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13 지방선거 참패 이후 궤멸 직전의 위기 속에서도 극심한 자중지란의 내홍을 겪던 한국당이 우여곡절 끝에 선택한 수(手)는 김병준 카드였다.

정체성이 다른 인물이라는 당 안팎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가 참여정부 시절 정책실장을 역임한 배경을 바탕으로 안보 정책과 경제·사회 정책 등에서 현 정부의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해 당을 정책 정당으로 변모시킬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취임 3개월이 지난 지금 그 같은 희망은 실망으로 변한 듯 보인다. 정책 정당은커녕 문 정부의 전방위 폭주에 속수무책이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수많은 실정에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식 대응만 했다는 평가들이다.

당 내 계파 싸움도 정리하지 못했다. 당은 친박과 비박계도 모자라 친홍과 비홍, 친김 등으로 더 쪼개졌다. 뿌리 깊은 계파를 단 시일 내에 정리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더 복잡하게 만들지는 말아야 했다. 그가 특정 계파의 차도살인(借刀殺人) 역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대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았으면 과거 김종인 씨가 민주당에서 그랬듯이 몸소 칼을 휘둘렀어야 했다. 전권을 위임받지 못할 거라면 애초에 위원장직을 맡지 말았어야 함이다.

그의 어정쩡한 정치적 스탠스는 인적 쇄신을 위한 조강특위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는 전원책 씨를 조강특위 위원에 앉히면서 인적 쇄신에 대한 전권을 위임했다. 전권을 위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직접 그 일을 해야지 왜 남의 칼을 빌리려는 것인지, 강한 의구심이 든다.

그러자니 당 지지율 상승이 요원해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 등락과 상관없이 김 위원장 취임 전이나 한국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은 변함이 없다.

인적 쇄신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은 전 조강특위 위원도 별로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전권을 휘두를 수 있는 권한을 쥐었다면 혼자서 그 권한을 행사하면 될 일이다. 무엇이 두려워서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조강특위 위원들을 또 선정하는 번거로움을 자초하는지 모를 일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전 위원의 인적 쇄신에 대한 인식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는 아무도 희생하지 않고 당을 일신(一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온실 속 화초, 영혼 없는 모범생, 열정 없는 책상물림들만 가득했던 한국당의 인재 선발 기준을 송두리째 바꾸겠다며 거친 들판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자라난 들꽃 같은 젊은 인재들을 등용하겠다고 했다.

그랬던 사람이 김무성 의원을 비롯한 “대선주자급에 칼을 들이대선 안 된다”고 말했다. 자가당착도 이런 자가당착이 없을 게다. 김 의원이 ‘대선주자급’이라는 자의적 해석도 문제거니와, 아예 김무성 의원과 같은 인물들에게는 칼을 대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보수가 이토록 망가지도록 내버려둔 보수 분열에 책임이 있는 당내 인사들에게 당당하게 “당을 위해 희생하라”고 해야 하는 것이 전 위원의 분명한 소임일 터다.

전 위원은 또 이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바른미래당 등을 포함한 통합 전당대회를 통해 중도와 보수가 단일대오를 형성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참으로 어이 없는 노릇이다. 보수 분열 세력과 통합해야 한다는 인식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한국당이 그들과 통합하면 등 돌렸던 민심이 돌아온다던가.

전 위원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보수통합’ 운운할 것이 아니라 계파를 떠나 보수 괴멸에 책임 있는 당 내 인사들부터 정리하는 일이 급선무인 것이다. 고름을 짜내지 않고는 절대로 새살을 돋게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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