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錢主), 그들은 누구인가

‘대부업자 위에 있는 대부업자’ 소위 전주(錢主)를 일컫는 말이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쩐의 전쟁’에서 독고철의 모습이다.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서 현실 속 전주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알고 싶으면 담보를 가져오면 됩니다” 한 대부업자가 전주의 존재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그들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부분의 대부업자들도 전주들에게 고리를 지급하면서 돈을 빌리고 있다. 그들은 누구일까.


지난 13일 잔뼈가 굵은 대부업자 A씨를 만났다. A씨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대부업을 하고 있다. 그가 밝힌 대부업 규모는 수십억원이다. 돈의 출처에 대해 전주라는 대답을 내놨다. A씨는 지역에서 제법 규모가 있는 대부업자지만 전주의 그늘에 있는 셈이다.

A씨의 전주는 전직 금융업계에 종사하던 간부 출신과 지역에서 갑부로 불리는 일반인이다. A씨는 고리에 돈을 빌려 주고 있지만 고리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들에게 빌린 돈은 30억원이다. 연 이자는 30%. 매년 전주에게 10억원의 돈을 바치고 있는 것이다.

A씨는 국내에서 활동 중인 전주들 상당수가 금융권 경력이 있다고 귀띔했다. 대기업 출신도 있다. 이들이 대부업계에 풀어놓는 돈은 평균 50억원에 이른다. 일부 대부중개업자들은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서 돈줄을 대고 있다. 업자들이 제2금융권의 영업자를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피라미드 구조, 정체 밝히기 어려워

전주도 피라미드 구조를 갖고 있다. 대부업자들은 이들과 어떻게 접촉할까. 보통 인맥을 통해 전주를 찾아가 돈을 빌린다. 하지만 그냥 빌려주는 것이 아니다.

은행권 대출과 같이 담보를 제공해야 한다.

전주가 직접 대부업을 운영도 한다. 이런 전주들은 비교적 적은 규모의 자금을 운영한다. 대부분 일명 바지 사장을 내세워 소형 대부업체 형태의 점조직을 활용
하는 방법이다.

계약서에 채권자가 개인 명의로 돼 있으면 전주가 직접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 대부업체들은 대출 수수료를 챙기고 전주는 높은 이자 수입을 챙기는 구조다.

채권자의 담보권도 전주의 것이라 채무자가 연체를 하더라도 담보 경매 처분 등을 통해 원금을 회수한다. 또 일반인이 돈을 빌리는 과정에서 전주와 캐피털이라고 불리는 대부업체들을 연결하는 중개업자까지 끼면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이들 위에 숨어 있는 전주도 있다. 000회장으로 불리며 100억원대의 돈을 주무른다. 직접 대부업체를 운영하지 않는 이유도 그들이 만지는 돈의 규모에서 찾을 수 있다.

20~30%의 고리도 있지만 대부업자들에게 돈을 떼일 염려도 없기 때문이다. 대규모 대부업체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법인 등록을 해야 하는데 세금 부담도 만만치가 않다.

특히 이들은 국내 기업들의 정보를 차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전주들은 기업 간 인수합병에 적극 가담했다. 그러나 최근 추세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A씨의 설명이다.

A씨는 “유명한 기업 관계자가 직접 찾아올 때가 많다”며 “대부분은 부도를 막기 위해 돈을 빌려간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시민단체와 일부 정치인을 중심으로 거론 되고 있는 법정 금리 인하 논의는 대부업자와 전주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대부업자 입장에서는 법정금리가 인하되면 전주에게서 빌리는 돈의 이자가 떨어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반면 고액의 대출 수수료는 그대로 남아 있다.

때문에 법정 금리 인하가 정치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되면 얼굴을 감추고 있는 전주들이 직접 대부업체를 운영하는 사례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부업계 내부도 고리(高利)의 고리다”

-전주와 어떻게 연결되나
▲대부분 전주와의 접촉은 인맥을 통해 이뤄진다. 나의 경우도 사람을 통해 전주를 소개받았다. 알고 있는 대부업체가 모두 인맥을 통해 전주에게 돈을 빌린 후 영업을 하고 있다.

-전주에게 주는 이자는
▲제도권에서 수십억원을 빌려 대부업을 하기는 어렵다. 상응하는 담보물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전주는 담보에 대해 너그러운 대신 높은 이자를 요구한다. 그렇다고 담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돈을 빌려 주지 않는다. 이자는 전주에 따라 다르지만 최고 법정금리의 절반일 때도 있다.

-전주의 출신과 자금 동원 능력은
▲50억원을 기준으로 나누면 될 것 같다. 전주가 대부업체 한곳에만 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수십억원의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2~3명의 전주를 찾아 돈을 빌려야 한다. 전주는 금융권 출신이 가장 많은 것 같다. 전주 위에 전주가 있다는 말도 있지만 자세한 내막을 알기가 힘들다.

-전주가 기업을 인수하는 사례가 있는지
▲대부업체와 전주에게 돈을 빌리러 오는 기업 대부분이 부도 위기 상태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전주가 직접 나서서 기업을 인수하려는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부업체가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데 궂이 나서서 중소기업을 인수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