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 돈키호테 ‘주진형’ 확정? 국민연금은 즉각 부인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한 일간지는 지난 2일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에 내정됐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 직후 일부 시민단체는 주 전 사장의 정치적 색깔을 이유로 논란을 만들었다.

논란의 당사자인 국민연금은 “(주 전 사장 선임은) 결정된 바 없다”고 해명했다. 일각에서는 그를 옹호하는 입장도 상당하다. 주진형 전 사장과 국민연금 CIO 인선에 대해 알아본다.

635조 원 굴릴 국민연금 수장 선임, 도대체 언제쯤

주진형 전 사장은 지난 7월 시작된 CIO 2차 공모에서 마지막 후보 5인 중 1인으로 거론된 바 있다.


그러나 주 전 사장이 정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가까운 대표적인 친정부 인사이고 운용 전문가는 아니라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주 전 사장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한화투자증권 사장을 지내면서 매도 리포트 확대, 고위험주식 선정 발표, 수수료 기준의 개인성과급제 폐지 등 파격 행보를 보여 ‘증권업계의 돈키호테’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특히 2015년 삼성 합병에 반대해 사퇴 압박을 받았다. 또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1차 청문회 당시 참고인으로 국회에 출석해 사이다 발언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2016년에는 민주당에 합류해 총선정책공약단 부단장과 국민경제상황실 부실장을 지냈다.


국민연금 CIO 인선에서는 주 전 사장을 비롯해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안효준 BK금융지주 글로벌 부문 사장이 삼파전을 벌여왔다. 인선 과정에서 류 대표가 유력하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자본시장 대통령’으로 불리는 국민연금 CIO는 국민의 노후자금 5650억 달러(약 638조 원)를 운용하는 책임자다. 전 CIO인 강면욱 전 본부장이 지난해 7월 사표를 낸 후 1년 3개월째 공석이다.


최경진 국민연금 노조위원장은 지난 5일 오전  제7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 앞서 “국민연금 기금운용은 특별한 한 사람이 와서 잘나가는 특정 주식 몇 개를 사고  팔아 수익을 내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팀워크를 발휘해야 하는 자리인데, 주 전 사장은 자기 개성이 강해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주 전 사장이 오면 기금운용의 독립성이 확실히 보장될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평판조회를 거친 결과 국민연금 기금운용을 할 수 있을 만한 자격 자체가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삼성물산 합병에 반대했던 행동 자체는 평가할 만하지만 그런 경력이 CIO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CIO 인선 ‘난항’ 근본 이유는

주 전 사장의 CIO 임명은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1년 3개월이 되도록 적임자를 찾지 못하는 국민연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미국의 글로벌 유력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12일(현지시간) 국민연금이 전북 전주에 있다는 이유로 ‘분뇨 냄새가 난다’며 조롱에 가까운 보도를 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전주 이전으로 인해 정보 교류가 어렵고 인력이 빠져나간다고 꼬집은 것이다.


이와 관련 지난달 17일 송하진 전북도지사는 “지난해 2월 국민연금공단이 서울에서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한 뒤 기금운용본부의 인력 고용을 방해하는 요인이 지리적 위치라며 돼지 가축 분뇨 냄새가 나고 논밭에 둘러싸인 변두리로 폄하하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국민연금공단이 있는 전북혁신도시는 KTX를 비롯한 교통이 발달한 교통요지 익산과 20여 분 거리에 위치해 있고 1시간 반 내외면 수도권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은 28일 “국민연금 해외사무소에 파견 중이었던 직원 가운데 13명 중 8명이 퇴사했다”며 “업계에서는 해외사무소 직원들의 줄사퇴 원인으로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영본부의 전주 이전을 꼽는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이전에서 드러나듯 정치 논리에 휘둘리는 상황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강면욱 전 CIO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찬성을 이유로 자진 사임한 후 2018년 2월이 돼서야 국민연금 공단은 신임 CIO 공모를 개시했다. 공모를 통해 최종 후보에 올랐던 곽태선 전 베어링 자산운용 대표는 탈락 후 공모 한 달 전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참여하라는 전화를 걸었다고 폭로한 바 있다.


특정 후보자가 내정됐다는 소문이 거듭되자 이번에도 국민연금 CIO 선임에 실패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은 지난 2월 진행한 1차 공모에서 “적임자가 없다”며 선임을 포기했다. 당시 4개월 동안 시장에 온갖 억측만 남긴 채 불발된 바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올해 초 1차 공모까지 하면 1년 가까이 내정설과 해명이 반복되고 있는데, 국민연금 CIO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피로감은 상당할 것”이라며 “국민연금은 여론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빠른 시일 내에 적임자를 찾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내정 또다시 오보

한편 지난 2일 오후 국내 일간지는 “주 전 사장이 CIO로 확정됐다”면서 “대형 증권사를 이끌면서 업계의 부적절한 관행을 타파하는 파격 행보로 주목을 끌었다”고 보도했다.


이어 “그러나 일각에서 CIO의 본업인 투자 경험이 적고 증권사 대표 시절 내부 직원들과 마찰을 빚은 전력 탓에 우려를 스스로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덧붙였다.


이 보도 직후 국민연금공단은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가 국민연금 CIO(기금운용본부장)로 내정됐다는 서울경제(시그널)의 보도에 대해 “CIO가 내정된 사실은 없다”고 반박했다.


지난 3일 국민연금공단은 “기금운용본부장 선임절차는 현재 진행 중이며, 특정 후보자가 결정된 사실이 없다”고 주 전 대표의 내정 보도는 오보임을 밝혔다. 국민연금CIO 내정 관련 오보는 지난달 11일 아시아경제가 ‘국민연금CIO에 류영재 내정’이라고 전한 이후 두 번째다.


주 전 대표가 사실상 내정됐다는 보도가 잇따르자 사무금융노동조합이 반발하는 등 혼선을 빚기도 했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은 성명서를 내고 “노동자를 정리해고한 주 전 사장은 스튜어드십코드를 이행할 기금운용본부장이 될 자격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반면 한 누리꾼은 주진형 내정 관련 기사에 댓글을 통해 “바른 말 하눈(는) 주진형 대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전주금융타운 인프라에 협력하자”는 글로 그를 응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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