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주인된 나라-민생법안 어떻게 바뀌나?

정부의 민생법안 정비작업이 가속을 붙이고 있다. 불법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거나 빚보증을 잘못 서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어 정부가 칼을 빼어든 것이다. 해당 업체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 공정거래위원회의 광고단속 등 전 방위의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 법 규정과 행정 지침 등도 만들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이자제한법 시행령과 보증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이 대표적 예다. 법무부는 지난해 3월 ‘서민법제 개선 추진단’을 구성, 두 법안을 정부안으로 확정하고 이자제한법의 경우 지난 6월 30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법무부는 이 밖에도 새마을금고 등 대표적 서민금융기관이 수표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하고 농민들의 ‘밭떼기’ 피해를 막기 위한 법안도 계속 추진할 예정이다. 또 벌금형을 감당할 경제적 능력이 없는 서민은 노역장에 유치되는 대신 사회봉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벌금 미납자의 사회봉사 집행에 관한 특례법’을 입법예고하기도 했다.

사채이자를 연 30%로 묶고 보증계약 때 보증인에게 채무자 신용상태를 미리 알리도록 하는 등 서민들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법안의 주요 내용들을 파악해 실생활에 접목시킬 필요가 있다. 특히 사채업자 등으로부터 돈을 빌려 썼거나 빚보증을 선 사람들의 경우 관심을 갖고 피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대비하는 게 지혜다.


보증인 보호 특별법 “채무자 신용상태 보증인에 알려야”

우리나라는 특유의 인정주의 탓에 보증 이후의 여러 문제에 대한 법률적, 이성적 고려 없이 쉽게 보증을 서 주고 의도하지 않은 경제적·정신적 피해를 입는 사례가 적잖다.

대개 배우자, 부모, 자녀, 친지, 친구, 동창, 직장동료 등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보증을 서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정상 거절하기도 어렵고 승낙하자니 마음 무거워지는 게 바로 빚 보증이다. 문제는 이런 보증제도의 폐해가 아주 많다 것이다. 한 사람이 파산할 경우 또 다른 사람을 빚더미에 올려놓는 ‘연쇄 파산’ 현상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보증인 중 많은 수가 ‘개인 파산’ 수순을 밟고 있다는 사실이 잘 말해준다.

보증제도는 금융권의 신용대출 관행 선진화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금융기관 입장에선 돈을 빌린 사람이 갚지 못할 경우 보증인이 빚을 떠안게 되므로 신용도 조사에 열을 올릴 필요가 없는 까닭이다.

이에 법무부는 친지나 친구 등을 위해 채무자 신용 상태에 대한 고려 없이 ‘호의로’ 빚보증을 섰다가 파산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대책을 만들었다. ‘보증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 마련이 그것이다. 이자제한법과 함께 지난 6월19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보증인 보호법은 곧 국회로 넘어가 관련 법안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법안은 보증계약을 맺을 때 금융기관이 채무자의 신용상태를 보증인에게 알리도록 하고, 보증인이 부담한 보증 최고액도 정하도록 했다. 이런 규정을 어긴 보증계약은 무효로 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채무자가 빚을 갚지 않고 연체 중일 땐 이를 보증인에게 알려줘 제때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또 보증기간을 미리 정하지 않은 보증계약은 기간을 3년으로 제한했다. 대부업체와 빚을 대신 받아주는 추심 대행업자는 물론 개인 채권자가 보증인과 가족 등에게 폭행, 협박, 위협을 가하는 등 불법적으로 빚 독촉을 하면 형사상 처벌을 받게 된다. 법무부는 이 법안으로 채무자에 대한 신용상태 조사 없이 보증인만 믿고 돈을 빌려주는 금융기관들의 관행에 제동을 건다. 이와 함께 보증 최고액 특정과 보증기간 제한 등으로 예상 밖의 채무액 증가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전망하고 있다.

스위스,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 국가들은 보증의사 표시를 반드시 서면으로 하고 보증 한도액을 표시하는 등 보증인 보호 제도를 적극 시행하고 있다.


