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 휴가 박탈, 카드내역 조회…

은행업계의 큰 별인 KB국민은행이 금융업계의 선두주자 답지 못한 기업문화로 직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국민은행 노조 측은 “회사 측이 그 동안 방만한 경영으로 우리·신한은행 등 2위권 은행들에 추격의 기회를 주고 있고 로또복권 사업자 선정배제, 유동화채권 발행 무산, 대우빌딩 인수 실패 등 지지부진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며 “정작 경영진의 자구적인 노력 없이 직원들에게 강압적인 분위기로 휴가를 가지 못하게 유도하거나 축소하게 하는 등 일선 부점에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단절되고 폐쇄된 기업문화로 일선에서 경영진이 요주의 인물로 지목한 직원들의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조회하는 등 사생활 침해가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은행 M지점에 근무 중인 A씨는 여름휴가를 가려고 신청했으나 “지점 일손이 모자란다”며 “휴가 일수를 줄이거나 좀 연기하는 게 좋지 않냐”는 지점장의 압박을 받았다. 국민은행 K지점에 근무 중인 B씨도 “하계휴가 제비뽑기에 떨어졌으니 휴가를 유보하라”는 말을 들었다.

최근 여름 휴가철이 시작되면서 하계휴가 사용에 대한 노조 민원이 부쩍 늘고 있다. 일선 부점장들은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다양한 형태의 압력과 휴가 단축 분위기 조성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제비뽑기 떨어졌으니 휴가 유보하라

국민은행 노동조합은 위와 같은 사례들을 접수해 해당 부점장 및 임원들에 대해 부당노동행위 고발 등 강경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노조는 “심각한 노동기본권 침해인 하계휴가 방해 실태에 대해 사례 접수를 받고 상황이 심각한 경우,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하는 등 강경하게 대처하기로 했
다”고 밝혔다.

국민은행에 10년간 근무했다는 K 모씨는 “강정원 행장이 취임하면서 직원들에게 전 직원의 하계휴가 5일 보장을 발표한 바 있다”며 “이 같은 은행장의 방침을 실무 경영진이 실제로 반영하지 않는 것에 대해 자체 검증과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회사 측 관계자는 “실제로 그런 일이 있을 수 없고 인원이 부족한 지점에서 날짜를 연기하는 정도는 사정에 따라 있을 수 있지 않겠냐” 며 “우리는 민원을 받지 않아 모르는 사실이고 민원이 회사 측에 공식적으로 들어오면 파악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동조합은 “하계휴가 뿐 아니라 각종 휴가 제한 등 강압이 이뤄지는 것을 노동조합으로선 도저히 묵과하고 용납할 수 없다”는 강력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KB 국민은행 직원들의 사생활 침해도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 감찰반에서 직원들의 KB카드 내역조회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금융사고의 개연성이 있는 직원 몇 명을 파악하겠다고 감찰반과 검사부에서 직원들의 계좌조회와 카드 사용내역을 조회하고 이를 근거로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직원들은 감찰이라는 명목 아래 사생활침해를 받고 있는 셈이다.

은행은 수사기관이 아니라는 것이 직원들의 입장이며 수사기관도 조사를 벌일 때에는 사전영장을 청구하고 공지 후 조사하는 것이지 몰래 타인의 금융정보 등을 조회하는 것이 아니라는 게 노조 측의 입장이다. 어떤 부정행위가 포착 된다든지 했을 경우 감찰을 할 수 있지만 반드시 공지 후 해야 한다. 이런 정보가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미 파다하게 퍼졌고 직원들은 각종 소모임에서 타사카드로 결제를 하는 것이 자리를 잡았다. 가족과 관련된 계좌는 타행으로 만들어 이용하며 카드도 삼성, LG 등 타사 것을 만들어 쓰는 것이다. 특히, 카드는 이용하는 사람의 생활패턴이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직원들은 다른 누군가에게 본인의 사생활이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노출되는 것을 피하려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은행 직원이라면 대부분 자사 카드를 메인으로 사용하겠지만 국민은행 직원들은 다르다는 것이 노조 측의 주장이다. 국민은행 대부분 직원들은 KB신용카드를 서브로 사용하고 타사 신용카드를 메인으로 사용한다. KB카드는 출·퇴근시의 교통카드와 본점 출입카드, 그리고 점심식사 시간에 밥 먹는 카
드 정도로 한정해 사용한다. 그 외의 각종 저녁모임, 술자리, 주말 쇼핑 등에는 삼성카드나 LG카드 등 타사카드를 사용해 감찰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을 떨친다는 것이 상당수 직원들의 생각이다.

직원들은 “똥이 무서워 피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더러워 피한다”고 속상해 말하기도 한다.


금융사고 조사한다며 직원 카드내역 조회

노조는 “직원 간 커뮤니케이션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서로 간에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은행에서 조사한 KB국민은행의 조직문화 진단자료에서도 그룹간, 부서간 업무협조 및 의사소통에 있어 원활하다는 답변은 34%(2005년에는 4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기업문화와 관련해 국민은행 노조 고위관계자는 “이런 잘못된 관행이 벌어지는 배경에는 경영자 입장에서 단기적인 성과를 위해 일선에 압력을 가하고 퇴출프로그램을 운영하다보니 일선부점 점장들에게 성과를 독촉하는 분위기가 됐다” 며 “점장들은 퇴출되지 않기 위해 살길을 궁리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직원을 압박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덧붙여 “직원들의 불법 횡령 등의 사건을 막기 위한 감찰팀이 직원의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열람하며 불법을 자행한다면 직원들은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다”며 “경영자가 장기적인 안목으로 큰 정책기조를 바꾸지 않는 한 이런 문화는 근절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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