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전의 유혹’ 대부업 빛과 그림자
대형 대부업체들은 유명 연예인을 내세워 영업전선을 넓히고 있다. 또 무이자, 무담보라는 솔깃한 광고문구로 고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무등록 업체들은 연 200%가 넘는 불법 이자로 서민들을 울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내세운 무이자와 무담보 대출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일부 업체는 최고 금리를 인하했지만 원금의 절반이 넘는 고리가 뒤 따르는 일부 업체는 서민들에게 너무 버거운 굴레다. 대부업체의 숨겨진 비밀을 짚어본다.


대부업계와 정치권의 신경전이 시작됐다.
한국대부소비자금융협회는 최근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법정금리 규제에 대한 공식입장을 밝혔다.

협회측은 대부업체의 가장 큰 비용항목인 대손상각비와 자금조달비용의 절감이 뒤받침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배보다 배꼽이 큰 이자

신용불량자 등 저신용층과 거래하기 때문에 대손상각비를 개선하는데 한계가 있으며 금융당국이 대부업체가 금융권으로부터 저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기회를 직·간접적으로 막고 있어 고금리의 전주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일부 업체를 중심으로 이미지 개선에 나서고 있다. A업체는 사내 봉사단을 구
성, 정기적으로 사회복지시설을 찾고 있다.

금감원과 제도권 은행 고위 간부 출신들을 영입, 기업 경영에 내실을 다지는 곳도 있다.

하지만 정치권과 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가장 먼저 나선 곳은 민주노동당이다.

민주노동당은 지난달부터 대부업체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민노당은 지난달 말 ‘민주노동당판 쩐의 전쟁’이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대부업체의 TV광고제한과 법정금리 인하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날 대부업체 방문 검사, 금리상한 연 25% 규제, 고액대출 이자 20% 제한, 고리대 엄중 단속 등 고리대 박멸을 위한 8대 제안을 발표됐다. 또 전북지역을 시작으로 고리대 추방과 고금리 인하를 위한 민생탐방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드라마 쩐의 전쟁 바로 알기’라는 자료에 실제 사례를 인용, 대부업계의 폐해를 고발하고 있다.

“대부업자들은 손을 대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기술이 있어요” 자영업자 김진수씨(42·가명)는 대부업체에 진 빚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다.

현행 대부업법은 법정 이자율을 연 66%로 제한하고 있다. 대부업체 광고들이 대부분 법정 금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내세우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복리’라고 불리는 이자 계산법 때문이다. 복리는 이자에 원금 이자를 메기는 방법이다. 연체가 시작되면 빚은 복리계산 때문에 원금의 몇 배로 불어난다.

김씨는 “갚아야 할 빚이 3배로 늘어났다”며 “복리 계산 때문에 계약 당시보다 이자가 2배인 셈”이라며 “배보다 배꼽이 큰 꼴”이라고 토로했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발표한 사금융 이용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금융을 이용한 응답자의 54%가 대부업체의 이름을 모르고 있었고 14%도 무등록 업체에서 돈을 빌렸다고 대답했다. 등록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린 사례는 32%에 불과했다. 불법사채시장을 이용하는 서민 10명 중 7명은 복리의 굴레를 쓰고 있는 셈이다.


등록업체 이용자 32% 불과

김씨는 최근 은행권을 찾았다. 골치 아픈 사채 빚을 청산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은행의 대답은 냉담했다.

김씨는 “사채를 쓰고 있냐고 물으면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며 “대부업체의 신용정보 조회기록이 남아 있다는 대답뿐이었다”고 말했다.

대부업체의 무이자 무담보 광고에는 몇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첫 번째는 무이자 무담보 대출이 대부분 신규대출 고객이라는 점이다. 고객이 안심하고 돈을 빌리면 고객의 신용정보에는 대부업체의 신용조회 기록이 남는다. 기록은 고객의 은행권 대출을 막는 장애물로 작용한다. 은행권이 대부업자의 신용조회 유무를 중요한 대출 조건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업자로부터 돈을 빌린 고객은 계속 고리 대부업자들의 돈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대부업자 입장에서는 무
이자 대출 상품이 단골 고객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인 셈이다.

