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앞둔 재벌 총수들의 움직임

참여정부 마지막 국정감사(이하 국감)에서 재벌그룹 총수들이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대선정국과 맞물려 국감이 ‘정치공방’으로 번지면서, 거물급 그룹 총수들에 대한 증인 채택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국감에서는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과 은행권CEO 등이 증인으로 채택된 것이 고작이다. 이와 관련, 최근들어 국내 굴지 재벌 총수들의 해외출장도 잦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노동계 등에서는 “총수들이 해외출국 및 건강상의 이유 등을 들어 국감시즌을 고의적으로 피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회가 재벌 총수 및 대기업 CEO들에 대한 증인채택을 잇따라 무산시키며 올해 국감에서도 재벌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모습을 어김없이 연출하고 있다. 현재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 등이 증인으로 채택된 것을 제외하고,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국감 증인 채택은 거의 무산됐다.


박성수 회장, 국감 증인채택

박 회장은 지난 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출석의원 만장일치로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다. 또 최종양 뉴코아 대표와 오상흔 홈에버 대표 등 계열사 CEO도 모두 증인으로 채택돼 이달 23일 열리는 환노위의 전국지방노동청 대상 국정감사에 소환될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은 국감에서 ‘이랜드 비정규직 직원들에 대한 계약해지 및 외주화 추진 등을 직접 지시했는지 여부’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랜드로서는 장기간 파업사태에 이어 계열사 CEO들이 국감에 줄줄이 증인으로 소환되면서, 그룹 경영에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됐다.

그러나 대기업 총수들이 해외출장 등을 통해 국감 출석을 피해갔던 사례로 미루어 박 회장이 출석할지는 미지수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이랜드일반노조 등 노동계에서는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채택된 박성수 회장이 해외로 출국하려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며 “박 회장이 국감을 앞두고 해외에 나가려는 것은 명백히 도피성이 짙다고 판단하고 최대한 이를 저지할 것”이라
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그간 대기업 총수들이 해외출국 및 건강 등을 이유로 국감 출석을 피해왔던 사례가 비일비재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이런저런 이유로 국감에 출석하지 않았다. 이 회장은 지난 2005년국회 재경위의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미국에서 입원치료 중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국감 증언대에 서지 않은 바 있다.


삼성, ‘국감 무풍지대’?

지난해에도 이 회장은 국감증인으로 채택됐지만, ‘벤플리트’ 수상 등의 이유로 해외로 출국하면서 국감에 출석하지 않았다.

올해도 사정은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 법사위 등에서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발행’과 ‘안기부 X파일 사건’이 주요 현안으로 제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법사위 소속 노회찬 의원은 지난달 이건희 회장을 국감 증인으로 신청했다.

노 의원은 “이 회장은 불법 경영권세습사건인 삼성에버랜드 사건과 정-경-언-검 권력유착 삼성X파일 사건의 최정점에 있는 인물이다”며 “현정권은 ‘삼성 앞에만 서면 왜 그렇게 작아지는지’ 현 정권의 마지막 국감에서 내막을 밝혀야 한다”며 이건희 회장의 증인채택을 강력히 주장했다.

노 의원은 이어 “이 회장이 국감에 출석하면 ‘삼성에버랜드 사건에서 검찰에 이건희 회장의 소환여부, 관련자 수사계획 등을 묻고, 대법원에 계류 중인 재판의 적시사건처리가능성’, ‘삼성X파일 사건에서 이건희 회장이 검찰에게 떡값전달의 직접지시여부 내지 묵인여부’ 등을 따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같이 이 회장 증인 채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음에도 불구, 이 회장의 증인채택은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대선정국과 맞물려 이번 국감이 ‘정치 이슈’쪽으로 흘러가면서, 이 회장 등에 대한 증인채택 문제가 뒤로 밀려나 있기 때문이다.


은행권 CEO들만 ‘곤욕’

김승연 한화 회장의 경우도, 비슷한 상황이다. 김 회장은 올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보복폭행 사건’의 장본인이다. 따라서 이번 국감에서 ‘보복폭행과 관련한 경찰의 봐주기 수사 의혹’ 등이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김 회장은 항소심에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의 선고를 받고 풀려나, ‘요양’ 등을 목적으로 지난달 17일 일본으로 출국한 바 있다. 이로 인해 김 회장의 국감 증인채택은 사실상 물 건너간 상태다.

‘비자금 문제’ 등으로 곤욕을 치른 바 있는 정몽구 현대차 회장도 국감시즌인 10월 한달간 세계박람회의 여수 유치 및 해외 현지공장 시찰 등을 위해 해외로 출장을 떠났다. 또 SK그룹 최태원 회장도 남북정상회담 수행원 자격으로 평양을 다녀온 후 곧바로 해외 출장에 나선 바 있다.

이같이 재벌총수들이 해외출장이나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해외로 출국하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재벌총수들에 대한 증인채택에 대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거물급 재벌총수들은 올해 국감장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국회가 재벌총수 등 거물급 인사에 대한 증인 채택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사태가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며 “이는 국회 스스로가 국정감사의 권위를 높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재벌총수에 대한 증인 채택이 거의 무산되고 있는 가운데, 금융권 CEO들이 줄줄이 국감 증언대에 서며 수난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국감에서는 이인호 신한금융지주 사장, 박해춘 우리은행장, 강정원 국민은행장 등 상당수 은행권 CEO들이
정윤재 전청와대 비서관 비리의혹 등과 관련해 증인 및 참고인으로 소환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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