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대기만성(大器晩成)을 꿈꿨던 것일까. 마침내 황교안 전 총리가 결심을 굳힌 모습이다. 황 전 총리의 자유한국당 입당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 19대 대선, 7·3 전당대회,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현재 황 전 총리는 ‘범보수 대선 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1강 독주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당 역시 황교안 전 국무총리에 대한 입당 추진을 공식화하고 설득에 나서기로 했다. 만약 황 전 총리가 지금까지 때를 기다린 것이라면 지금이 권토중래(捲土重來)할 최적기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 ‘안정감·정제된 언행’+‘쓰지 않은 카드’... 범보수·무당층 ‘1강 독주’ 견인
- 원내대표-당대표 ‘러닝메이트’ 관측... ‘유기준-황교안’ 연대 탄생?

김용태 한국당 사무총장이 12일 “조만간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과 함께 황 전 총리를 직접 만나 보수 대통합에 힘을 보태줄 것을 당부할 것”이라며 “이때 공식적으로 입당을 요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황 전 총리 역시 전날 통화에서 “저를 뵙자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서로 마음속 이야기를 툭 터놓고 할 수 있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 마음’ 화두 던진 黃,
지지율 28.5% (6.9%↑)


이들의 회동은 국회 국정감사가 끝나는 내달 초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황 전 총리는 지난달 20일 유기준·정용기·윤상직 등 한국당 의원 6명과 오찬을 하면서 전당대회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결심이 서면 상처 입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도전하겠지만 지금은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게 중요한 것 같다”며 여운을 남긴 바 있다.

만약 황 전 총리가 정계 복귀 전제 조건으로 ‘국민의 마음’ 즉 ‘지지율’을 언급한 것이라면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는 그의 복귀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CBS의 의뢰로 지난달 27~28일 전국 성인 15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5일 발표한 9월 범보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 결과(95% 신뢰 수준에 ±2.5%포인트)에 따르면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13.9%,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이 13.5%로 비슷한 수준에서 1·2위를 차지했다.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는 9.5%,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7%, 오세훈 전 서울시장 5.3% 순이었다.

특히 응답자 가운데 범보수 대선주자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칠 보수 야권(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과 무당층 593명의 응답을 보면,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강세가 더욱 뚜렷하다. 황 전 총리는 28.5%로 8월 조사보다 6.9%포인트 올랐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10.7%)과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10.6%)가 거의 비슷한 수치로 2·3위를 기록했다.

뒤이어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7.9%), 오세훈 전 서울시장(7.1%)이 순위에 올랐다. (자세한 조사 내용은 리얼미터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미지에 가려져 태극기 세력 밖으로 확장력이 없을 것’이라는 황 전 총리에 대한 일각의 평가를 완전히 뒤엎는 결과다. 황 전 총리가 중도 보수층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던 데는 그의 안정감 있는 태도와 정제된 언행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황 전 총리는 지난 대선 때 비등했던 차출론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권한대행 자리를 꿋꿋이 지키면서 정국 안정에 힘썼다. 또 지난달 수필집 출판기념회로 정치 활동의 신호탄을 쐈으면서도 친박계 의원들의 내년 초 전당대회 출마 요구에 모호성을 유지했다. 이 같은 그의 ‘안정감’과 ‘절제’가 그의 몸값을 올렸다는 분석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촛불집회, 조기 대선 그리고 올해 6월 지방선거까지 정치 일정이 그야말로 빡빡하게 이어지면서 국민들의 피로감이 상당히 누적된 상황”이라며 “그러다 보니 점잖고, 말이 많지 않은 전 현직 총리 두 사람이 반사이익을 거두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범진보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도 황 전 총리와 이미지가 상당히 겹치는 이낙연 총리가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총리-전 총리’ 구도가 형성된 것은 두 사람 모두에게 이득이다. 전 현직 총리라는 타이틀을 가진 두 인사가 양강 구도를 이루게 되면 다른 후보군의 존재감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황 전 총리가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등 낙선한 대선 후보들과는 달리 ‘아직 써보지 않은 카드’라는 점도 보수층의 기대를 키우는 대목으로 꼽힌다.

‘깨질 각오’ 돼 있다지만...
‘이것’만은 피해야

반면 황 전 총리의 앞길이 순탄치 만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당장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12일 내년 전당대회 출마가 점쳐지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김무성·홍준표 전 대표 등을 겨냥 “저분들이 나와서 굉장히 혼란한 상황이 있다면 그냥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범보수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1위를 이어가고 있는 황 전 총리가 ‘깨질 각오’를 불사하고 전대에 뛰어든다면 한계가 분명한 김 비대위원장이 막아서기엔 역부족일 수 있다. 그러나 전대에서 황 전 총리가 특정 세력의 대표주자가 되는 ‘그림’이 그려질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황 전 총리가 여론조사에서 1위를 유지하는 것은 위에서 언급했던 이유들 외에도 한국당 내 특정 계파와 거리를 두고 ‘관망세’를 유지하면서 당 내홍을 비껴갔기 때문도 있다.

