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정비사 의문의 죽음 ‘타살의혹 3’

한 30대 가장의 의문사를 두고 경찰과 유족이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 7월 10일 대한항공 김해정비공장 격납고 앞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만 38세의 남성 변사체가 발견됐다.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이 남성은 다름 아닌 대한항공 기체정비팀의 고(故) 최광진 과장. 대한항공 측에서 내린 표창만 해도 수십 개에 달할 정도로 그는 사내에서 이름깨나 날리던 모범사원이었다. 또한 최 과장은 80세를 훌쩍 넘긴 노부와 토끼 같은 딸아이(7세)를 둔 한 가정의 반듯한 가장이었다. 심지어 아내의 뱃속에는 7년간 애타게 바라던 둘째가 8개월째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최 과장의 사인에 대해 “자살 가능성이 높은 추락사”라며 서둘러 사건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유족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천하를 얻은 듯 남부러울 게 없는 상황에서 고인이 투신자살할 하등의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 또 유족 측은 “최 과장이 스스로 격납고 지붕에 올라가 떨어져 숨진 것으로 보인다”는 경찰 측 주장에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이제는 한줌의 재가 된 고 최광진 과장, 그의 죽음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의혹에 대해 추적했다.


지난 7월 10일 낮 12시 26분, 대한항공 김해정비공장 격납고 부근에서 기체정비팀 최광진 과장이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목격자 진술과 “자살로 판단된다”는 의사의 검시조서에 따라 최 과장의 사인을 단순 투신자살로 잠정 결론지었다.

이후 사건은 사고발생 3일 만에 종결됐다. 그러나 문제의 발단은 유족 측이 사건을 둘러싼 석연치 않은 몇 가지 의혹들을 제기하면서 커지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유가족 측은 “경찰과 대한항공의 주장처럼 이번사건이 단순자살이라면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현장 사진과 주기로 약속했던 각종 자료들을 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게다가 최근에는 아예 그런 자료가 없었다고 잡아떼기까지 한다”고 주장했다.

유족 측은 또 경찰의 판단대로 고인이 자살을 했다면 유서를 작성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유족 측 관계자는 “고인은 평생을 함께하자 약속했던 부인과 사랑하는 어린 딸, 가족들 그리고 주변 동료들에게 아무런 이별도 고하지 않을 만큼 목숨을 헛되이 버릴 사람이 아니었다”면서 “7년 만에 임식소식을 듣고 너무나 좋아했으며 팔순이 넘은 아버님께 지극한 효자였던 고인이 30미터 옥상에서 뛰어내릴 만큼 비정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말”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타살의혹 곳곳서 발견

이번사건을 둘러싼 대표적인 의혹은 총 3가지. 그 중 가장 많은 의문점을 품고 있는 게 바로 사건 조작 여부다.

최광진 과장이 투신자살한 시간은 낮 12시 26분. 공교롭게도 그 시각은 정규직만도 2000여명에 육박하는 김해정비공장의 점심시간(오전 11시30~12시30분)과 일치한다. 그러나 사건현장을 목격자한 사람은 비정규직 외부업체 여성노동자 단 한명 뿐이었다. 또한 유가족 측에 따르면 목격자는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여러 차례 자신의 주장을 번복했다.

이와 관련 유족 측 관계자는 “경찰 조사에서 ‘쿵’하는 소리에 놀라 나와 보니 사람이 죽어있었다고 진술했던 박모(목격자)씨가 나중에는 직접 추락하는 장면을 보았다고 진술을 번복했다”며 “더욱이 박씨는 유가족과의 만남을 갖겠다고 약속해놓고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유족 측은 또 사건현장이 조작됐다며 타살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고인의 시신이 30m 높이의 격납고 지붕에서 떨어졌다고 보기에는 너무 깨끗하다는 점과 망인의 옷이 누군가와 다툰 듯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에 대해 유족 측은 “둔탁한 흉기로 맞아 찢어진 듯한 눈가의 상처와 양손에 새겨진 선명한 피멍자국을 제외하면 망인의 상태는 온전했다”며 “바닥이 딱딱한 시멘트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만약 30m 높이에서 떨어져 죽었다면 피가 사방으로 낭자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추락 당시 최 과장이 소지하고 있었던 안경이나 휴대전화, 손목시계 등의 물품은 신기할 정도로 멀쩡했다. 심지어 휴대전화의 경우 그동안의 통화목록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또한 최 과장의 옷이 성치 못한 것에 대해서도 유족 측 관계자는 “떨어져 죽기를 결심한 사람이 자기 옷을 스스로 찢을 리는 없지 않느냐”며 “옷이 찢어져 있었다는 것은 고인이 죽기 전 누군가와 멱살잡이를 하는 등 심하게 다투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 측 주장은 이와 달랐다. 부산 강서경찰서 관계자는 “당시 시신은 얼굴 함몰도 심했을 뿐더러 양쪽 팔과 다리, 허벅지의 뼈가 다 부러져 있었다”며 “높은 곳에서 투신했다고 해서 꼭 피가 많이 퍼지는 것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미심쩍은 구석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경찰이 도착하기 전·후를 기점으로 두 차례 사건 현장을 촬영했던 사진들을 비교한 결과 유품의 위치가 서로 뒤바뀌어 있거나 시곗줄이 있었던 자리에 뜬금없이 스탬프가 놓여있기도 했다.

유족 측에 따르면 현재 최 과장의 사건은 재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유족 측의 끈질긴 집념이 이끌어낸 결과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한 지 수개월이 지난 지금, 재수사를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초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고 있는 셈.

한편, 대한항공 측은 이러한 유족 측 주장에 대해 “얘기는 들었지만 우리가 수사부문에서 수사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건 추이를 조금 더 지켜봐야할 것 같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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