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발렌타인 세무조사 내막

최근 국세청이 국내 최대 위스키 업체인 진로발렌타인에 대해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윈저 생산업체로 알려진 디아지오코리아가 탈세 등의 혐의로 면허정지 위기에 놓인데 이은 조치여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같은 상황이 연출되자 주류 업계는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디아지오코리아의 판매자격 취소로 국내시장의 ‘판도’가 크게 변화할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술값 인상 등으로 물가 상승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일부 업자들은 향후 물품 공급이 중단될 것을 우려해 벌써부터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는 후문이다.
국세청은 국내 위스키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두 업체가 불법거래 혐의로 도마 위에 오른 이상, 이들 거래업체인 주류 도매상 및 일반 유흥주점에 대한 추가 조사도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국세청의 조사결과에 따라 면허취소 또는 면허정지 등 주류업체들에 대한 초강력 조치가 예상되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진로발렌타인 ‘무자료거래’ 세무조사

국세청의 한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국세청은 디아지오코리아에 이어 진로발렌타인에 대해서도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수원에 위치한 한 물류창고에서 출처불명의 발렌타인 등의 주류가 무더기로 적발된 까닭이다.

이 관계자는 “지난 3월 국세청은 경기도 수원시 영통지구에 위치한 한 대형물류창고에서 무자료로 거래되던 발렌타인과 임페리얼 4446상자를 긴급 압류했다”면서 “이에 지난주부터 진로발렌타인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무자료 거래’란 부가세의 근거가 되는 세금계산서 없이 상품을 매매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는 곧 탈세로 이어져 이 같은 사실이 적발되면 심한 경우 주류 생산 및 유통면허가 취소된다.

앞으로 벌이게 될 세무조사 내용에 대해 이 관계자는 “디아지오코리아에 대해 조사한 내용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면서 “위장거래 여부, 무자격자 불법판매 여부, 가산세 미납 여부 등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국세청이 1차 거래선(도매상)을 대대적으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2차 거래선(소매상)의 거래 내역까지 탐문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전국적으로 매우 정밀한 조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업체 “우리 소유 물건 아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진로발렌타인 측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물건이라며 강변하고 있다.

진로발렌타인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 적발된 물품은 도매상이 발렌타인 등의 주류를 유통하는 과정에서 압류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우리 회사 브랜드가 맞긴 하나, 본사 소유의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물건인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난 3월 이후 한 번도 조사 의뢰를 받은 적이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세청의 입장은 다르다. 디아지오코리아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 짓기 위해 진로발렌타인 조사를 일시적으로 유보한 것뿐이라는 것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지난 3월 물류창고 압수 이후 진로발렌타인에 대해 바로 조사를 진행하지 않은 것은 디아지오코리아에 전념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이 회사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된 만큼, 적극적으로 조사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주류업계, 무자격거래 조사에 ‘초비상’

이로 인해 국세청의 향후 행보와 관련, 업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세청은 일단 디아지오코리아의 무자료 거래 사실 확인에 이어 진로발렌타인도 이 같은 의혹이 제기된 만큼, 일선 도소매상에 대한 추가 조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이 관계자는 “받는 곳이 있기 때문에 주는 곳도 생겨나는 것 아니겠느냐”며 “현재 국세청은 전국 2만여 개의 주류 도소매 업자와 일반 유흥주점 등에 대한 전면 세무조사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관련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디아지오코리아의 판매자격 취소로 국내 주류시장의 판도에 미세한 균열이 일고 있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위스키 시장 점유율은 진로발렌타인이 35.5%로 선두를 유지하고 있고, 디아지오코리아가 34.7%, 롯데칠성이 17.1%, 하이스코트 5%로 뒤를 잇고 있다. 사실상 디아지오코리아와 진로발렌타인이 국내 시장의 70% 이상을 점령하 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국세청이 두 회사에 대해 잇달아 세무조사를 진행하면서 시장 구도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실제로 최근 두 회사가 국세청 조사 등 외부환경에 발목이 잡혀 주춤하고 있는 사이, 롯데칠성이나 하이스코트 등 후발 주자들이 추격에 힘을 싣고 있다.

롯데칠성의 경우 스카치블루 17년산의 1분기 출고량이 1만 2599상자로 지난해에 비해 47%나 급증했다. 전체 위스키 생산량도 전년 대비 7.8% 늘어난 12만 3800 상자를 기록했다.

하이트맥주 계열사인 하이스코트도 킹덤 21년산의 매출과 점유율에 상승시동을 걸고 있다.

이로 인해 올해 처음으로 시장 점유율 5%대 진입에 성공했다.

이같은 추세로 볼 때 국세청 조사결과에 따라 주류시장에 ‘지각변동’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모 주류업체의 한 관계자는 “디아지오코리아나 진로발렌타인이 국세청 조사에서 면허정치 또는 취소 처분을 받을 경우 새로운 판매루트를 마련할 때까지 영업이 불가능하다”면서 “이 과정에서 후발 주자들의 점유율이 급상승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업계 일각에서는 디아지오처럼 세무조사가 장기화될 경우, 대목 시즌인 겨울 내내 진행될 것을 우려하고 있기도 하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세청의 조사 결과에 따라 겨울철 술 영업에 막대한 영향이 미칠 수도 있지 않겠느냐”면서 “이번 조사로 인해 주류 소비가 위축돼 술값이 인상되는 등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는 경제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근심어린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밖에 디아지오의 주류 판매 자격이 취소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일부 업자들은 품귀현상에 대비해 벌써부터 사재기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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