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불 망(三不忘) - (23)
삼 불 망(三不忘) - (23)
  •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
  • 입력 2018-10-01 15:37
  • 승인 2018.10.01 15:52
  • 호수 1274
  • 6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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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사직을 구한 불멸의 명신 이제현 (다음 호에 계속)

이제현 일행은 성도 인근에 위치한 무후사(武候祠, 유비와 제갈량의 묘가 안치된 사당)를 찾았다. 사당 내에는 유비, 제갈량, 관우, 장비 등 당시의 장군과 정승들이 나무로 조각된 유리관 속에 의젓하게 앉아 있었다. 이제현은 한동안 무후사에서 뭇 영웅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본 후 객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여름 해는 길게 늘어졌다. 한나절 동안 고적을 참배하며 힘든 줄 몰랐던 몸이 객관에 들 때쯤 이미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이제현 일행은 사천의 유명한 마파두부 요리를 안주로 해서 대를 잘라 그 죽통 속에 술을 빚어 넣고 파초 잎으로 포장해서 익힌 사천의 명주 비통주(碑筒酒)에 흠뻑 취했다. 그날 밤은 먼 여행길의 피로를 달래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마침내 아미산에 도착하다

아미산은 성도 서남쪽 160km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다음 날, 이제현은 성도에서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 청신(靑神)이라는 고을과 백제성(白帝城, 유비가 천하통일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곳)을 차례로 지나서 7일 만에 아미산에 도착하였다. 이제현은 이 여정에서 <배를 타고 아미산으로 향해 가다)와 <사귀(思歸, 고국을 그리다)> 두 시를 지었다.

雨催寒犢歸漁店(우최한독귀어점) 송아지는 비에 쫓겨 어점으로 돌아가고

波送輕鷗近客舟(파송경구근객주) 갈매기는 물결 타고 뱃전으로 다가온다.

窮秋雨鎖靑神樹(궁추우쇄청신수) 쓸쓸한 가을비 청신의 나무에 자욱하고

落日雲橫白帝城(낙일운횡백제성) 지는 해 백제성에 구름이 가리누나.

아미산은 주위가 천리나 되는 연봉으로 둘러싸여 우뚝 솟아 있었다. 아미산의 주봉인 금정(金頂)은 해발이 3,077m이라 일출, 해운 등을 감상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다. 낙락장송이 빽빽이 들어선 깊은 산골짜기에는 뇌신(雷神)이 살고 있다고 믿어지는 동굴이 있었다. 이제현은 동굴 옆을 흐르고 있는 개울가에서 말에게 풀과 물을 먹게 한 다음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은 기묘하고 수려한 봉우리들로 둘러싸여 있고, 군데군데 맑은 샘물이 솟아나오는 신비한 그야말로 선경(仙境)이었다.

이제현은 무사히 원행(遠行)을 마치고 마침내 <아미산> 위에 오른 감격을 이렇게 읊었다.

蒼雲浮地面(창운부지면) 푸른 구름은 땅 위에 떠 있고

白日轉山腰(백일전산요) 밝은 해는 산허리에 걸려 있네.

萬像歸無極(만상귀무극) 모든 것은 무극으로 돌아가니

長空自寂廖(장공자적료) 먼 허공이 홀로 적막하고 쓸쓸하다.

峨眉山下雙流洞(아미산하쌍류동) 아미산 아래 쌍류동에는

飛湍噴雪雷轟動(비단분설뇌굉동) 나는 여울물 눈을 뿌리고 우렛소리 진동한다.

暫停遊步想千古(잠정유보상천고) 잠시 가는 걸음 멈추고 천고의 세월 상상하니

山色水聲一時空(산색수성일시공) 산 빛이나 물소리가 일시에 텅 비어버리네.

