸속, 부실, 겉핥기 국정감사 무용론이 펼쳐진다.
 
상시 국회, 상시 국감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다 옳은 말이지만 그때뿐이다. 열심히 일한 보좌진은 쉬어야 하고 의원들도 지역으로 해외로 뿔뿔이 흩어진다.
 
국정감사란 무엇인가? 일회성, 이벤트성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국회가 국가기관을 감사, 감찰하는 국정감사는 꼭 필요한 과정이다. 행정부를 견제하는 일은 민주사회에서 매우 당연하고 중요한 일이다. 상시국감을 하면 일은 더 많아지겠지만 의회주의는 더 단단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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