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책임당원 vs 태극기 책임당원 ‘세 싸움’ 관건… 당헌·당규 수정은 ‘변수’로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자유한국당에 ‘운명의 달’이 찾아왔다. 추석 연휴가 끝난 10월, 인적 쇄신과 당권 경쟁 등을 둘러싼 당내 혼란과 갈등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는 10월 1일부터 조직강화특별위원회를 가동해 본격적으로 당협 조직 재정비에 나선다. 한국당은 내년 2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다. 전당대회 대의원은 당협에서 추천한다. 이번 당협위원장 재선정 과정이 필연적으로 당권 경쟁의 전초전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신(新) 파워 그룹으로 떠오른 김병준 비대위에 맞서 기존의 복당파·잔류 비박계·친박계 등의 반발이 심화될 경우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특히 친박계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당내에서 계륵(鷄肋)으로 전락한 친박계가 내년 2월 전당대회를 통해 권토중래(捲土重來)를 꿈꾸는 모양새다. 황교안·김진태·김문수 등 친박계 인사들이 ‘태극기 세력’을 앞세워 당권을 거머쥐고, 2020년 공천권을 행사해 종국엔 대권까지 넘보는 ‘태극기 세력 활용론’이 그것이다.
 

- 비대위, 홍준표·김무성 ‘2선 후퇴론’ 움직임에 미소 짓는 친박계
- 親朴 열혈 구애에, 황교안 “결심 선다면 내년 당권 도전” 여지

 
전국 당협위원장 교체로 시작된 자유한국당의 인적 쇄신 작업이 당권경쟁의 신호탄이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국당은 10월 1일 조직강화특별위원회를 구성, 전국 253곳의 당협위원장 교체 작업에 들어간다. 이번 당협 재정비 작업은 앞서 홍준표 전 대표 체제에서 마련된 심사기준을 백지화하고, 지난 6·13 지방선거 결과를 평가 기준으로 적용할 방침이어서 대대적인 당협위원장 교체가 예상된다.
 
당협 교체 작업 ‘시작’,
전대 룰 개정에도 ‘촉각’

 
특히 친박계와 홍준표 전 대표 시절 선임된 60여 명의 당협위원장 등에서 상당 부분 교체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동안 정부·여당과 이념 대결에만 몰두한 나머지 인적 청산은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아온 김병준 비대위로서는 ‘홍준표 색깔 빼기’가 비대위 성공의 필요조건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협위원장 교체 작업에 돌입하면서 잠재해 있던 당내 혼란과 갈등이 재촉발되는 양상을 드러냈다. 당협은 차기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를 선출하는데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만큼 당권에 관심 있는 인사들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당협 교체 작업이 전대 예비 후보군의 움직임에 속도를 붙임과 동시에 후보군을 중심으로 한 계파 갈등의 촉매로 작용할 공산이 높은 대목이다.
 
이에 정치권은 인적 쇄신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김병준 비대위원장의 거취에 이목을 집중한다. 당내에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김 비대위원장의 전당대회 출마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미 한국당 초선의원 14명이 당협위원장 자진사퇴를 선언, 김 비대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준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기류는 김 위원장이 직접 여러 매체를 통해 당권에 관심이 없음을 분명히 하며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 9월 17일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도 “지금은 당 재정비에 올인하겠다”라며 “추대를 한다 해도 당권에는 관심이 없다”고 단언했다. 이에 정치권은 김 비대위원장이 직접 당권 레이스에 참여하진 않지만 어떤 식으로든 전당대회에 영향력은 행사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는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의 관계자에 따르면 김 비대위원장이 최근 홍준표 전 대표와 김무성 전 대표에게 ‘2선 후퇴’를 주장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김병준 비대위 주변에선 “어떻게든 홍 전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 비대위원은 “한국당이 다시 ‘홍준표 블랙홀’에 빠지지 않도록 여러 방안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도출되곤 한다”고 전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당협 조직 재정비 칼자루를 쥐고 있다. 전당대회 대의원은 당협에서 추천한다. 두 전 대표를 입장에선 김 비대위원장이 공개적으로 이 같은 주장을 하며, 당협을 재정비한다면 상당한 압박일 수밖에 없다.
 
