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집행’의 탈을 쓴 일상적 폭력 빈번

뉴시스
지난 3월 29일 오전 서울 성북구 장위7구역 재개발지역에서 강제집행이 진행되자 한 철거민이 용역업체 직원들을 몸으로 막아서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인도집행이란 재개발사업 시행자(재개발조합과 건설업체)의 요구에 세입자가 응하지 않을 경우 시행자가 법원의 힘을 통해 세입자를 강제퇴거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이러한 인도집행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인권침해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업시행자는 세입자에게 위압공포감 조성, 일상적 폭력 등 횡포로 세입자들을 꾸준히 괴롭힌다.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세입자들이 둥지를 떠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인권 침해 유발하는 현행법 점검 필요

지난 2009용산 참사를 비롯해 도시개발과 재개발, 재건축 과정에서 반복돼 온 강제퇴거와 이로 인한 인명피해가 지속되고 있는 것.

서울 성북구 장위7구역 재개발 현장에서는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11건의 인도집행이 이뤄졌다. 2월에는 응암1구역 재개발 현장에서 인도집행이 시도됐다. 거처를 잃고 쫓겨난 세입자들이 추위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겨울철이었지만 법원의 인도집행은 이뤄졌다.

특히 지난 21일 응암1구역 현장에서는 오전 730분부터 1시간여 동안 대치가 이어졌다. 세입자들을 쫓아내려는 법원 집행관과 사업시행자들이 세입자들과 맞붙었다. 대치를 해소한 것은 서울시 공무원들이었다. 공무원들은 시장이나 군수는 동절기 등 시기에 법원 인도집행을 포함한 강제철거 행위를 제한할 수 있다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근거로 중재에 나선 것. 결국 법원 집행관 등은 물러났다.

주민 중 90%가 세입자인 개포주공4단지 재건축 현장에서는 지난해 한밤 중 용역업체 직원들이 문을 두드리면서 이사를 종용해 논란이 일었다. 개포주공8단지 재건축 현장 인도집행 때는 용역업체 직원 400여 명이 소화기를 난사해 상가 세입자 10명을 끌어내기도 했다. 이처럼 인도집행이 벌어지는 재개발 구역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두려움에 떠는

세입자들

사업시행자가 세입자를 압박하기 위해 공포감을 조성하는 사례도 적잖이 발생한다.

올해 3월 실시된 장위7구역 인도집행 과정에서 시행자가 대형 굴착기(포크레인)로 세입자가 점거하고 있는 건물의 외벽을 두들겨 세입자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집 안에 세입자가 머물고 있는데도 굴착기가 건물에 다가가 삽 부분으로 벽을 때리며 위력을 행사한 것이다. 지진이 난 듯한 충격에 세입자들은 공포감을 느꼈다.

검정 양복을 입고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경비용역의 행동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사업시행자가 고용한 경비업체 직원들은 현장에서 질서유지 행위만 해야 하지만 직접 인도집행에 개입하기도 한다. 지난해 7월 마포로6도시환경정비구역 인도집행 당시 경비용역이 세입자는 물론 그의 딸을 강제로 건물 밖으로 끌고 나온 일이 발생했다.

지난해 4월 마포구 염리3구역에서 경비용역이 직접 전기와 가스를 차단하려는 시도를 한 사례도 있다. 또 집행 대상 물건 운반에 참여하는 일(지난해 4월 영등포구 신길동), 여성 경비용역 4명이 세입자의 팔과 다리를 붙잡고 끌어내는 일(지난해 11월 영등포구 신길8구역)도 있었다.

재개발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폭력도 세입자들을 괴롭힌다.

재개발 현장에 상주하는 용역업체 직원들은 인도집행이 이뤄지기 전에 미리 세입자들을 내쫓기 위해 동네 이곳저곳을 다니며 협박, 위협, 영업방해, 성희롱, 방화, 오물 투척, 낙서, 통행 방해, 모욕, 시비 걸기, 문과 상하수도 파손 등 횡포를 이어가고 있다. 일상적 폭력을 견디다 못한 세입자들은 이주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쫓기듯 집에서 떠나게 된다. 이 같은 갑작스런 이주는 취약계층으로 들어서는 진입로나 다름없다.

용역업체는 누구?

세입자, 왜 안 나갈까

재개발 현장에서 세입자를 압박하는 용역업체는 철거 업무를 담당하는 건설업체다.

철거용역의 시초는 198612월 설립된 입산개발이다. 재개발이 성행하면서 입산개발의 후신이 여전히 성업 중인 것.

철거용역은 비계 및 구조물해체공사업면허를 가진 업체들이다. 이들은 사업주와 대표이사 외에 10명 안팎의 영업직원을 정직원으로 둔다. 사업주는 주로 폭력배 출신, 영업직원은 체대와 법대 출신으로 구성된 것은 국민 대다수가 미디어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현장에 투입되는 비정규직 직원들은 지역 폭력조직 관련자들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세입자들이 재개발 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로는 보상액이 적다는 것이다. 재개발 사업 시 토지 감정평가는 표준지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일반 택지의 공시지가는 시세의 60~70%선에 그치므로 이에 근거해 책정된 재개발 보상금(현금청산금) 역시 시세보다 현저히 적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시행자와 세입자의 갈등으로 재개발이 지연되면 보상금과 시가와의 차이는 더 커지는 악순환이 발생하기도 한다.

부족한 보상금만으로는 이전에 자신과 가족이 누리던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힘들고 변두리로 이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세입자들은 강제집행이 두렵지만 저항해서라도 보상금을 더 받으려고 하거나 재개발 자체를 반대하게 되는 것이다.

장애나 건강상 이유로 병원이 가까운 현 거주지에 머물러야만 하는 경우, 고령이라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기 부담스러운 경우 등도 세입자들이 이주를 원치 않는 이유다.

세입자들을 달래기 위해 조합장이 나서서 추가 보상을 추진하려 해도 조합원들로부터 배임 등 혐의로 고발당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보상을 둘러싼 협의가 형식적 수준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서울시에 따르면 시와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운영하는 철거현장 인권지킴이단은 지난 2일 열린 집행 현장의 문제점과 법제도 개선 심포지엄에서 이러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철거현장 인권지킴이단 소속 윤예림 변호사는 인도집행은 단순한 대물 집행이 아닌, 사람과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한 집행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다른 강제집행에 비해 위험성이 크다면서 인도집행과 관련한 제도 점검이 필요하다. 또 현장에서 인권침해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를 위한 입법자와 법원, 지방자치단체, 지원단체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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