이제현은 아미산에서 장장 3개월 동안을 머물렀다. 그 기간에 아미산의 부근에 있는 낙산대불(樂山大佛)과 미산 삼소사(眉山 三蘇祠, 송대의 유명한 문학가인 소순, 소식, 소철의 고택)를 들러보며 조맹부가 노래한 대로 많은 고적을 소요하며 돌아볼 수 있었다.

아미산에서의 3개월은 유수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10월에 연경으로 돌아가는 길에, 섬서성 서안(西安)으로 들어서며 <노상(路上, 길 위에서)>이란 시를 지었다.

馬上行吟蜀道難(마상행음촉도난) 말을 타고 다니며 촉도난을 읊었는데

今朝始複入秦關(금조시복입진관) 다시금 오늘 아침 진관으로 들어가네.

碧雲暮隔魚鳧水(벽운모격어부수) 푸른 구름 저문 날에 어부수를 가로 막고

紅樹秋連鳥鼠山(홍수추연조서산) 가을철 붉은 단풍 조서산에 연하였네.

文字乘添千古恨(문자승첨천고한) 문자는 천고의 한만을 더하누나

名利誰博一身閑(명리수박일신한) 공명을 뉘라서 한가함과 바꾸랴.

令人最憶安和路(영인최억안화로) 나의 생각 잠긴 곳은 안화사(개경 소재) 옛길에서

竹杖芒鞋自往還(죽장망혜자왕환) 죽장망혜 짚고 신고 임의로 오감이지.

이제현이 서안을 떠나 섬서성을 거쳐 이릉(二陵)에 도착할 때에 눈발이 앞을 가렸다. 이릉은 하남성 낙녕현에 있는 효산(山)의 두 구릉이다. 남쪽 구릉에는 하나라 걸왕의 조상인 하후고(夏侯皐)의 무덤이 있고, 북쪽 구릉은 주나라 문왕이 비바람을 피하던 곳이다.

이제현은 눈이 개자 갑자기 조맹부가 써준 “금성(사천성 성도)이 즐겁다 말고 일찍 돌아옴이 상책이리” 라는 전송시 구절이 생각났다. 그리하여 <이릉조발(二陵早發, 이릉에서 일찍 떠나다)>이라는 시를 지어 연경으로 편지를 부쳤다.

꿈을 깬 여관에 새벽 등불은 깜박깜박

말에 올라 길에 오르니 온몸이 후들후들.

구름은 노자의 단약 만들던 부엌에 끼었고

눈은 문왕이 비 피하던 언덕에 쌓였구나.

일 만나 불평스런 이 마음을 누가 알겠소.

시 읊을수록 머리카락만 부스스하다오.

두건 꺾이고 갓옷조차 뚫어졌기에

용문을 향하여 이응(李膺, 후한의 관리) 보기 부끄럽구려.

이 시에서 ‘구름은 노자의 단약 만들던 부엌에 끼었고’라는 표현은 노자(老子, 도교의 원조)

가 단약을 구워 장생불사약을 만들었다는 부엌에 구름이 끼어 그곳이 어딘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이제현은 이 전설처럼 자신도 신선이 되었으면 했으나 그러지 못함을 한탄한 것이다.

‘용문을 향하여 이응 보기 부끄럽구려’라는 표현은, 모든 사람들이 이응을 흠모하여, 그의 대우를 받으면 마치 잉어가 용문을 거슬러 올라 용이 된 것처럼 여겼다는 ‘이응의 고사’를 이용하였다. 곧, 조맹부를 견주어 예찬한 것이다.

이제현은 아미산으로 가고 오는 여정에서 한시 31수를 지었다. 이때 지은 시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 《서정록(西征錄)》이다. 당시 원나라는 고려를 ‘동쪽으로 간다’는 뜻의 정동(征東)이라 불렀고, 고려 통치를 위해 정동행성(征東行省)을 두었다. 이에 이제현은 ‘서쪽으로 간다’는 서정(西征)이라고 맞받아친 것이다.