나아가 김병준 비대위에서는 당헌·당규를 홍준표·김무성 2인의 출마 자체를 봉쇄하는 쪽으로 바꾸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 비대위원은 지난 9월 26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불명예스럽게 당대표에서 중도 하차한 것은 일종의 탄핵을 당한 셈”이라며 “탄핵 당한 대표가 다음 전당대회에 재출마하는 것은 누가 봐도 문제가 있으니 당헌·당규를 개정해서 이를 막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직접 홍준표·김무성 전 대표를 겨냥하지는 않더라도 사실상 ‘홍준표·김무성 맞춤형’ 전당대회 룰 개정인 셈이다.
 
반면 이 같은 움직임이 친박계에겐 어부지리(漁父之利)다. 친박 당대표를 탄생시키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인 김무성 전 대표와 홍준표 전 대표를 비대위에서 쳐내 준다면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친박계 당대표 주자로는 황교안 전 총리를 비롯해 김진태 의원 김문수 전 지사 등이 거론되고 있다.
 
친박의 역습, ‘책임당원’
확보에 ‘혈안’ 왜?

 
특히 김 의원의 경우 태극기 집회 세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태극기 집회의 단체 SNS에는 ‘김진태 의원의 간곡한 부탁~구국의 길’이라는 글이 퍼지고 있는데 “김진태 의원을 밀어줄 책임당원 3만 명 확보를 위해 9월 안에 자유한국당 당원으로 가입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정광용 박사모(박근혜를사랑하는모임) 회장은 “태극기 집회 내에서 ‘자유한국당 책임당원으로 가입해 당권을 가져오자’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 애국 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다. 얼마나 답답하면 이렇게까지 하겠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찬성하거나 묵과했던 사람들이 절대 당권을 잡아서는 안 된다. 친박이 당권을 잡아야만 야당, 나아가 나라가 바로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태극기 세력들은 왜 ‘책임당원 모집’에 혈안이 돼 있는 것일까. 이는 책임당원이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투표권을 갖는 데 기인한다. 결국 기존의 한국당 책임당원보다 더 많은 친박계 책임당원을 모아 전당대회에서 투표권을 행사해 친박계 당대표를 탄생시키려는 것이 태극기 세력의 전략으로 풀이된다.
 
한국당 당규 제2조 2항에는 ‘책임당원은 당비규정에 정한 당비를 권리행사 시점에서 1년 중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당에서 실시하는 교육 또는 행사 등에 참석한 당원을 말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현재 한국당 전당대회는 2월로 예정돼 있다. 현재의 규정대로 치러진다면 전당대회 3개월 전까지만 책임당원에 가입해 당비를 내면 전대에서 투표권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태극기 세력의 전략대로 책임당원의 수가 기존 한국당 당원의 수를 넘어서고, 또 이들 모두가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하더라도 난관은 존재한다. 전당대회는 책임당원만으로 치르는 게 아니다. 지지 의원이 없으면 여러 모로 당권 도전에도 난관이 따른다는 지적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태극기 세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김진태 의원은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히는 셈이다. 김 의원 또 다른 당권 후보인 김무성 전 대표와, 홍준표 전 대표에 비해 당내 기반이 취약한 게 사실이다.
 
전대 전 ‘룰’ 개정 가능성...
‘친박 후보 단일화’ 목소리↑

 
아울러 전당대회의 ‘전초전’ 격에 해당하는 12월 원내대표 경선에 친박계에서 마땅히 내보낼 사람이 없는 것도 뼈아프다. 12월 경선에서 선출될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은 당연직 비상대책위원이 돼서 ‘전당대회 룰’에 관여하게 된다.
 
