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제약 경영권분쟁 막후

평소 한국 재계에 관심이 없었던 일반인들이라고 할지라도 ‘박카스로 유명한 동아제약이 경영권을 둘러싸고 부자(父子)간 치열한 혈투를 벌이고 있다’는 소식은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동아제약을 둘러싼 부자간의 경영권 다툼은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거론돼 왔기 때문이다. 또한 속 내막이야 어찌됐든, 아버지와 아들이 법정을 오가며 경영권 다툼을 벌였다는 점만으로도 재계 호사가들 사이에서 씹기 좋은 ‘거리’임에는 분명하다. 이러한 가운데 동아제약의 경영권 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해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동안 동아제약 보유지분을 야금야금 늘려오던 한미약품이 어느새 동아제약 전체 지분의 10% 이상을 확보한 것. 경영권 분쟁 당사자인 강신호 회장 측과 강문석 이사 측에 이어 사실상 동아제약의 3대주주가 된 셈이다. 이로써 한미약품은 동아제약 경영권 다툼에 확실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됐다. 심지어 종국에는 한미약품이 동아제약을 삼키는 게 아닌가 하는 조심스러운 관측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첩첩산중에 놓인 동아제약의 현 위치에 대해 알아봤다.



동아제약에 대한 한미약품의 지배력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미약품의 동아제약 보유지분은 지난 1월 6.27%(61만8942주)에서 현재
7.14%(71만7427주)로 0.87% 포인트 늘었다.

여기에 한미약품의 우호세력으로 평가되는 한양정밀이 보유한 동아제약 지분 3.72%(35만9935주)를 합치면 한미약품이 동아제약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10%를 훌쩍 넘어서게 된다.

동아제약 경영권 분쟁 당사자인 강신호 회장측과 강문석 이사측에 이어 사실상 동아제약의 3대주주가 된 셈. 이에 따라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과 강문석 이사간의 경영권 분쟁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동아제약은 자사에 대한 한미약품의 추가 지분변동에 대해 전혀 눈치를 체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초 동아제약 지분을 5% 이상 보유하고 있던 한미약품으로서는 보유지분이 ±1% 포인트 이상 변동되지 않는 한 ‘주식등의 대량보유 상황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미약품은 동아제약 지분을 0.87% 포인트 늘리는데 그쳐 굳이 해당부처에 보고할 의무가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강문석 이사는 한미약품의 이러한 호전에 반색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강 이사는 한미약품의 임성기 회장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두 사람은 함께 골프를 즐겨 칠 정도로 두터운 친분을 과시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또한 강문석 이사측에 우호적인 유충식 동아제약 이사와 장안수 한미약품 사장이 끈끈한 연결고리를 맺고 있어 일각에서는 한미약품이 강문석 이사를 지지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증권업계는 한미약품과 강문석 이사와의 관계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신약개발 역사가 짧은 한미약품은 동아제약의 기술력이 탐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한미약품은 이번 분쟁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자신에 유리한 방향으로 최종 결정을 내릴 것”이라
고 귀띔했다.


한미약품의 진짜 목적

그러나 한미약품측은 동아제약 지분을 추가 매입하게 된 것에 대해 “단순 투자일 뿐 확대 해석치 말아줄 것”을 당부했다.

이와 관련, 한미약품 관계자는 “SK케미칼 주식을 처분하면서 잉여자금으로 동아제약에 단순 투자한 것일 뿐”이라며 “SK케미칼 주식을 대체해 산 것 이외는 의미가 없다”고 못 박았다.

하지만 제약업계와 증권업계는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동아제약에 대한 한미약품의 이 같은 지분 늘리기는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전략적 투자 이상이라는 것.

그도 그럴 것이 한미약품은 그동안 오리지널 신약보다는 아모디핀 등 개량 신약을 기반으로 성장세를 다져왔다. 때문에 동아제약의 탄탄한 신약 연구개발 참여를 비롯, 공동 판매권 획득 등 전략적 제휴를 적극 추진할 것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한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의 장남인 임종윤 북경한미 총경리(사장)이 홍콩 자본금 10만 달러를 들여 최근 금융회사인 ‘라이트콤’을 설립하면서 또 다른 해석도 조심스레 거론되고 있다.

제약사 오너 2세가 금융회사를 해외에 설립하는 것이 이례적이라는 점으로 미뤄 향후 외국인 투자자와 함께 제약업계를 인수·합병하지 않겠냐는 해석이다.
이와 관련,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한·미 FTA 이후 국내 제약사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몸집 부풀리기’와 신약 개발 밖에 없다”며 “동아제약이 국내 제약사 중 R&D 부문에서 강하고 내부적 갈등까지 빚고 있어 한미약품으로서는 충분히 욕심을 낼만하다”고 설명했다.


#동아제약 최후 승자는?
논리적인 형 VS 직관적인 이복동생


왜 동아제약의 ‘집안 다툼’은 그칠 줄 모르는 것일까. 각종 의문의 진원지는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의 집안내력에 있다.

강 회장의 자녀 중 동아제약 경영에 관하고 있는 사람은 2남인 강문석 이사(수석무역 대표)와 4남 강정석 부사장이다. 두 사람은 어머니가 다른 이복형제다. 강 이사는 강 회장의 첫째부인 소생이고, 강 부사장은 둘째부인의 자녀다. 강 회장은 본처인 박씨와 오래전부터 별거에 들어갔으며, 결국 지난해 7월 협
의 이혼했다.

강 이사는 사석에서 “집안일이 있을 때 가끔씩 들리곤 한 아버지는 ‘정리정돈을 제대로 하라’고 말씀하시는 엄한 분이었다”면서 “그래도 아버지의 마음에 들기 위해 공부에 매달렸고 동아제약에 들어가 착실히 후계수업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한편 강정석 부사장은 강 이사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 또한 강 회장은 강 부사장에게 더없이 다정다감한 아버지였다.

강 부사장은 “대학시절 술을 마시고 밤늦게 들어오면 아버지가 ‘우리 막내 술을 많이 마셨네’라고 말씀하시며 문을 열어줬다”고 회고했다.

자라난 환경 때문인지 두 형제의 스타일은 크게 다르다. 서울대 산업공학과 학사, 스탠퍼드대 공학 석사, 하버드대 MBA 출신인 강문석 이사의 경우 모든 일에 분석적인 반면 중앙대 철학과 출신인 강정석 부사장은 관상을 볼 줄 아는 사람답게 매우 직관적이다.

이를 두고 주변에서는 두 형제가 손을 잡으면 그야말로 ‘황금 콤비’가 될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렇지만 형제의 골은 생각보다 깊었다. 어릴 때부터 서로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정작 말을 나눈 것은 다 자라고 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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