연간 30% 넘는 사채이자 ‘무효’

사채시장을 찾는 이들은 제 1·2금융권을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개인 신용도 10개 등급 중 7등급 이하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등록 대부업체를 이용할 경우 조회기록이 남아 나중에 은행권을 이용할 때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어쩔 수없이 사채를 쓴다. 심지어 은행의 몇 십 배에 달하는 높은 이자를 감수하고서도 사채업자 돈을 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11월부터 올 2월 57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서민들이 제도권 금융기관을 이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출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다음이 ‘연체 기록’ 때문이었다. 또 대출한도 소진, 신용조회 기록 등 80% 이상이 불량한 신용 상태와 관련된 내용들이었다. 더욱이 1998년 외환위기 때 이자제한법이 없어지면서 사채시장의 평균 이자율은 한해 200~300%, 심한 경우는 1000% 대까지 치솟았다. 법무부 관계자는 “채무자들은 살인적 이자 부담, 협박·폭행 등 불법적인 빚 독촉으로 고통 받다가 85% 이상이 2년 안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한다”고 말했다. 한번 사채를 쓴 사람은 계속 연결고리가 돼 신용불량자의 늪에 빠지고, 결국 또 다시 사채를 쓰는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는 게 한 대부업체 직원의 설명이다. 금감원이 지난 해 추정한 사금융 업계의 평균 금리는 연간 204%. 등록 대부업체는 연 167%, 무등록 업체 금리는 연 230%로 모두 법정 이자율을 크게 벗어나는 수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채 시장의 폭리를 제한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시민단체와 학계, 정치권 등에서 끊임없이 있어왔다. 지난 3월 의원입법 형태로 이자제한법이 부활했다. 그로부터 3개월 뒤인 지난 6월 19일 기본법 형태의 이자율제한법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시행 중이다.

사채를 쓰는 사람들은 법안을 정확히 알아두면 도움이 된다. 지난 6월 30일부터 무등록 대부업자나 사채 돈을 쓸 때 한해 30%를 넘는 이자는 무효로 간주된다는 게 핵심이다. 돈을 빌린 사람이 초과이자를 주었을 땐 해당 액수만큼 원금을 갚은 것으로 처리할 수 있다. 또 만기 후라면 돌려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게다가 등록 여부에 상관없이 대부업자가 대부업법상 최고 이율(지금은 연간 66%)을 초과하면 이자제한법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는다.


서민금융기관 수표 발행 허용… ‘밭떼기’ 거래도 시정

정부는 상호저축은행, 새마을금고, 신용협동조합 등 대표적 서민금융기관 3곳에 대해 자기앞수표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지금까지는 이들 기관이 은행에 협력자금을 맡긴 뒤 그 은행의 수표를 받아 고객에게 주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이에 따른 비용이 146억~830억원에 달했다.

법무부는 관련 법령이 완비돼 제도가 시행되면 이들 금융기관들이 자기 명의로 수표를 발행, 서민들에게 줄 수 있게 되고 경영비용 절감으로 수익성이 높아져 고객들에게 이익이 돌아갈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주요 농산물의 60~80%가 ‘밭떼기(밭에서 나는 작물을 밭에 나 있는 채로 몽땅 사는 일)’로 거래되는 점을 감안, 농민들의 피해 방지책도 마련했다. 밭떼기로 농민들이 수확기에 값이 올라도 혜택을 보지 못하고 값이 내리면 일방적 계약파기로 손실을 떠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면계약 의무화·작황 등 사정 변경에 따른 대금 증감 청구권 인정 등을 뼈대로 하는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개정 작업을 벌이고 있다.


벌금 낼 능력 없는 서민은 ‘노역 대신 사회봉사’

벌금형을 받았지만 경제적 능력이 없어 이를 내지 못한 사람에게는 노역장에 유치되는 대신 사회봉사를 할 수 있는 방안도 추진된다.

법무부는 가난해서 벌금을 내지 못하는 사람이 사회봉사를 통해 미납 벌금을 대신할 수 있도록 하는 ‘벌금 미납자의 사회봉사 집행에 관한 특례법’ 제정안을 지난 6월21일 입법예고했다. 현행 형법이 경제적 능력이 없는 경우 형벌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형사 사법 분야의 양극화’ 원인이 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법무부는 임대차 보증금 반환 보장, 악의적 채권 독촉 근절, ADR(대체 분쟁해결 수단) 등 서민 권리를 확대하기 위한 장·단기 과제도 마련 중이다.


#대부 업체 제대로 이용하기

1~10등급으로 나뉘는 신용 등급 중 7~9등급의 낮은 신용도의 사람이 급하게 돈이 필요하면 갈 곳은 대부업체밖에 없다. 고금리·불법 추심으로 부정적 인식이 있긴 하나 대부업체는 사정이 딱한 저신용자들에게 ‘구세주’ 역할을 해 온 것도 사실이다.

