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원에 파세요”…그들이 ‘20배’ 넘는 가격으로 폐지 사들이는 이유는?

일요서울 인터뷰에 함께한 러블리페이퍼 기우진 대표. [사진제공=러블리페이퍼]
일요서울 인터뷰에 함께한 러블리페이퍼 기우진 대표. [사진제공=러블리페이퍼]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러블리페이퍼(lovely paper). 직역하면 ‘사랑스러운 종이’쯤 되겠다. 여기서 판매하는 예쁜 글씨와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를 보면 수긍이 가는 회사명이다. 하지만 이 캔버스는 이전까지만 해도 ‘폐지’ 상태였다.

시가 20배 정도 가격에 폐지를 사들여 캔버스를 만들고, 여기에 작가들의 재능기부로 작품을 만들어 판매해 얻는 이윤으로 폐지 수집 노인을 돕는 회사의 기우진 대표를 일요서울이 만났다. 

 

기 대표 “폐지 수집 노인 1명, 1년에 9t 폐지 주워…나무 심는 사람이라 생각돼”


“우리가 망하는 것, 우리가 사라지는 것을 꿈꾼다.”

지난 11일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동에 위치한 러블리페이퍼 사무실에서 마주한 기우진 대표는 기업의 궁극적 목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기업 대표 입에서 나올 것이라 상상하기 어려운 대답이다. 하지만 ‘러블리페이퍼’에서는 이 대답이 가능하다.  러블리페이퍼는 폐지 수집 노인의 생계, 여가, 안정을 지원하는 예비 사회적 기업이기 때문이다.


현재 고물상에서는 폐지를 1㎏당 30~50원에 사들이고 있다. 폐지 수집 노인은 큰 라면 박스 2~3개를 모아야 이 돈을 손에 쥘 수 있다. 

하지만 러블리페이퍼는 폐지를 1㎏당 1000원에 구매한다. 시가의 20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렇게 구입한 폐지로 캔버스를 제작한 뒤 캘리그라피를 써 넣어 작품으로 재탄생시킨다. 폐지가 기업 이름처럼 ‘사랑스럽게’ 탈바꿈하는 것. 

 

“시혜적 관점 아닌
호혜적 관점 필요”

 

기 대표의 충격적인 목표에는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그는 “우리(러블리페이퍼)가 활동을 너무 잘하다 보면 자연적으로 폐지 수집 노인이 사회에서 없어지지 않을까”라며 “우리 목적은 폐지 수집 노인을 돕는 것인데, 이들이 없다면 우리도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를 듣고 나니 그의 발언이 ‘더 나은 사회가 될 때까지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됐다. 

첫 발걸음은 ‘종이나눔 운동본부’였다. 이 단체는 폐지 수집 노인을 지원하기 위한 순수 봉사단체로 2013년 출범해 현재까지 활동 중이다.

이후 2016년 예비 사회적 기업인 ‘러블리페이퍼’가 탄생했으며, 2017년에는 폐지 수집 노인 문제 해결을 위한 네트워크인 ‘폐지넷’ 공동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정책적 대안 모색에도 나섰다.

세 단체는 각각의 고유 역할을 갖지만 폐지 수집 노인을 돕자는 공동의 목표 아래서 수렴과 발산 작용을 하고 있다. 러블리페이퍼는 이중에서도 중심부에 위치한다.

러블리페이퍼는 기업·비즈니스 적으로 폐지 수집 노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기 대표는 “폐지 줍는 활동 자체가 노동이다. 폐지 수집 노인은 산업 현장에 노출돼 있는 것”이라며 “(러블리페이퍼는) 이들의 노동을 어떻게 하면 합리적인 방식으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면서 취할 수 있을까에 관한 연구와 비즈니스 구조 안에서 이들에게 새롭고 안전한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을지에 관한 부분을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러블리페이퍼에서 폐지를 활용해 만든 캔버스 위에 작가들의 재능 기부가 더해져 작품이 탄생했다. [사진제공=러블리페이퍼]
러블리페이퍼에서 폐지를 활용해 만든 캔버스 위에 작가들의 재능 기부가 더해져 작품이 탄생했다. [사진제공=러블리페이퍼]

인터뷰 중에도 그는 폐지 수집 노인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공감대로 ‘시각의 변화’를 꼽았다.

기 대표는 “이들이 하고 있는 폐지 수거 활동 자체를 근절하기 위한 정책적 접근이 아닌 이들의 활동을 재평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계속해서 “폐지 수집 노인을 연민의 대상이나 불쌍해서 도와준다는 복지적·시혜적 관점이 아닌 호혜적인 관점에서 바라봤으면 한다는 것이 내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의 활동에 관한 사회적·경제적·환경적인 면에서의 재평가뿐만 아니라 폐지 수집 노인을 보는 사회의 ‘관점’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 지자체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등을 이들이 모으면서 사회적 비용 절감 효과가 발생한다. 이들의 노동이 없었다면 지자체 등은 이 문제를 감당하기 위해 예산을 편성하는 등 국가 비용을 지출했을 것이기 때문.

또한 폐지 수집 노인의 경우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도 있지만, 복지 사각지대에 있거나 독거(獨居)하면서 가족의 부양 의무에 노출되지 않은 이들이 대다수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복지 지원은 기초연금에 그치는 등 열악한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은 자립을 위해 밖에 나가 경제 영위 활동을 하고 있고, 이로 인해 국가가 감당해야 할 짐이 덜어진다는 것이다.

기 대표는 환경 보호에서 이들의 공헌이 크다고 봤다. 이들의 수거 활동으로 재활용이 이뤄지고, 나아가 나무를 심는 효과까지 나타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이들 1명당 1년에 줍는 폐지 양이 9t 정도 된다. 이를 나무로 환산해보면 158그루”라면서 “이를 보고 폐지 수집 노인은 ‘나무를 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기 대표는 “이런 부분들을 보면 이들이 하고 있는 수거 활동이 자랑스러울 수도 있다. 안쓰럽게 볼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러블리페이퍼 캘리그라피 작품 [사진제공=러블리페이퍼]
러블리페이퍼 캘리그라피 작품 [사진제공=러블리페이퍼]

 

여행·영화 관람 등
정서적 지원 필요

 

폐지 수집 노인 문제의 해결 과제로 가장 우선은 경제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이들은 ‘사회적 빈곤’과 ‘정서적 빈곤’이라는 두 가지 결핍을 지니고 있다.

대다수가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폐지를 줍지만, 경제성과는 별개로 노동의 희열이나 정서적 만족감을 위해 폐지를 모으러 나서는 이들도 있다.

경제적 어려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폐지 수거를 위해 나서는 이유로 기 대표는 “자립감이나 이들이 가질 수 있는 정서적 만족이 폐지 수거 활동에서 나올 수 있다”고 봤다. 자신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이행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얻기 위해 폐지를 줍는다는 것.

이러한 노년층의 정서적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여행, 영화 관람 등 여가 생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기 대표는 “노년층의 자존감을 채워줄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면서 “이들이 폐지를 줍는다고 해서 자신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다양한 경로로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인의 정서적 지원이 일시적·단발적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관(官)이나 민(民)이 협력해 지속적인 노인 돌봄 서비스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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