고객입장에서 보면 신용등급이 아무리 높아도 대부업체 돈을 사용한 기록은 약점으로 계속 작용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문제는 최근 3년간 실시된 사금융 이용자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난다. 조사결과 응답자의 5%가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대부업체의 신용조회 기록’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젊은 경제주체들이 흔들린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대부업자의 신용정보 조회기록이 많으면 개인 신용등급이 떨어질 수 있고, 신용대출심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 대출을 알선하는 대출중개업체들의 이자율도 서민들에게 높기만 하다.

본지가 대부업체들의 인터넷 사이트를 확인한 결과, 일부 대출 중개업체가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과 업무 제휴를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A 대출중개업체 인터넷 사이트에는 회사 연혁을 소개하면서 국내 B저축은행과 신용대출 및 담보 대출 업무 협약을 했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대출중개업체들은 불법 대출 수수료를 일절 요구하지 않으며 대출에 관련한 금리, 연체 이자율은 해당 금융사 요율에 따른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이 제시하고 있는 이자율은 제1·2금융권 이자율과 차이를 보인다. 제2금융권만 보더라도 직장인 대출 최저 금리는 10%내외다. 반면 대출 중개업체를 통한 대출의 최저금리는 20%에 육박한다. 중개업자들이 제시하는 금리가 금융권과 10%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부업자는 “대출중개업소의 전주는 사실상 금융권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대부업계는 법정금리 인하가 수백만에 이르는 저신용자들의 생계형 대출이라는 순기능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업계 이용자들을 분석한 조사 자료를 보면 이면을 볼 수 있다. 금융감독원의 사금융 이용실태 조사에서는 지난 2004년부터 최근 3년간 금융채무 불이행 경력이 없는 정상채무자의 비율이 60%를 넘었다.

지난 4월 발표된 금융연구원의 조사 자료에서도 신용에 문제가 없는 고객들이 대부업체의 돈을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대부 잔액 30억원 이상 5000억원 이하인 중·대형 대부업체 29곳의 이용자 중 연 소득이 2000만원 이상인 이용자 비율이 61%를 넘었다. 연 소득 4000만원 이상인 고객도 31%를 상회했다.

특히 대부업체 이용자 가운데 은행 등 제도권 금융기관을 이용할 수 있는 신용등급을 갖고 있는 사람이 60%에 육박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상당수의 서민들이 신용등급에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 급전이라는 유혹 때문에 대부업체를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함께 젊은 경제주체들이 고리의 늪에 빠지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국내 대부업 구조가 20~30대의 경제능력을 빼앗는데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조사한 사금융 이용실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대부업체의 이용자 연령 분포를 보면 20·30대가 76%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전년대비 8% 늘어난 수치다. 직업별로 보더라도 응답자의 52%가 일정한 수익이 있는 회사원이었다.

젊은층이 대부업체와 거래하는 비율이 높은 것은 급전의 유혹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법무부와 국정홍보처가 지난해 벌인 사금융 이용실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10명중 3명은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대출받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서’라는 응답란에 표시를 했다.

이와 관련, 참여연대는 지난 13일 보도자료를 내고 “TV 광고 등을 통해 대부업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고 대부업체 이용시 신용등급 하락으로 인해 은행 등 제도금융권과의 거래가 차단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대부업을 이용한 350만~400만명에 이르는 신용소비자들이 고율의 이자부담과 가혹한 채권 추심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방송위원회가 대부
업 광고를 규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회 심의 앞둔 대부업 법률안

대부업체 관련 법률안이 국회 심의를 앞두고 있어 처리를 놓고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등록을 기피한 대부업자의 이자율을 25% 이내로 엄격히 규정하는 법률안을 준비 중이다.

심 의원은 18일 열리는 국회 금융 및 경제법안 심사위원회에서 법률제안 설명회를 가진 후 상정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심 의원은 자본금 1조원 규모의 서민은행을 설립해 서민들의 창업, 긴급 생활자금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서민은행법안을 발의했다.

정부도 대부업체 관리에 나섰다. 국세청이 최근 법정금리 66%가 넘는 이자를 적용하고 있는 미등록 대부업체 100곳을 대상으로 세무점검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자치부도 올해 안에 지방자치단체가 관할하고 있는 대부업체의 영업 현황 등 주요 정보를 전산화한 후 재경부, 금감위. 금감원 등 유관 기관의 전담인력과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또 대부업 전담부서도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법정금리 인하와 대부업체 관리 방안에 대한 정치권의 입심이 거세질 것으로 보여 대부업계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심상정 의원실 관계자는 “법정금리 인하를 담은 법률안은 이번 주 금융소위에서 제안 설명을 거친 뒤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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