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원래 준비된 대통령이 아니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한 변호사일 뿐이었다. 정치적 경험으로는 2년간의 연방 하원의원이 전부였다. 당시 정적이었던 스티븐 더글러스와의 노예제 논쟁으로 전국적인 인물로 부각되기는 했으나 연방 상원선거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고 부통령 선거도 실패했다. 영광보다는 좌절을 더 많이 겪은 정치 역정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담대하고 냉혹한 권력 의지가 있었다. 야망의 샘이 끊임없이 솟았고 때로는 속물적인 정치 행태도 보였다. 수차례의 실패를 통해 용기와 결단력을 키웠다. 마침내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됐다. 쪼개진 연방을 재통합했고 노예제의 야만적 난제를 해결하는 등 세상을 혁명적으로 바꿨다. 에이브러햄 링컨 이야기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권력 의지도 링컨 못지않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중학교 때부터 책상 옆 벽면에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적어 놓고 권력의지를 불태웠다. 독자적으로 대통령이 되는 것에 한계를 절감한 뒤에는 ‘3당 합당’이라는 정치 공학적 사술(邪術)을 쓴 끝에 대통령이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권력 의지의 화신으로 묘사된다. 청년 시절부터 정치에 뜻을 품고 선거에 나섰으나 총선에서 세 번이나 연속으로 실패했다. 와신상담 끝에 1961년 5월 가까스로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에 첫 당선됐으나 5.16 군사정변으로 의원선서도 하지 못했다. 그 후 꾸준히 박정희 전 대통령에 도전하면서 정치적 거물이 됐고, 정치적 야합이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DJP 연합’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링컨을 비롯해 YS, DJ 등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남을 정복하고 동화하여 스스로 강해지려는 권력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고건 전 총리는 2007년 여당의 강력한 대선 후보로 떠올랐으나 자신의 회고록에서도 밝혔듯이 권력에 대한 의지가 약해 선거에 나서보지도 못한 채 낙마했다. 지지율이 떨어지자 불출마를 선언해버린 것이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역시 2017년 조기 대선의 강력한 야당 대선 후보로 각광을 받았으나 자신에 대한 무차별적 검증 과정과 지지율 하락 등으로 중도 하차하고 말았다. 권력에 대한 의지 결핍에 의한 낙마였다.  
입신양명 후 ‘꽃길’만 걸어온 두 사람 모두 ‘권력은 쟁취하는 것’이라는 권력의 속성을 깨닫지 못한 채 권력이 자신의 손에 쥐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우를 범한 것이다.  
근래 황교안 전 총리가 다시 ‘보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모양이다. 차기 대선 후보 선호도에서 1위를 기록했으니 세간의 관심이 무심할 리 없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아직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질 않고 있다. 지난 해 조기 대선과 올 지방선거 때도 그랬듯이 자신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 계속 말을 아껴 그는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권력을 쟁취할 생각은 하지 않고 고 전 총리나 반 전 총장처럼 권력이 자기 손에 쥐여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 보인다는 말이다. 지난 대선에서 멍석을 깔아줬는데도 계산기만 두드리다 멍석을 접었고, 올 지방선거에서도 “역할을 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선대위원장은 물론이고 서울 시장 후보로도 나서지 않았다. 또 ‘간’만 보다 들어갔다는 비난이 뒤따랐다. 
이런 그의 행태로 볼 때 그는 앞으로도 정치적 역할론이 제기될 때마다 저울추만 들여다보다 포기할 공산이 높다. 
황 전 총리가 정녕 권력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다면 링컨과 YS, DJ처럼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용기와 결단력을 키워야 한다. 용기가 없으면 제아무리 준비가 됐다 해도 특별한 의미가 없는 것이고 결단력이 없으면 경험이란 단순한 연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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