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불 망(三不忘) - (24)
삼 불 망(三不忘) - (24)
  •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
  • 입력 2018-10-08 13:23
  • 승인 2018.10.08 13:26
  • 호수 1275
  • 6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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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사직을 구한 불멸의 명신 이제현

선두 호위병들은 크게 놀라 노인을 삽시간에 둘러쌌다.

“저리 비키시오! 이 행차가 어떤 행차라고 감히 상왕 전하를 알현하겠다고 하시오!”

호위병들은 우격다짐으로 노인을 몰아내려 했으나, 소신을 굽히지 않은 노인은 한사코 어떤 일이 있어도 충선왕을 알현해야만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제현은 말위에서 호위대장을 보고 물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저렇게들 소란스러운가?”

호위대장이 다가와 대답하였다.

“난데없는 노인이 행차 앞에 나타나 상왕 전하를 알현하겠다고 하여 소란스럽게 되었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 모양인데, 내가 상왕 전하의 윤허를 얻을 테니까 그 노인을 모셔 오도록 하시오.”

호위대장은 급히 달려가 노인을 안내하여 충선왕 앞으로 대령시켰다.

노인은 수레 앞에 다가오더니, 충선왕에게 부복하며 말했다.

“상왕 전하, 저희들은 지난날 당나라가 고구려 유민을 다스리고자 치청절도사(淄靑節度史)로 임명하였던 이정기(李正己) 장군이 당에 반기를 들어 산동에 세운 제(齊)나라의 유민(流民)으로서 소인은 이정기 장군의 후손이자 촌장 되는 이세웅(李世雄)이라 하옵니다.”

충선왕은 예기치 않았던 고구려의 유민들을 만나게 되자 감회가 복받쳐 말했다.

“오, 그렇소이까?”

“상왕 전하께서 보타산에 강향하러 가신다는 풍문을 듣고 이 고장을 지나가실 수도 있다고 믿었사옵니다. 그리하여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며칠 전부터 이곳에서 줄곧 상왕 전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옵니다.”

“과인을 만나기 위해 며칠을 기다리다니 고맙소이다.”

“상왕 전하, 저희들이 상왕 전하를 위해 조촐한 잔치를 준비해놨습니다. 누옥이오나 모시고자하오니 며칠 유(留)하고 가신다면 고구려 유민들이 모두 기뻐할 것이옵니다.”

“내 그렇게 하리다.”

해월이와의 운명적인 만남

이윽고 이세웅의 집에서 충선왕을 환영하는 잔치가 벌어졌다. 상업으로 부를 축적한 촌장의 집은 부락민 모두를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충선왕 일행과 청주 부락민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유쾌한 이야기를 나눴다. 남자들이 흥에 겨워 북과 장구를 치자 여자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꽃피는 봄날의 초저녁 밤은 점점 무르익어 갔다. 춘흥을 못이긴 달빛이 지게문 사이로 교교하게 흘러 들어왔다.

고려의 상왕과 관원들을 맞이한 촌장 이세웅은 상기되어 있었다. 이윽고 시중을 들고 있는 자신의 셋째 딸을 고국의 손님들에게 인사시켰다.

“소인은 슬하에 아들 하나와 딸 셋을 두고 있습니다. 아들과 딸 둘은 출가를 시켰고, 셋째 딸은 올해 열여덟 살로 이름은 해월(海月)이라 하옵니다.”

해월이는 충선왕과 이제현의 앞으로 다가가서 한 마리 나비처럼 살포시 큰 절을 올렸다. 그녀는 백옥 같은 하얀 살결과 총명한 눈매를 갖고 있었다. 모두들 선녀가 하강하기라도 한 양 그녀의 아리따운 미색과 고혹적인 자태에 반해 감탄사를 연발했다.

충선왕은 다정한 말투로 말을 했다.

“셋째 딸이 절세가인에 마음씨 또한 비단처럼 곱게 보이는구나. 열여덟이라. 해월이라는 이름에 무슨 연유라도 있느냐?”

해월이가 부끄러워 멈칫거리자, 이세웅이 대신 설명했다.