전당대회를 치르기 전에 비대위에서 당헌·당규를 손질하고 세칙을 다시 정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계파에 유리한 ‘맞춤형 룰 개정’이 이뤄질 수도 있다. 대의원·책임당원·국민여론조사의 투표 비율과 지방순회 연설회 등 각종 세칙을 정할 때, ‘태극기 세력’에게 유리하게 조정되기보다는 가급적 불리하게 ‘룰’이 정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또한 올해 초에 월 1000원, 3개월 이상 납부로 하향된 책임당원 요건이 다시 월 2000원, 6개월 이상 납부로 환원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도 나온다. 한국당 의원실 보좌진은 “책임당원 요건을 완화했는데 기대했던 당원 증대는 없고, 오히려 당 재정만 악화됐다는 말이 많다”며 “2000원으로 환원해도 어차피 낼 사람은 내기 때문에,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는 게 맞다는 논의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렇게 되면 태극기 세력의 책임당원 모집에 빨간불이 켜지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친박계 내부에서는 하루빨리 ‘후보 단일화’를 통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현재 한국당의 범주류에는 김무성 전 대표라는 확실한 구심점이 있는 반면 비주류에는 마땅한 구심점이 없다.
 
김진태 의원 역시 지난 8월 15일 태극기 집회 연설에서 “당을 지킨 사람들이 확실하게 당권투쟁을 벌일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당권 도전 의사를 피력한 뒤 지난 18일엔 ‘김진태와 함께 하는 구국 포럼’을 열었지만 본인은 물론 당시 축사를 했던 유기준 의원까지 황 전 총리 영입에 힘을 기울이는 최근 모습을 보면 태극기 부대의 지원을 받았더라도 재선 의원에 불과한 현실적 한계를 절감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물론 김 의원 외에 정우택 의원과 김문수 전 경기지사 등 또 다른 친박계 인사들도 당권 주자로 꼽히고는 있지만 이들은 외곽 세력으로, 대다수 친박으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어 사실상 황 전 총리 외엔 대안이 없다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김진태, 원내 지지 취약 한계
“황교안 외 대안 없다”
 

이미 최근 조사된 차기 정치지도자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황교안 전 총리는 자유한국당 지지층에서 압도적 선두로 자리매김했다. 데일리안의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알앤써치가 실시한 9월 넷째주 정례조사에 따르면, 이낙연 총리의 차기 정치지도자 적합도가 13.2%를 기록하며 조사대상자 11명 중 오차범위내 1위를 기록했다.
 
황교안 전 총리는 12.9%로 이 총리를 추격했다. 그 뒤로는 김경수 경남도지사(11.1%), 박원순 서울특별시장(8.5%), 이재명 경기도지사(7.2%) 등이 선두 그룹을 형성했다. 특히 황교안 전 총리는 한국당 지지층에서 42.7%로 압도적 선두를 달렸다. 2위 홍준표 전 대표(17.2%)와도 격차가 컸다.
 
이번 조사는 지난 23일 전국 성인남녀 1072명(가중 1000명)을 대상으로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무선(100%) RDD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됐다. 전체 응답률은 7.2%, 표본은 2018년 7월 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 기준에 따른 성·연령·지역별 가중 값 부여(셀가중)로 추출했다. 표본오차는 95%의 신뢰수준에 ±3.0%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s://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이에 발맞춰 황 전 총리 역시 당권 행보를 점차 노골화하고 있다. 황 전 총리는 지난 9월 20일 한국당 유기준·박대출·정용기·김진태·윤상직 의원 등 6명과 함께한 오찬 자리에서 내년 초 전당대회 출마를 요청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자리에서 황 전 총리는 “결심만 선다면 상처를 입더라도 전당대회에 나서서 당권을 잡겠지만, 지금은 국민의 마음을 얻도록 노력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하며 출마 여지를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황 전 총리의 당권 도전 문제가 아직 결론 내려지지는 않았지만, 이날 회동 사실 자체만으로 정치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출판기념회로 정치권에 ‘데뷔’한 것으로 평가받는 황 전 총리가 보다 ‘큰 정치’를 하기 위한 필수 절차인 원내 세력화에 착수했다는 신호탄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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