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한 자살 이유 없다” 추측만 무성

대한항공 김해 정비공장에 근무하던 최 모 과장(38)이 지난 10일 12시 10분경 의문의 자살을 했다. 그는 1991년 대한항공에 입사한 이래 지난해에는 15년 장기근속표창을 받는 등 모범사원이었다. 그러한 그가 28m 높이의 공장 옥상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고령의 부친, 임신 중인 아내 정모씨와 8살 된 사랑스런 딸을 뒤로하고 유서도 남기지 않은 채. 유족들은 고인이 과중한 노동강도와 스트레스로 인한 업무상 재해라고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대한항공 측과 경찰은 단순 자살로 종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보상 문제를 놓고 유가족과 사측간의 대립각도 세워지고 있다.


부산 강서구 대한항공 김해 정비공장에서 기체정비팀 작업통제그룹에서 항공기 작업진행 업무를 담당해 오던 최모 과장이 사망했다.

담당서인 강서경찰서는 사건 당일인 10일 최 모 과장이 28m 높이의 격납고 옥상에서 추락한 것을 본 목격자가 있었고 고인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점과 타살흔적이 없다는 점을 들어 투신자살로 사건을 종결했다.


두 달 동안 새벽 퇴근, 새벽 출근 반복

회사측에 따르면 고인은 업무 인수 후 성실하게 수행해 왔으며 본연의 진행 업무 외에 작업방식, 작업품질 등에서 능동적으로 업무를 수행해온 성실한 직원이었다.

장례는 개인 화장으로 치러졌으며 회사측은 장례비용으로 1500만원에 가까운 돈을 유족들에게 지불했다고 전하고 있다.

유족들은 과중한 업무 부담과 이로 인한 스트레스 및 상사와의 불화가 고인의 죽음을 부른 것이라며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줄 것과 함께 진상조사 등을 촉구하고 있다.

유족들에 따르면 고인은 죽기 두달 전까지 하루 2~3시간만 자고 식사도 거른 채 업무에 매달려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인은 4년 전부터 작업통제그룹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처리해왔다.

특히 사건당일인 지난 10일 고인은 미국 유나이티드 에어라인(UA)항공기 납품을 하는 날로 이로 인해 두 달 가까이 새벽 1~2시 사이 퇴근했다가 다시 새벽 3~4시 사이 출근을 되풀이했다. 점심식사도 거르는 일이 다반사였으며 납품날짜를 맞추기 위해 하루 온 종일 업무에 매달려왔다고 한다.

고인이 이 세상을 떠난 10일에도 새벽 2시30분 경 퇴근했다가 새벽 3시에 다시 회사로 출근했고 항공기 납품과 관련한 자신의 담당업무를 완결한 후 점심식사시간 동료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사건이 발생했다.

유족들은 고인과 직장상사와의 불화도 없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상급자로부터의 끊임없는 질책과 폭언도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유족들은 진상 규명을 위해 이 사건에 대한 진상 보도를 방송사와 일간지 등에 요청했으나 극히 일부 언론에서 뒤늦게 보도됐다는 점과 또한 경찰이 고인의 사망 이후 유족들에게 부검 의사도 물어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측과 경찰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대한항공 “유족 도울 수 있는 지원책 모색”

유족들은 현재 산재신청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도움을 요청하고 있으나 회사가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산재승인이 되면 해당 회사는 재해사업장으로 분류돼 별도 관리되며 3년 동안 보험료 납부와 보험료 지급률과 사건 경중에 따라 보험요율이 최대 50%내에서 올라가게 된다.

즉 대한항공은 이로 인한 불이익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의혹도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대한항공은 유가족들의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도울 수 있는 지원책을 다각도로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회사측은 고인의 주요 업무가 정비 작업 일정 수립 및 진행과 관련된 업무로 김해정비공장 기체점검팀의 진행담당 14명중 1명으로 항공기 작업 일정 수립 및 진행 업무를 수행해 왔다는 주장이다.

회사측은 고인이 직접 정비작업을 수행하지 않았던 직원으로 유족들이 주장하는 업무과중이라고 보기에는 확인하기가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현행법상 산업재해 보상신청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이 신청할 권한이 있으며 회사는 근로복지공단 심의에 성실히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미 사건 다음날인 11일 회사는 근로복지공단에 보고 조치했다고 밝혔다. 대한항공 홍보실 고위관계자는 “고인이 성실히 근무한 모범사원이라는 점을 고려해 회사는 남은 유족들을 도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단 이 과정에서 유족들과 회사간 원만한 대화가 이뤄지기를 바라며 유족들도 모든 일에 절차가 있듯이 마음을 가다듬고 기다려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자살 ‘산재 인정’ 늘고 있다
업무상 스트레스 의학 소견 땐 산재 인정


원칙적으로 자살의 경우에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산재인정이 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과도한 업무상 스트레스에 따라 정신질환 상태이거나 이에 준한 상황에서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란 의학적인 소견이 있는 경우 산재로 인정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2002~2004년 사이 자살과 관련 전국적으로 모두 56건의 자살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례로 지난해 6월 근로복지공단 광주본부는 2005년 11월 화순전남대병원 간호사 전모씨의 업무상 스트레스에 인한 자살을 인정해 산업재해로 승인했다. 공단 광주본부의 산재 승인은 전씨가 숨지기 전부터 업무상 스트레스를 이유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점, ‘직원들이 나를 감시하는 느낌이 든다’고 호소했던 점 등을 근거로 병원에서 직무상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을 인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유족들은 공단으로부터 전씨의 평균 임금 1300일 분에 해당하는 유족보상금과 평균임금 120일 분에 해당하는 장례비용을 받게 됐다.



##<사건 당일 일지>

◆ 일시 : 2007년 7월 10일 12시 27분

◆ 장소 : 김해정비공장 2베이(BAY) 격납고 중앙 2m 앞

◆ 개 요

▲ 12시 27분 : 최초 목격자가 2베이 서편지붕 중앙에서 사람이 떨어지는 것을 목격함
목격자 H엔지니어링 박모씨(여)

▲12시 40분 : 항공보건팀 김해보건그룹장 및 간호사 도착, 응급상태 확인

▲ 12시 46분 : 119 응급차량 도착, 상기인 응급상황 확인 및 사망 확인함

▲ 12시 55분 : 강서경찰서 공항지구대 도착, 사고확인 및 조사
경찰관 김 모 경사, 이 모 경장

▲ 13시 20분 : 강서경찰서 수사과 강력팀 경위 정모씨 외 4명 도착 사고조사

▲ 14시 15분 : 유가족 부인 정모씨 도착
- 강서경찰서 형사팀장 수사진행계획 설명
- 사체검안의 입회를 위해 처남 정모씨 호출

▲ 14시 25분 : 부산대 부설 법의학 연구소 법의 외 1명 도착 사체 검안

▲ 14시 57분 : 목격자 박모씨, 회사 김모 부장, 이모 부장, 간호사 이모씨 강서경찰서 동행

▲ 15시 36분 : 처남 도착해 사체검안 실시, 유가족(부인)도 현장으로 이동
- 유가족 입회하에 사체검안->검사지휘로 현장조사 종결->유가족 인도

▲ 15시 47분 : 유가족(처) 경찰차량 탑승, 강서경찰서 이동

▲ 16시 15분 : 김해중앙병원 영안실 차량 도착

▲ 16시 30분 : 병원차량 출발, 공장내 소방살수차로 사고흔적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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