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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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43억 원 상당의 피해를 낸 대규모 유류저장고 폭발 사고의 원인이 ‘풍등’ 하나로 알려지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해당 사고를 낸 스리랑카인 근로자가 풍등을 날려 보내는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화면이 세간에 공개됐다.

경기 고양경찰서는 9일 오전 10시 진행된 고양시 저유소 폭발 사고 관련 언론브리핑에서 중실화 혐의로 긴급 체포된 스리랑카인 근로자 A(27)씨에 대해 구속 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A씨는 지난 7일 오전 9시 32분경 고양시 덕양구 강매동의 터널공사 현장에서 풍등을 띄워 300m 가량 떨어진 대한송유관공사 저유소 내 휘발유 저장탱크 1기에 폭발 사고를 발생시킨 혐의를 갖는다.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된 풍등은 지름 40㎝, 높이 60㎝ 크기다. 그는 사고 전날 현장에서 800여m 떨어진 인근 초등학교 행사에서 날린 풍등 2개가 공사장 인근에 놓여진 것을 보고 주워 재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브리핑에서 경찰은 저유지 CCTV에 찍힌 풍등 낙하 및 잔디 발화 장면, A씨가 풍등을 날려 보내는 모습이 찍힌 공사현장의 CCTV 영상을 언론에 보였다.

공사장 방향에서 날아온 풍등이 이날 오전 10시 36분경 저유지 내에 떨어진 뒤 잔디에 불이 붙어 불씨가 18분 뒤 바람을 타고 저유소 유증기배출구로 유입돼 폭발이 일어났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은 불씨가 튀는 것까지는 CCTV로 확인할 수 없으나, 잔디에 불이 붙은 시간과 폭발의 간격 등 상황을 미뤄봤을 때 A씨의 풍등이 화인(火因)으로 작용한 것이 분명한 것으로 판단 중이다.

터널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A씨는 쉬는 시간에 풍등을 날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경찰은 사고 직후부터 수집한 CCTV 영상을 정밀 분석해 이 같은 사실을 포착한 뒤  지난 8일 오후 4시 30분쯤 공사장 인근 야산으로 도주한 A씨를 뒤쫓아 현장에서 긴급 체포 조치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당일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중 쉬는 시간에 산 위로 올라가 풍등을 날린 뒤 풍등이 저유소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되돌아왔다”고 진술했으나, 화재 발생에 대해서는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이 확보한 CCTV 자료를 확인한 뒤 풍등으로 인한 화재 발생 등 혐의 대부분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발생 하루 만에 피의자가 특정되면서 발빠른 검거가 이뤄졌지만, 실제 중실화 책임을 지울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A씨가 스리랑카 국적을 지닌 외국인이며 화재 유발 과정의 고의성 여부를 판단하기 까다롭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A씨의 실제 중실화 혐의가 그대로 인정될지는 추후 법원의 판단에 따라 판가름날 예정이다.

경찰은 A씨가 저유소의 존재를 미리 알고 있었던 점을 염두에 두고 중실화죄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여기고 있다.

현행법상 A씨와 같이 중실화로 화재 등 피해를 일으킨 자는 3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이번 사고의 원인이 된 풍등과 같은 소형 열기구는 지난해 소방법이 개정돼 올해부터 사용이 금지됐으나 아직도 각종 행사에서 풍등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외국인인 A씨가 풍등의 위험성 인지는 물론, 해당 행위가 불법인지조차 몰랐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폭발 사고로 인한 향후 재산피해 보상 문제도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번 화재로 휘발유 260만ℓ가 소실되는 등 추정 피해액만 43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A씨에게 전액 배상을 받아낼 가능성은 사실상 0% 가량이다. 

외국인 근로자의 재정 여건상 피해 당사자가 손해배상청구 소송 및 구상권 청구 등으로 손해를 배상받을 가능성이 어렵기 때문이다.

대한송유관공사는 화재 등 각종 사고에 대비한 보험에 가입된 상태여서 이번 피해는 보험사가 대부분 부담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보상 문제와 함께 대한송유관공사의 허술한 보안 및 안전 관리도 논란이 됐다.

사실상 경기북부지역의 유류 공급을 책임지고 있는 시설이 서서히 추락하는 풍등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물론, 이로 인해 시설 내에 화재 발생한 후 폭발까지 18분 동안 전혀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소방 분야 전문가들은 직접적인 화재가 아닌 바람에 날린 불씨가 유증기 배출구로 들어가 폭발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안전 설비만 갖췄어도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꼬집고 있다.

실제로 해당 저유소는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산불 발생 시 이번과 동일한 사고에 그대로 노출될 수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장종익 고양경찰서 형사과장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풍등과 저유소 화재간 인과관계를 정밀 확인하고 재차 합동 감식을 진행하는 등 수사를 계획할 예정”이라며 “대한송유관공사와 터널공사업체 관계자에 대해서도 추가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 7일 오전 10시 54분 일어난 대한송유관공사 저유소 폭발 사고로 인해 직경 28.4m, 높이 8.5m 규모의 옥외 휘발유 저장탱크 1기와 내부에 있던 휘발유 260만ℓ가 소실돼 소방서 추산 43억 원의 재산 피해가 빚어졌다.

또 화재 진압을 위해 소방헬기 5대 등 소방장비 205대, 소방인력 684명이 파견돼 완전한 진화가 선언된 다음날 새벽 3시 58분까지 무려 17시간 동안 진화작업에 전력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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