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文’ 합류한 ‘이해찬계’도 외면… ‘친문 껴안기’ 불가피
박원순-송영길-임종석 구도 ‘신(新)친문 프로젝트’ 가동
[일요서울 | 박아름 기자]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기류가 확연히 달라졌다. 지난 2017년 대선만 해도 비문 진영의 선두에 섰던 박 시장이 6.13지방선거와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은근슬쩍(?) 친문 진영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것. 단순히 당을 장악한 친문에 백기를 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박 시장이 차기 대권을 욕심내고 있다는 것은 정치권에 공공연한 사실. 이해찬 당대표 선출로 비문 진영마저 와해되자, 당내 세력이 없는 박 시장이의 ‘친문 껴안기’가 불가피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현재로서는 박 시장이 송영길 의원-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동침을 선택, ‘신(新)친문계’ 형성에 주력할 공산이 크다. 결국 박 시장의 입장에서는 ‘신친문 프로젝트’ 성공 여부가 차후 대권 가도 안착에 중요한 승부수가 될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기류 변화가 감지된 것은 6.13지방선거부터다.
지난 2014년 지방선거 당시만 해도 박 후보는 나홀로 행보를 보였다. 당 점퍼 대신 셔츠를 주로 입고, 당내 지지 세력 외에 혼자 배낭을 메고 선거 운동을 펼치던 모습이 그 방증이다. 그런데 이번 6.13 선거 때는 파란색 당 점퍼를 주로 입고 ‘친문 후보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친문과 거리감을 유지한 박 시장이 친문 후보 유세장을 찾아 힘을 실어주며 스킨십을 대폭 늘리는 모양새가 연출된 것.
우선 박 시장은 첫 공식 일정으로 재보궐선거 요충지인 송파구를 방문, 대표 친문인 최재성 후보를 지원 사격했다. 박 시장은 당시 송파구를 첫 번째 방문·유세지로 삼은 이유에 대해 “송파가 전략적으로 가장 주요한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 두고 6.13지방선거에서 ‘친문 마케팅’의 중요성을 무시하지 못한 행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친문 핵심인 김경수 당시 경남도지사 후보를 만나 정책 협약까지 맺은 점은 이 같은 주장에 방점을 찍었다.
6.13서 내세운 ‘동반자론’
확 달라진 ‘文-朴’ 기류
여기에 연일 문 대통령과 ‘원팀’을 강조하는 모양새도 빚어졌다. “서울의 승리가 수도권의 승리, 나아가 전국에서 민주당의 승리를 견인할 수 있다” “민주당 승리의 야전사령관으로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그럼으로써 지금 평화와 번영을 열고 있는 문 정부의 성공을 확실히 담보할 수 있다고 믿는다” 등이 선거 기간 중 박 시장의 발언이다.
이에 앞서 본격 선거전이 시작되기도 전부터는 너도나도 ‘친문 마케팅’을 활용하는 통에 ‘비문’인 박 시장마저 “문재인 후보를 모시고 제주를 찾았었지요”라는 글을 올리는 등 문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하느라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또 박 시장은 “(문 대통령의 지지층이)내 팬이 돼주는 것 같다. 생각보다 우호적”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나의 삶을 바꾸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저도 신년사에서 시민의 삶을 바꾸는 10년 혁명이라는 표현을 썼다. (문 대통령과는) 똑같은 기조 위에 서 있다”고 ‘동반자론’을 강조했다.
이는 6.13지방선거 전만 해도 친문 진영을 향해 직격탄을 날리던 박 시장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지난 대선 당시에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대립각 세우기가 정점에 달했다. 박 시장은 당시 경쟁자였던 문 대통령에게 민주당 분열, 즉 친문-비문 간 계파 갈등의 책임을 묻는 등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박 시장은 앞서 2017년 더불어민주당의 이른바 ‘개헌 보고서’ 파동 때도 “특정인을 위한 정당이 아니다”라며 사당화 및 패권주의 논란을 제기한 데 이어, 해당 사건을 비판한 비문 인사들에 대해 일부 친문 지지자들이 항의 문자 폭탄을 보낸 것을 두고 강하게 비판하며 ‘친문vs비문’ 대립 양상의 선두에 섰다.
박 시장은 당시 “참 두려운 일이다. 참 걱정스러운 일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인가”라며, 특히 문 전 대표를 겨냥해 “특정인을 대통령 만들기 위해서 촛불을 든 것이 아니다. 특정인에 불리한 발언을 했다고 문자 폭탄을 받고 18원 후원을 보내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촛불을 든 게 아니다”라고 직격탄을 날린 바 있다.
결국 박 시장의 이 같은 변심(?)에 대해 정략에 따른 ‘친문 챙기기’라는 일각의 비판이 쏟아졌다. 안철수 당시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는 김경수 경남도지사 후보와 협약을 선언한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를 겨냥, “친문 핵심 중 핵심과 손잡는 행보를 하고 있다”며 “서울시 주위 수도권 후보도 아니고 관련 공약도 아니다. 본인 의견 입장 내기보다 무조건 (친문 핵심을) 믿고 지지한다는 자체를 좋게 평가할 수 없다. 누가 봐도 이상한 것 아니겠느냐”고 일갈했다.