대부업체의 장점은 원할 때 언제든지 수수료 없이 대출금을 갚을 수 있다는 것. 저축은행과 캐피털업체들은 만기 전에 대출을 갚으면 2~3%의 상환수수료를 물린다. 또 이들은 업체는 취급수수료로 5~7%를 가져가기도 하나 대부업체는 이런 수수료가 없다. 따라서 실질적인 금리차가 10%포인트 밑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등록대부업체의 경우 연 66%가 넘는 이자는 불법이므로 대출자는 초과이자를 갚지 않아도 된다. 등록업체 중 연 30%대의 금리를 받는 곳도 있다. 대출절차가 빠른 것도 대부업체의 장점이다. 우량 업체들은 대출신청에서 계좌입금까지 1시간이면 끝난다.

그러나 대부업체를 함부로 이용하면 안 된다. 미등록 대부업체에서 대출받을 경우 한해 200%가 넘는 초고금리를 물게 되고 전화 협박, 심야 방문에 시달리기도 한다.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기 전에는 등록업체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또 대부업체에 ‘돈을 빌릴 수 있는지’ 문의만 해도 기록이 남아 신용등급이 낮아질 수 있다. 대출신청을 받은 대부업체가 신용조회를 하면 등급이 떨어져 시중은행 등 제도권 금융회사에서 3~4년씩 대출을 받지 못하게 될 수 있다. ‘무이자 광고’에 끌려 대부업체를 이용하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신용정보 관계자는 “신용 등급은 월 소득이나 재산과는 무관하다”라며 “소득이 적더라도 연체한 적이 없고 건전한 금융거래가 많으면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신용 관리 어떻게 이뤄지나

신용도가 갈수록 중요시 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신용도는 곧 돈이고 힘이다. 그런데도 일반인들은 신용도 관리에 무심하거나 어떻게 이뤄지는지도 잘 모른다. 지식 정보화 사회에 자신의 신용도, 특히 금융신용 관리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는 한국신용평가정보 등 3곳의 신용정보회사가 있고 금융 기관별로도 신용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개인별 · 회사별 · 단체별 신용 평가 관리가 실시간 이뤄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전국은행연합회도 지난 5월7일부터 금융 기관에 신용 정보 및 세금 우대 한도 관리 정보를 24시간 제공하는 ‘24×365 서비스’를 가동 중이다. 신용 평가는 보통 1~10등급으로 나뉜다. 카드 사용 실적, 할부 구매 현황, 신용 조회 건수, 연체 정보 등을 점수로 매긴 것이다. 신용도에 따라 대출 한도가 20배까지 차이난다. 반면 신용도가 가장 낮은 10등급은 최우수 1등급보다 금리가 두 배 쯤 더 높게 적용된다.

국민은행은 이보다 더 세분화 되어 있다. 신용·소득 등급에 따라 신용 대출 한도를 5백만~1억원까지 차등화 한다. 1억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는 사람은 개인신용평가(CSS)가 1등급이면서 소득 등급도 A인 고객이다. CSS는 대출 상환과 금융 기관의 거래 정보가 쌓인 신용 등급으로 1~13등급까지 있다. 소득 등급은 A등
급 1~5등급으로 나뉜다. A등급은 한해 소득이 8천만원 이상이거나 4급(서기관) 이상 공무원, 10년 이상 재직한 판·검사 등이다.

신용 대출의 최소 단위인 5백만원을 빌리려면 CSS 8등급이면서 소득 5등급이어야 한다. 연간 소득이 1천7백만원을 넘거나 상장사 등에 다니는 사원 이상이 해당한다. 9등급 이하는 신용대출 대상에서 제외된다. 좋은 직장에 다니고 소득이 많아도 대출금을 제때 갚지 않은 사람은 신용대출을 받을 수 없다. 금리도 등급에 따라 다르다. 3개월 변동금리 기준으로 CSS 1등급은 연 6.86~7.56%이지만 8등급은 11.76~12.46%로 차이가 크다. 신용정보회사들은 대부업체와 제2금융권에서 대출 받은 사람의 신용점수를 깎고 있다. 한국개인신용 관계자는 “높은 신용 등급을 가진 고객이 저축은행이나 캐피털사에서 돈을 빌리면 신용에 불이익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한국신용평가정보도 비슷하다. 이 회사는 업종별 기록을 바탕으로 1년 뒤 연체 확률이 얼마인지를 신용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시중은행들 역시 심사에서 대부업체 이용 기록이 있는 고객을 반기지 않는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1년 안에 신용조회 기록만 있어도 대출심사 때 불이익을 받는다”며 “무턱대고 대부 업체나 2금융권을 이용하면 대출이 막히거나 이자를 더 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부회사들과 공생하는 불법 중개업자들이 고객신용도 하락의 주범으로 알려져 있다.

대출의뢰가 들어오면 자신이 거래하는 10곳의 대부업체에 조회를 한다. 고객은 한곳에 대출 신청을 했으나 10곳에서 조회하는 꼴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