“이정기 장군의 고향인 요서지역의 영주(營州. 오늘의 조양朝陽)를 가려면 발해만을 건너야 합니다. 그래서 소인이 ‘달이 되어 바다 너머를 바라본다’는 뜻에서 해월이라 지었습니다.”

“으음, 그런 연유가 있었구먼. 좋은 이름이요.”

충선왕은 뜻밖에 만난 처녀에 대해 다시 호기심이 발동해서 말했다.

“해월이는 고구려 이정기 장군의 피를 이어받고 있으니 고려의 공주와 다를 바가 없지 않소. 과인이 중매를 서도 되겠소?”

이세웅은 충선왕의 옥음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말했다.

“상왕 전하, 그렇게 해 주신다면 가문의 영광이 될 것이옵니다.”

옆자리에서 충선왕과 이세웅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이제현은 해월이를 자세히 바라봤다. 금방 이국땅에서 고구려의 피가 흐르는 여인을 본 소회는 가슴 가득한 전율로 다가왔다.

‘어떻게 이국만리에 저토록 총명하고 아리따운 여인이 있었을까…….’

졸지에 충선왕 일행을 모신 기쁨에 들뜬 이세웅은 수행관원들에게 연신 술잔을 권하며 분위기를 돋우기 위한 말을 했다.

“저희들은 지난 세월 동안 언젠가는 고려 조정의 관원들이 우리 지방을 찾아줄 거라고 믿고 기다려왔습니다. 오늘 그 소원을 이루게 되어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이제현이 관원을 대표해서 말했다.

“사해(四海, 온 세상) 안에 사는 사람은 모두 형제라는 말이 있지요.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도 크나큰 인연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때 충선왕이 서먹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이제현에게 거문고 연주를 청했고, 이제현은 상왕의 강권에 못 이겨 거문고를 연주했다. 연주에 몰입해 있는 젊은 선비의 의젓한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해월이는 단번에 이제현을 마음에 두게 되었고, 급기야 사모의 정을 가슴에 키워가게 된다.

이정기 장군의 제나라, 당나라와 당당히 겨뤘다

이제현의 연주가 끝나자 다시 이세웅이 이제현에게 말했다.

“혹시 《당서(唐書)》를 읽어보셨는지요?”

“예, 읽어 봤습니다. 《구당서(舊唐書)》 <이정기 열전>에 ‘고구려가 멸망한 후 이정기 장군이 제나라를 세워 당나라와 당당히 겨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신·구당서》 《자치통감(資治通鑑)》 등은 ‘당나라는 제나라를 회유하기 위해 수시로 이정기와 그의 후손들에게 관직을 내렸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제나라는 이정기 장군의 후손인 이납(李納), 이사고(李師古), 이사도(李師道)로 이어지면서 4대 58년 동안 당을 압박하고 뒤흔들었습니다. 제나라의 영토는 통일신라보다 3할 정도가 더 넓었습니다. 중국 땅에서 독립국가를 창업했던 이정기 장군은 누가 뭐라고 해도 고려의 자랑스러운 조상이지요.”

이제현의 거침없는 대답에 이세웅은 자신의 조상에 대해 소상하게 알고 있는 고려의 선비가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의외라는 듯 말했다.

“놀라운 일입니다. 춘추오패와 전국칠웅이 할거하던 춘추전국시대의 제(濟)나라는 잘 알려져 있지만, 고구려의 후예인 이정기 장군이 중국 땅에 치청왕국(淄靑王國) 즉 제(齊)나라를 세웠다는 사실을 아는 분은 잘 없었는데, 익재 공께서는 손금 보듯이 제나라 역사를 훤하게 꿰고 있으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권한공이 맞장구를 쳤다.

“익재의 학문은 고려에서 따를 자가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며, 중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무불통지(無不通知)의 경지에 도달해 있으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요.”

이제현의 역사 이야기는 흐르는 강물처럼 지나는 구름처럼 막힘없이 현란하게 거침없이 도도하게, 계속되었다.

