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창업주에 맞선 내막

삼성전자가 상위 30개 대기업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부동산 자산 불리기’ 실적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이 새로 공장을 짓거나 사업을 펼치기 위해 움직이면 그 주변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데 따른 것. 이에 부동산 업계를 중심으로 “삼성전자만 따라 다녀도 돈을 번다”는 속설이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선대회장은 살아생전 “기업가에게는 이익이 나더라도 하지 않아야 할 일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땅에 투자해 이익을 보는 것”이라며 “투기하는 기업인은 기업인이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기업가가 하지 말아야 할 일 중 하나로 부동산 투자를 꼽았다. 이는 고 이병철 회장의 맏아들인 이맹희씨가 작성한 <묻어둔 이야기>란 회고록에도 잘 나와 있는 내용이다.


삼성전자가 사업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재테크에도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26일 금융감독원이 제출한 주요 기업의 2006년 감사보고서를 살펴보면, 삼성전자가 보유한 부동산 가치는 8조9802억원(작년 말 기준)으로 작년대비 1조8047억원(2005년 기준)이나 오른 것을 알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의 부동산 자산 가운데 토지 가치는 3조5238억원으로, 전년보다 34%가량 늘었다. 삼성전자가 보유한 서울과 수도권 일대의 땅값이 크게 오르면서 공시지가도 대폭 오른 것.

건물 가치도 신규 시설 투자 등으로 20% 증가한 5조4564억원으로 집계됐다.


부동산의 귀재 삼성

단군 이래 최고의 땅값을 자랑하는 요즘, 삼성전자가 전사 단위는 물론 그룹 차원에서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까지 대대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해 이목이 집중된다. 최근 2년간 지역별 핵심거점에 있는 알짜배기 건물들을 팔아치운 것.

지난해 삼성전자는 서울 양평동 사옥, 양재 사옥, 인천 사옥, 부천 사옥 등 7개 빌딩을 매각, 토지와 일부 기계·설비를 합쳐 총 3000억원 안팎의 유형 자산을 처분했다.

또 올해 들어 지난 1분기에만 서울 강남권의 대치사옥과 능동사옥, 분당사옥, 대전둔산사옥 등 700억원 이상의 부동산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매각 금액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이른바 금싸라기 땅으로 알려진 만큼 그에 따른 돈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게 부동산 업자들의 전언이다.

이러한 삼성전자의 움직임에 대해 부동산 업계는 “부동산 가격 상승 국면이 정점에 달했다고 판단했기 때문 아니겠느냐”며 “부동산 자산 가치가 많이 올랐을 때 매각해 현금화하려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창업주 경영마인드에 위배

그러나 이러한 삼성의 ‘불굴의 땅테크’는 삼성그룹의 창업주이자 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아버지인 고 이병철 선대회장의 경영철학과 상반된 모습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비운의 황태자’로 불리는 고 이병철 회장의 맏아들 이맹희씨의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에 따르면 고 이병철 회장은 살아생전 기업가가 하지 말아야 할 일 가운데 하나로 ‘부동산 투기’를 손꼽았다.

책에 따르면 1970년 초반, 이씨는 자신의 돈 1억원과 부친의 돈 1억원, 제일모직 자금 1억원을 모아 모두 3억원으로 우연한 기회에 대구 동대구역 부근의 대지 수십만평을 구입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개발에 관한 정보를 미리 얻고 그 땅을 매입했던 것.

이후 이맹희씨는 부친 이병철 회장에게 대구에 땅을 구입하게 된 경위에 대해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실제 그 땅은 구입한 지 보름만에 부동산 가치가 10배나 껑충 뛰어올랐다. 그러나 이씨의 설명을 들은 고 이병철 회장은 칭찬은커녕 이씨에게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이맹희씨는 책을 통해 “내 설명을 들은 아버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아무런 말이 없었다. (생략) ‘기업가에게는 이익이 나더라도 하지 않아야 할 일이 있고 손해가 나더라도 해야 할 일이 있다. 너는 미국에서 무슨 공부를 했길래 그것도 구분을 못하노? 너는 아직 기업가가 아니다’라는 청천병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고 당시 상황에 대해 전했다.

<묻어둔 이야기>에 따르면 이후 고 이병철 회장은 장남 이씨에게 ‘그 땅을 바로 팔라’고 지시했다.

문제는 그 땅을 팔고 나서 또 생겼다. 급하게 팔았음에도 불구하고 1억원 어치 땅이 한 달 반 사이에 9억8000만원이 되어 있었던 것.

땅을 처분한 돈을 고 이병철 회장에게 보고했던 날도 이맹희씨는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책을 통해 “그 돈을 일단 아버지에게 보여드렸더니 아버지는 내가 책상 위에 내놓은 돈 중 1억원만 끌어당기곤 나머지 8억8000만원의 수표는 나에게 연필로 쭉 밀어내며 ‘이건 내 돈 아니다’라고 했다. 손이 아니고 연필로 그렇게 한 것은 ‘나머지 돈은 더럽다’는 뜻이었다”고 전했다. 이렇듯 고 이병철 회장은 ‘기업가가 부동산 투기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땅 투기로 번 돈 또한 매우 ‘더럽게’ 여겼다.

이와 관련, 일각의 부정적 시각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상권을 매월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상권을 분석한 지난해와 올해 유독 부동산을 많이 매각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삼성전자의 업태는 제조업으로 제품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일으키는 것이지 땅을 팔아서 이익을 창출할 의도는 없다”고 반박했다.

시세에 맞춰 매각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그는 “부동산 시세와 경기는 아무 상관없다”면서 “상권분석을 한 결과 효율성이 있느냐, 떨어지느냐에 따라 매각을 결정짓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국내 최대 재벌기업인 삼성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현금성 자산을 내부 유보로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사업 투자 자금 조달을 위해 부동산을 매각했다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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