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창호 대장 "산악인들을 위한 디딤돌이 되고 싶다"고 했었는데
고 김창호 대장 "산악인들을 위한 디딤돌이 되고 싶다"고 했었는데
  • 오두환 기자
  • 입력 2018-10-14 01:56
  • 승인 2018.10.14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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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창호 대장 [뉴시스]
고 김창호 대장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김창호 대장(49)이 지난 13일 안타깝게도 히말라야 등반 도중 눈 폭풍에 따른 산사태에 휩쓸려 사망했다.

주네팔 한국대사관은 13일(현지시간) 히말라야 구르자히말산 등반 중 휘몰아친 강풍에 베이스캠프에서 추락한 김 대장 등 한국인 등반가 5명의 시신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8년 서울시립대 무역학과에 입학한 뒤 산악부에 들어가게 된 김 대장은 이후 전문 산악인의 길에 들어서 1993년 파키스탄 그레이트 트랑고타워(6284m) 완등으로 히말라야에 올랐다. 이후 2005년 7월14일 낭가파르바트(8156m)부터 2013년 5월20일 에베레스트(8848m)까지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산소통 없이 완등했다.

국내에서는 고 박영석 대장과 엄홍길 대장 등에 이어 여섯 번째로 히말라야 14좌를 모두 완등한 산악인으로 꼽힌다.

김 대장은 산소가 평상시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에베레스트 정상을 향해 산소통도 없이 발길을 내딛기에 앞서 "신기록을 앞두고 있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14좌 완등을 목표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다. 기록에 대한 욕심도 없다. 중요한 것은 등반 그 자체"라고 말했다.

함께하던 동료 산악인을 떠나보낸 경험도 많았다. 특히 2013년 5월 에베레스트 등정 때 하산 도중 서성호 대원이 숨지는 사고를 겪었다. 

그는 귀국 후 등반 과정을 밝히는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등반이 힘들었지만 해낸 것에 대한 뿌듯함과 동료 대원과 같이 돌아오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함께 남아있다. '이것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인가' 하는 힘든 마음이 있다"고 동료를 잃은 슬픔을 전했다.  

2011년 10월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된 박영석 대장의 수색작업을 위해 네팔행을 자처하기도 했다. 

그는 "반드시 이뤄야겠다고 마음먹은 최종 목표는 없다. 자연스럽게 산악인이 됐고 어찌어찌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을 뿐"이라며 "기록에 대한 욕심을 내기보다는 공부를 더 하고 싶다. 국내에는 히말라야를 연구하는 인력이 많지 않은데 내가 그 역할을 해서 우리 후배 산악인들을 위한 디딤돌이 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