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미국의 신문왕 허스트의 손녀 패트리샤는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의 한 아파트에서 부의 무상분배 등을 주장하는 극좌 무장단체(SLA)에 납치된다.
 
SLA는 패트리샤의 부모에게 200만 달러어치의 음식을 빈민들에게 나누어주고 신문에 자신들의 광고도 실어줄 것을 요구한다.
 
이후 패트리샤는 “SLA의 대의에 따라 함께 투쟁하고, 이름도 라틴아메리카 게릴라 혁명가였던 체 게바라의 애인 이름인 ‘타냐’로 개명했다”고 선언한다. 그리고는 SLA 단원들과 함께 은행과 가게를 습격하는 테러에 가담하다 체포된다. 패트리샤는 SLA 요원들과 함께 지내면서 이들에게 연민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심리학자들은 패트리샤처럼 자신보다 큰 힘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가해자에게 심리적으로 공감하는 현상을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1973년 8월 23일부터 28일까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발생한 은행 강도 사건에서 유래했다.

강도들의 습격을 받고 인질이 된 은행 직원들은 강도들과 지내면서 정서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들 직원은 강도들을 향한 충성을 맹세하고 경찰의 사살 기도를 저지하기 위한 인간 방패 역할을 수행하는 등 점점 이상한 행동을 했다. 강도들이 체포된 후에는 법정에서 강도들에게 불리한 증원을 거부하기도 했다. 인질이 인질범에게 동화된 것이다.  
 
스톡홀름 증후군과 반대 개념인 ‘리마 증후군’도 있다. 인질범이 자신의 인질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폭력성이 저하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1996년 리마에서 일본 대사관저 인질 사건이 일어난다. 그런데 관저를 점거한 페루의 반정부 조직 요원들은 400여명의 인질과 함께 지내면서 점차 인질들에게 동화되는 현상을 보였다. 이들은 인질들이 가족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을 허용해 주는가 하면, 인질들이 미사 의식을 개최하거나 의약품, 또는 의류를 반입하는 것도 허용했다. 
 
2006년 개봉된 ‘타인의 삶(Das Leben der Anderen)’은 ‘리마 증후군’을 묘사하는 대표적인 독일 영화다.
 
주인공인 비밀경찰의 시선을 통해 동독의 비인간적이고 억압적이었던 인권탄압을 다룬 이 영화에서 동독과 자신의 신념을 맹목적으로 고수하던 주인공은 동독 최고의 극작가와 인기 여배우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는다. 그러나 주인공은 이들을 체포할 만한 단서는 찾지 못한 채 되레 시간이 갈수록 이들의 삶에 감동을 받고 사랑을 느끼게 된다. 결국 그는 이전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인간적인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남북 해빙무드와 함께 김정은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의 신뢰도와 호감도가 날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고 한다.

핵무기의 인질로 살아오면서 ‘서울 핵 불바다’ 운운하는 북한의 위협에 감당할 수 없는 공포를 경험한 후 김정은의 평화 공세와 비핵화 의지, 미북 정상회담 등이 개최되자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도래했다고 믿고 싶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심리를 반영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그러자 공포를 제공한 인질범에 대해 호감을 나타내는 ‘스톡홀름 증후군’에 우리 국민이 사로잡혀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김정은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하는 데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눈물겨운 ‘이미지 메이킹’ 작업도 크게 한몫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김정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남북정상 회담 시 문 대통령이 ‘바른 생활’ 젊은이 김정은의 모습을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여기에 전 세계 가톨릭 수장인 교황의 평양 방문을 코치하기도 했다. 김정은의 평화에 대한 진정성을 만천하에 선전하기 위함이라는 해석이다.
 
이 같은 문 대통령의 ‘김정은 이미지 메이킹 작업’은 그러나 우리 국민의 ‘스톡홀름 증후군’ 증상을 심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히 우려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질범의 행동(북한의 핵무기 위협)을 정당화해 주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 대통령은 김정은이 ‘리마 증후군’에 사로잡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북한에 동화되지 않고 북한이 대한민국에 동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자유 대한민국의 삶에 감동을 받고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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