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핵심사 차지 파워게임 확산

예금보험공사 산하 부실책임위원회 위원장인 이철송 한양대 법대 교수의 현대증권 사외이사직 선임 및 중도 퇴임 등을 둘러싼 노사 간의 갈등이 결국 법정 공방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철송 교수는 지난달 25일 현대증권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측의 추천으로 사외이사에 선임됐지만 지난 1일 한양대 측에서 겸직 승인을 불허했다는 이유로 사외이사에서 중도 퇴임했다.


이에 대해 현대증권 노조는 지난 7일 “현대증권이 이 교수 사외이사 선임과 관련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학교의 승인 거부라는 이유를 들었으나 학교 측에 확인 결과 ‘이사에 취임하는 사실도 몰랐는데 어떻게 겸직 승인을 불허할 수 있냐’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민경식 노조위원장은 “대학 측의 겸직 승인 불허 사유로 중도 퇴임한다는 이철송 교수의 사외이사 퇴임사유는 명백한 허위공시”라며 “사외이사 선임에 관한 증권거래법 위반 증거를 충분히 확보한 만큼 사측의 관련자에 대해 소송을 진행 중이다”고 밝혔다.

노조는 그동안 현대건설 부실책임과 관련, 공적자금이 투입된 채권금융기관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상대로 520억원의 가압류 및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할 것을 지시한 이 교수의 사외이사 후보추천은 현대그룹 측의 숨은 의도가 있다고 의혹을 제기하며 이 교수의 사외이사 퇴진을 주장해 왔다.

반면, 사측은 “이 교수는 증권법 전문가로 관련법에 대한 자문이 필요해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던 것”이라며 “아무런 법적인 문제가 없고, 이 교수의 사외이사 중도 퇴임 역시 재직 중인 학교의 겸직 승인 불허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이철송 교수가 현정은 회장의 소송을 진행하는 입장에서 현대증권의 이사직을 수락했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예금보험공사에서도 스스로 물러나야 된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또 “예금보험공사의 조치를 지켜보겠으나 공사에서 해촉할 생각이 없다면 감사원에 감사청구 등의 절차를 밟겠다”고 말했다.


사내이사 사외이사 선임 갈등 배경

현대증권이 김지완 대표이사에서 김중웅·김지완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출범했다. 당초 업계의 예상과 달리 경영권 참여 의사가 없던 김중웅 회장이 대표이사 자리까지 오른 배경을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현대증권은 지난달 25일 정기주총에서 김중웅 회장의 사내 이사 선임 안건을 통과시킨 뒤 이사회를 통해 김중웅 대표이사를 김지완 대표이사와 함께 각자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노조 측이 김중웅 회장의 사내 이사 선임을 반대하며 표 대결을 한 결과다. 현대증권 측은 이사회를 새로 꾸린 뒤 곧바로 대표이사 변경을 추진, 김중웅 회장의 대표이사 선임을 확정했다.

증권업계는 김중웅 회장이 현대그룹의 ‘예우’적 성격의 자리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대표이사에 선임된 결과를 두고 다소 의아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정은 회장이 측근인 김 회장을 대표이사로 끌어올려 현대증권의 지배력을 한층 강화시키기 위한 사전 포석이란 설명이다.

증권업계 고위 관계자는 “주주총회 전부터 사측의 고위 간부들로부터 김중웅 회장이 각자 대표로 올라설 것이란 전망이 일부에서 나왔었다”며 “그룹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달 25일 열렸던 현대증권 주주총회가 증권사 사상 최장 정기주총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주총은 오전 9시에 시작돼 오후 2시까지 5시간을 끌며 릴레이로 진행됐다.

이같이 주총이 장시간 이어진 것은 현대증권 지배구조에 대한 노조의 거센 반발 때문이다.

이사의 임기를 차별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정관변경안을 시작으로 사외이사와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등을 놓고 5차례의 투표를 거치며 주총이 진행됐다.


진통 겪었던 주주총회

주총이 시작된 뒤 의장 인사말이 시작되기도 전에 노조가 이끌고 있는 소액주주 대표들이 사외이사 선임 등 안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며 경영진 측의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주주들이 잇따라 발언하며 오랜 시간 주주 발언을 이어가자 다른 주주들이 주총진행을 위해 발언을 자제할 것을 요구하면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현대증권 이사회는 이철송 교수를 사외이사 후보로, 노조는 하승수 변호사 재임을 추천했다. 노조는 “이철송 교수는 예금보험공사 부실책임기업 책임심의위원회 위원장으로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상대로 현대건설 부실책임을 이유로 520억원의 가압류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주도했다”며 반대해왔다. 이 과정에서 이철송 교수가 “사외이사 사퇴 의사를 밝혔다. 아니다”를 놓고 본인에게 확인할 것을 요구하는 소동도 빚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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