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간 ‘와신상담’ 결론은 독자사업

지난 10월 2일부터 사흘간 평양에서 개최된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조율된 남북 경제협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년 전인 2005년 ‘개인비리’ 란 이유로 야인으로 물러난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 그런 그가 2년 동안의 ‘와신상담’ 끝에 트레이드마크인 대북사업을 들고 독자 행보에 나서고 있어 주목된다. 지난해 설립한 (주)아천글로벌코퍼레이션을 통해 시행하고 있는 그의 계획은 올 들어 하나씩 하나씩 구체화되고 있다. 베일에 가려진 그의 행보를 짚어봤다.


김윤규 아천글로벌 회장은 대북사업과 관련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고 정몽헌 회장, 나아가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다. 현대아산 부회장직에서 물러난 후 한동안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북한 정부로부터 입북이 거부된 사실은 그가 대북사업에 있어 얼마나 상징적인 인물이었음을 입증하는 사례다.


대북사업 간판에서 야인으로

지난 2003년 유명을 달리한 고 정몽헌 회장이 남긴 글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명예회장님(고 정주영 명예회장)께는 당신이 누구보다 진실한 자식이었습니다. 당신이 회장님 모실 때 저희는 자식의 한사람으로서 부끄러웠습니다. 명예회장님께서 원했던 대로 모든 대북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기 바랍니다. 당신 너무 자주 하는 윙크 버릇 고치세요.”


구체화 되는 독자 대북사업

그가 윙크하는 버릇이 생긴 것도 지난 1989년 현대건설 재직시절 리비아 발전소 입찰상담을 위해 출장을 떠났다가 트리폴리 공항에서 비행기가 추락해 70명이 사망한 대형사고를 당하면서다. 그는 살아남았으나 한쪽 눈 주위 근육이 수시로 떨리는 후유증이 남았다. 윙크하는 버릇을 고치라는 말은 병원에 가 치료하라는 고 정 회장의 마지막 애정의 표현이었다.

지난 2005년 10월을 끝으로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은 물러났다. 이를 두고 금강산 사업 추진과정에서 지인에 대한 특혜 제공, 북한에서의 불법 달러 유출, 김 부회장 사생활에 대한 미확인 소문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으나 시원스럽게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현재까지도 재계에서는 현대그룹의 바통을 이어받은 현정은 회장이 김 부회장의 존재를 부담스러워한 나머지 그를 축출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윤규 아천글로벌 회장은 지난 3월 북한을 방문, 최승철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나 아천글로벌의 평양·개성 사무소 개설에 잠정 합의했다. 아천글로벌은 기존의 관례를 깨고 올 들어 육로를 이용한 북한 물자의 국내로 직접 반입에 성공했다. 김 회장은 앞으로 개성과 강원도 고성에 대규모 농수산물 유통센터를 설립하고 북한의 통천 앞바다에서 채취한 골재(모래)도 선박을 이용해 국내에 들여올 계획이다. 또한 러시아산 석유와 천연가스를 북한을 거쳐 들여오는 사업 구상도 전해지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아천글로벌은 두바이 시내에 `아천 미들이스트’라는 지사를 열고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쿠웨이트, 이라크 등을 중심으로 하는 중동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회사는 강용득 전 현대건설 해외영업본부 상무가 사장을 맡고 권탄걸 전 현대건설 두바이 지사장이 부사장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달 말 아천글로벌은 북한과 인력 2만명을 중동 건설사업에 파견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북한은 외화벌이와 양질의 산업인력을 확보할 수 있고, 아천 측은 값싼 노동력을 수출해 중개수수료를 벌어들일 수 있다는 데 이해관계가 모아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권탄걸 부사장은 “오일달러 유입으로 대형 건설 프로젝트가 넘쳐나는 중동에 인력공급과 함께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향후 아천글로벌의 대북사업과 관련해 현대아산과 갈등을 빚을 요소가 적지 않다.

현대그룹은 김윤규 회장의 독자행보는 재원 확보가 관건이 될 것이라며 폄하하고 있다. 김 회장의 대북사업 강화를 위한 자금상황이 녹록치 않으며 외부로부터 대북사업의 불투명성 때문에 펀딩에도 난항이 있을 것이라고 현대 측은 보고 있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다음과 같은 독자행보를 보이며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다. 이달 초 열린 PVC창호 업체이자 코스닥 상장기업인 ㈜샤인시스템 임시주주총회에서 김 회장이 이사회 회장으로 선임된 것.

샤인시스템은 김 회장의 취임을 계기로 북한 동해안 모래채취 사업 및 중동건설시장의 창호제품 공급, 북한의 건자재 시장 진출하는 등 다양한 매출확대와 수익성 개선을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업다각화 재원마련이 관건

샤인시스템은 “아천 글로벌 관계사인 아천H&I가 10월 23일 샤인시스템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키로 했다”고 밝혔다. 또한 증권가에서는 반도체 장비업체이자 코스닥 상장기업인 위디츠에 대한 김 회장과 아천측의 경영참여설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위디츠는 지난 6월 유상증자에 참여했던 샤인시스템의 이홍기 이사를 최근 공동대표로 선임했고 현대 출신 임원들이 대거 영입되는 등 김 전 부회장의 인수설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김윤규 회장은 한 언론과의 두바이 현지 인터뷰에서 “북미관계가 개선된다면 외국 기업들이 대북사업에 참여할 공산이 크다”며 “현대아산은 그들대로, 우리는 더 큰 틀에서 대북사업을 성공시키겠다”고 밝혔다. 그의 독자적 대북사업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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