이 해(1316년)에 이제현은 충선왕을 대신하여 아미산에 봉명사신(奉命使臣)으로 다녀온 공으로 경적(經籍)·축문·상소 등을 맡아 보는 관청인 전교시(典校寺)의 으뜸 벼슬인 정3품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로 승차하고, 다음 해에는 문신의 선임·공훈에 관한 일을 관장하는 선부(選部)의 으뜸 벼슬인 선부전서(選部典書)에 임명되었다.

절강성의 보타산에 강향하러 떠나다

세월은 화살처럼 흘러 아미산을 다녀온 지 3년이 훌쩍 지났다.

기미년(1319, 충숙왕6). 마침내 이제현은 강남지방으로 갈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번에는 충선왕을 시종하여 절강성의 보타산(普陀山)에 강향(降香, 향을 피워 올리는 것)하기 위해 가는 것이었다.

이제현은 오랜만에 중국을 여행한다는 생각에 다시 마음이 설랬다. 그동안 중국 여행을 통해 장엄한 산하, 기이한 풍속, 옛 성현들의 유적, 역사적인 고적들을 두루 섭렵함으로써 견문을 넓힐 수 있었는데,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여행 일정이 하북성, 산동성, 안휘성, 절강성의 소주, 항주를 거쳐 목적지인 보타산으로 정해지자, 충선왕은 이제현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러한 자연 속에 이공이 없을 수 없다.”

이제현이 이에 화답했다.

“3년 전 아미산 봉명사신 때는 상왕 전하를 시종하지 못해 아쉬웠사옵니다. 이제 상왕 전하를 지척에서 모시고 유력(遊歷, 여러 곳으로 유랑함)하니 죽어도 여한이 없사옵니다.”

그해 3월 중순. 이제현은 민권당에서 함께 독서하며 문명(文名)을 떨치고 있는 권한공(權漢功)과 약간의 호위 군사들과 함께 충선왕을 시종하였으며, 어린 아들 서종도 이제현을 따라 나섰다. 연경을 떠나 산동성의 낭야()에 도착한 일행은 제갈공명사당을 찾았다. 이제현은 사당에 분향을 하고 나서 <제갈공명사당>이라는 시를 지어 제갈량의 충절을 노래했다.

群雄蜂起事紛拏(군웅봉기사분나) 영웅들 봉기하여 천하의 일 어수선한데,

獨把經綸臥草廬(독파경륜와초려) 홀로 경륜 안고 초가집에 누웠었다.

許國義高三顧後(허국의고삼고후) 삼고초려 후에 높은 의리 나라에 바쳤고,

出師謨遠七擒餘(출사모원칠금여) 칠종칠금 뒤에 출사의 책략이 원대하였다.

木牛流馬誰能了(목우유마수능료) 목우와 유마(딸딸이 말)로 위장하는 재주 누가 알며,

羽扇輪巾我自如(우선윤건아자여) 새털부채와 실로 짠 두건으로 자약(自若,침착)하였다.

千載忠誠懸日月(천재충성현일월) 천고의 그 충성 해와 달처럼 하늘에 걸렸으니,

廻頭魏晉但丘墟(회두위진단구허) 돌아보니 위나라와 진나라야 모두 폐허뿐이로다.

제갈공명 사당을 나온 이제현 일행은 산동성 청주(淸州) 지방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연경에서 출발할 때부터 이정기(李正己 732-781, 당나라 최강의 번진을 세운 고구려 유민) 장군의 사적을 살펴보기 위해 이제현이 특별히 청주 지방을 여행일정에 포함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현 일행이 청주 어귀에 막 들어설 때였다. 한 무리의 군마가 흙먼지를 자욱하게 일으키며 바람처럼 일행 앞을 가로막으며, 충선왕을 알현하게 해 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보아하니 나이가 60 가까이 되어 보이고, 위엄이 있어 보이는 노인인데, 무리들 중에서 우두머리처럼 보였다.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