박 시장의 평양행,
본격 친문행 신호탄
박 시장의 ‘친문행’은 3차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박 시장은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의장 자격으로 수행단에 포함됐다. 박 시장은 지난 9월 16일 방북단 명단 발표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북 정상 간의 아름다운 만남이 중앙정부의 평화정책이 되고, 이러한 평화의 약속이 남과 북 지방정부 간 교류의 마중물이 돼 민간에서 활짝 꽃피울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면서 “문 정부가 닦은 평화라는 큰길을 지방정부가 풍성하게 채워 나가겠다”고 기쁜 마음을 표했다.
그러면서 그는 “서울시장이자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의장으로서, 제가 맡은 자리에서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오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박 시장은 내년 예정된 100회 전국체전의 서울·평양 공동 개최 또는 북한 참가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와 함께 서울과 평양의 ‘경평축구’ 부활을 추진하며 중앙 정부의 한반도 평화 정책에 발맞추고 있다. 이를 위해 서울-평양 교류협력사업의 총괄과 조정 역할을 전담하는 ‘남북협력추진단’을 행정1부시장 직속으로 새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 같은 박 시장의 적극적 행보를 두고 일각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다. 박 시장이 다른 수행단에 비해 지나치게 적극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남북정상회담의 경우 국가적으로 중요한 현안으로 이기는 하지만 지자체와 직접 연관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의견이 크다. 때문에 박 시장이 시정을 제쳐둔다는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남북정상회담에 치중하는 것은 차기 대권을 위한 이미지 관리 아니냐는 부정적 견해다.
일각에서는 같은 비문으로 분류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수행단에서 배제돼 ‘文-朴 후계 구도’가 본격 형성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대권에 ‘인맥 無’ 걸림돌…
적이었던 ‘친문 껴안기’ 감행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박 시장이 그동안의 정중동 모드를 깨고 친문 인사들을 적극적으로 껴안는 건 다음 대선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박 시장의 경우 ‘최초 서울시장 3선’을 달성하며 일찍부터 ‘대선 도전’이 기정사실화된 분위기다.
우선 대권 가도에 수월하게 진입하려면 튼튼한 지지 기반이 절실하다. 그런데 박 시장의 경우 서울시장만 내리 역임하며 여의도 경험이 전무해 확실한 인맥이 없다는 게 큰 단점으로 꼽힌다. 게다가 최근 유력 대선 주자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안정권에 들지 못한 결과가 초래되며 확실한 지지 세력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박 시장이 비문에서도 사실상 낙오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로 이번 전대에서 이재명‧표창원 등 일부 비문 의원들은 이해찬 대표 진영에 서며 ‘이해찬계’로 합류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박 시장은 송영길 후보 진영에 서며 이 대표 당선의 반사이익을 누리기 어렵게 됐다. 그러면서 비문 세력이 와해됨과 동시에 그나마 있던 박 시장 지지 기반이 크게 흔들렸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결국 박 시장 입장에서는 ‘친문 껴안기’가 최후 보루이자 유일한 선택이었을 공산이 크다.
일각에서는 당장 같은 비문으로서 함께 친문 진영을 뚫고 지자체 수장 자리를 꿰찬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친문 지지층으로부터 맹공격 당하는 모습을 보며, 박 시장 입장에서는 ‘비문 진영 버리기’가 불가피했을 것으로 해석된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비문 데스노트’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 정도로 문 대통령과 2017년 대선 당시 경쟁 구도를 형성했던 비문 인사들이 줄줄이 낙마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미투 사건, 최성 전 고양시장의 선거법 위반 논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여배우 스캔들‧패륜설‧조폭연루설 등이 그 방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음 타깃은 박원순 서울시장”이라는 관측까지 제기된 바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박원순 시장이 비문으로 잘 알려져 왔지만 6.13지방선거를 거치며 비문 색깔도 거의 사라졌다”며 “(이것이)박 시장의 자발적 선택이었든 외부 요인에 의해서든 박 시장은 이제 ‘비문’이라고 보기에도 어색하다. ‘신(新)친문’ 정도가 맞지 않겠냐”고 분석했다.
결국 박 시장은 8.25전당대회에서 연합군을 형성했던 친문 핵심 송영길 의원과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함께 ‘신(新)친문세력’을 구상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박 시장의 입장에서는 당초 비문이었다가 문 대통령의 통합 정치 방침에 따라 청와대에 입성한 임 실장이 확실한 동아줄이 될 수 있다. 임 실장은 박원순 체제 하에서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맡은 인연이 있다. 또 2011년 보궐선거 승리 이후 박 시장이 민주당으로 입당하는 과정에서 가교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임 실장의 입장에서는 ‘호남 출신 정치인’이라는 한계를 경남 창녕 출신의 박 시장을 통해 타개할 수 있어 불리할 것이 없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송 의원과 임 실장은 대표적 ‘386세대’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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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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