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 회장 등 특별수행단이 지난달 19일 저녁 북한을 대표하는 식당 중 하나인 평양 대동강구역 ‘대동강 수산물 식당’을 찾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만찬에 앞서 실내 수조를 둘러보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2000년·2007년에 이어 2018년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됐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비핵화지만 경제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

남북경제 교류 활성화의 본격적인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재벌 오너들이 직접 방북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뒷말이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재벌 오너의 방북이 이번 정상회담의 ‘옥에 티’였다는 지적이다.

비리 경제인 제외 원칙 깨고 데려간 이 부회장, 노림수 있나
정부 “재판은 재판이고 일은 일”…평양 안 간 정의선 부회장, 왜


우선 재벌 오너들의 방북 일정이 알려진 직후 들러리 논란이 일었다. 미국이 남북 경제협력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안보리 결의에 따르면 북한에 현금을 지급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재계 인사들이 북한을 간다하더라도 ‘참석이라는 의미 외에 실적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많았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직접 나서 관련 내용을 차단했지만 미국이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다 보니 ‘들러리’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뇌물 공여 혐의 재판 중…적절성 논란

이번 특별수행단에 이재용 부회장이 이름을 올리면서  논란의 골은 더 깊어졌다. 현재 이 부회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뇌물죄로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최종판결이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평양행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다.

또한 비리 경제인은 경제사절단에서 배제한다는 원칙을 정부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과거 재판 중에 남북정상회담 때 수행원 자격으로 동행한 뒤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은 재벌 총수 사례가 있어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의 방북과 관련 ‘삼성 특혜’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재계에 따르면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때 노무현 대통령을 수행한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과 최태원 에스케이(SK) 회장은 당시 형사재판을 받고 있었다.

정몽구 회장은 900억 원대 회삿돈 횡령 혐의 등으로 2007년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고, 9월 2심에서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최태원 회장도 1조9000억 원대 분식회계 혐의 등으로 2005년 2심 재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2년째 대법원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두 회장은 4대 그룹 몫으로 정상회담 특별수행원 47명에 포함됐다.

이재정 당시 통일부 장관은 “남북 협력이 실질적으로 가능하도록 대북사업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기업 위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정 회장과 최 회장은 정상회담 이듬해인 2008년 8월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특별사면을 받았다.

최종 판결이 확정된 지 2~3개월 뒤 ‘경제 살리기와 국민 화합’을 명분으로 특별사면이 단행됐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행정학)는 “재벌 회장이 형사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국가 행사에 활발히 참여한 뒤 특별사면에 이른 사례들”이라고 말했다.

임종석 비서실장은 이 부회장이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에 포함된 배경과 관련해 “재판은 재판이고 일은 일이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 부회장의 방북은 현재 진행 중인 국정농단 사건 재판과는 ‘별개’라는 뜻이다. 그러나 재계 한 관계자는 “재판부 입장에서는 신경쓰지 않을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일각에서 현 정부는 국내 경기부터 챙기라는 목소리가 있다.
문 대통령이 백두산에서 돌아온 날 한국 경제엔 우울한 소식이 잇따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3%포인트나 낮췄다.

 국내 경기도 챙겨라 ‘쓴소리’

2분기 자영업 대출은 16% 급증했고, 서울 집값은 일주일 새 또 0.26% 올랐다. 국민
의 50%가 “문재인 정부 들어 경제가 더 나빠졌다”고 답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한 관계자는 “남북 관계에 훈풍이 불어도 내리막길로 치닫는 경제엔 변함이 없다. 서민 경제는 여전히 얼어붙어 있고 일자리는 변함없이 사라지고 있다. 경제성장엔 급제동이 걸렸다”며 “국내 경기부터 챙겼으면 좋겠다”는 푸념을 했다.

한편 평양행 대신 미국을 택한 정의선 부회장이 주목 받는다. 그가 이재용 부회장 최태원 회장 구광모 회장 등 주요 기업 총수들이 참석한 행사에 빠진 것에 대한 의아함이다.

이와 관련 현대차그룹은 지난 12일 오후 늦게 청와대로부터 방북 동행 요청을 받은 뒤 정 부회장의 일정 조율을 검토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미국행을 택했다.

정 부회장은 미국에서 윌버 로스 상무부 장관 등 미 행정부와 의회 고위인사들과 만났다. 이들과 논의할 핵심 의제는 수입자동차 관세 부과 문제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이용해 자국에 수입되는 자동차에 최대 25%의 관세를 물리려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대차그룹으로선 최대 수출 시장의 하나인 미국의 관세 폭탄을 예방하는 것이 발등이 불로 떨어진 상황이다. 정 부회장도 관세 부과 예외를 인정받거나 낮은 관세율을 적용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이번 방미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도 지난달 16일 방북단 명단을 공개하며 “정 부회장이 (미국에서) 많은 미팅이 잡힌 것으로 들었다”며 “(관세 문제의) 가장 핵심 당사자로서 그 일정이 오래전부터 약속 잡혀 있어서 저도 그쪽 일정 (소화)하셨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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