그런데 만약 황 전 총리가 다시금 친박 대표 선수 프레임에 들어간다면 당선 가능성도 떨어질 뿐만 아니라 당대표로 선출되더라도 보수·우파 전체를 대표하는 게 아닌 한국당 내의 특정 계파만을 대표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

아울러 진보 정당의 공격에 치명상을 피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보수 진영 내부도 분열된 상황이 지속될 것이 자명하므로 총선은 물론 대선에서 정권 교체도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이미 정의당은 한국당이 황 전 총리의 입당을 추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논평을 통해 “황 전 총리는 박근혜 정권 국정농단의 핵심”이라며 “꽃가마를 타고 등장해 보수의 슈퍼스타가 될 것이라는 꿈은 꾸지 말기 바란다”고 날을 세웠다.

김동균 정의당 부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황 전 총리가 자유한국당에 입당한다는 보도가 나왔다”며 “한국당은 지금의 난맥상을 반성과 혁신이 아닌 ‘도로 박근혜’를 통한 지지층 결집으로 극복하겠다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국민들은 아직도 수감 중인 박 전 대통령 옆에 왜 황 전 총리가 없는지 의아해하고 있다. 황 전 총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여의도 입성이 아니라 국민들을 향한 회개”라며 “황 전 총리의 입당설은 한국당이 왜 국민들에게 버림받았는지 똑똑히 보여주는 일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 전 총리가 지난 4일 “중도와 보수의 역량 있는 분들이 힘을 합쳐야 되지 않겠냐”며 “나라가 어려우니까 회복을 시키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모으고 키워야 한다”고 말한 것도 정계 복귀 시 자신을 향할 진보 정당의 화살을 피해가기 위함으로 읽힌다.

다만 특정 계파에 치우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전당대회를 치르거나 총선 공천 경쟁, 대선 후보 경선을 돌파하려면 필연적으로 당내·원내에 확실한 세력을 형성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지난달 7일 황 전 총리의 출판기념회 행사장에 모습을 나타낸 한국당 의원들의 면면에 관심이 쏠린다. 이날 황 전 총리의 출판기념회에는 원유철·유기준·이군현·김진태·강효상·송언석·윤상직·이채익·정종섭·추경호 한국당 의원이 참석했다.

‘전대 룰 개정’ 변수로...
황교안계는 누구?

원유철 전 원내대표는 황 전 총리와 당정(黨政) 파트너였다. 유기준 전 해양수산부장관, 윤상직 전 산업자원부장관,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장관은 황 전 총리와 함께 국무위원으로 활동했다. 추경호 의원은 국무조정실장으로서 황 전 총리의 인사청문회 준비를 맡았으며, 이후에도 호흡을 맞춘 경력이 있다.

특히 유기준 의원은 ‘보수의 미래’ 포럼을 이끌면서, 최근 원내외에 세력을 활발히 형성해 가고 있다. 정치권은 유 의원이 원내대표에 도전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시기적으로 볼 때 오는 12월 원내대표 경선이 있고, 이때 선출된 원내대표가 당연직 비상대책위원이 돼서 2월에 치러질 ‘전당대회 룰’ 등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기 때문에 원내대표 후보와 당대표 후보 간에 연대하는 과정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미 유 의원은 지난 11일 한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주변에 당과 보수의 미래에 관해 황 전 총리와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의원이 많아 황 전 총리와 며칠 전 통화를 하고 다음 달 초쯤 만찬을 하기로 했다”며 “10여 명 의원이 동참 의사를 밝혔고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 올 수 있는 자리를 만들려고 한다”고 했다. 유 의원이 황 전 총리와 정치적으로 연대하게 될 개연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한편 자유한국당이 이미 당대표 선출 방식 중 당원보다 일반 대중 여론조사 비중을 크게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인 사실은 여론조사 1위를 기록 중인 황 전 총리에겐 희소식이다. 한 한국당 의원은 “전당대회에서 당원이 아닌 일반 여론조사 비율을 70%까지 올리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스펙트럼이 넓게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여론조사 비율에 변화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당에서 소속 국회의원과 원외당협위원장, 지방선거 출마자 등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당의 지도체제를 단일체제에서 ‘집단지도체제’로의 복귀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난 만큼 각종 셈법이 작용한다면 전대 룰 변경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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