“이정기 장군이 산동성 전체와 하북성, 하남성, 안휘성에 세운 제나라는 조세와 법률 등을 독자적으로 시행했으며, 아들 이납은 국호를 ‘제(齊)’라 하고 왕으로 즉위하면서 독립국임을 천명했습니다. 신라는 철령 이북의 땅을 당나라에 내주었지만, 제나라는 통일신라보다 더 넓은 땅을 차지하며 당나라와 당당히 겨뤘습니다.”

이제현의 거침없는 설명에 이세웅은 신이 나서 말했다.

“그때 신라가 철령 이북의 땅을 당나라에 내주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원나라가 철령 이북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정기 장군이 고구려 장졸 출신과 유민들로 구성된 정예군 2만 명을 이끌고 산동성에 상륙했을 때 이곳 고구려 유민들은 열광했습니다. 동북 길림성에 근거지를 마련한 대조영(大祚榮)보다도 당나라의 수도를 공략하려는 이정기 장군에게 고구려의 영광이 재현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컸지요.”

다소 흥분한 이제현은 이세웅의 말에 화답했다.

“이정기 장군은 고구려 유민들의 꿈과 희망이었습니다. 고선지(高仙芝) 장군과 장보고(張保皐) 장군은 당나라 휘하의 장수가 되었지만, 이정기 장군은 당나라의 벼슬을 거부하고 독립국가를 경영했습니다. 고구려를 패망시킨 원수 당나라를 궤멸시키기 위하여 낙양과 장안을 공략하다 49세의 나이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으니, 안타까운 고구려의 영웅이지요.”

이제현과 아버지 이세웅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만 있던 해월이는 이제현의 막힘없는 역사 강론에 그만 넋을 잃어버렸다.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의 파도가 가슴 깊숙이 밀려와 심장이 뛰고 맥박이 빨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익재라는 선비의 학문은 고려에서 따를 자가 없다고 했는데, 그가 중국에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행운이 될 수도 있을 것이야. 어쩌면 저 분이 나의 운명을 바꿔주지 않을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밤공기를 가르며 연회장 문틈 사이로 흘러들어왔다. 꺼져버리고 사라져버린 줄만 알았던 고구려의 혼이 여기 중국 땅에 살아 숨 쉬고 있다니 경이로운 일이었다. 고토회복을 외치던 광개토대왕의 제국 고구려의 후예들이 이곳에서 웅거(雄據)하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충선왕은 다소 과음을 한 탓인지 연회장의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말했다.

“우리 고려가 힘이 없어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전락하게 되었는데, 과인은 촌장을 볼 낯이 없소이다.”

그러자 이세웅은 비감한 어투로 말을 계속 이었다.

“당나라는 제나라를 멸망시킬 때 천여 명을 학살했습니다. 고구려 유민들의 씨를 말린 것이옵니다.”

“당나라는 결속력이 강한 고구려 유민들의 힘을 두렵게 생각했던 것이아니겠소?”

“상왕 전하, 그렇지만 우리는 한족들의 온갖 탄압 속에서도 인동초처럼 이렇게 뭉쳐 살고 있사옵니다. 앞으로 조국 고려가 언젠가는 고토를 회복하리라 굳게 믿고 고구려의 혼을 간직하며 살아가겠사옵니다.”

이세웅의 나지막하지만 천금보다 무거운 외침이 밤공기를 갈랐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충선왕과 이제현의 폐부를 비수가 되어 날카롭게 찔렀다. 충선왕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았다.

이때 이제현이 어색한 분위기를 전환시키기 위해 이세웅에게 말을 걸었다.

“촌장 어른, 이곳 청주 지방에 이정기 장군을 기리는 유물이 있습니까?”

“예, 있지요. 범공사에 가면 이정기 장군이 심었다는 당추(唐楸)라는 나무가 있습니다.”

이제현은 충선왕에게 제안을 했다.

“상왕 전하,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당추에 제를 올리시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익재 공의 생각이 좋을 듯하니 준비시키도록 하게.”

제나라 역사를 상고하고 고려의 현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소중한 밤은 이렇게 소리 없이 무르익어 갔다. 원로(遠路)의 피로감은 온데

간데 없었다. 이제현 일행과 촌장 이하 이정기 장군의 후예들은 끝없는 토론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축시(丑時)가 지나서야 모두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