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이창환 기자]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은 관객이 무대에서 벌어지는 어떤 대화를 기대하고 예상하며 그에 밀접한 감정을 갖추기 좋은 연극이다. 극 제목부터 개인의 감정을 투영하도록 돕는 이번 작품은 새로운 흐름에 뒤처지는 인문사회과학 잡지사 ‘시대비평’을 배경으로 관객 누구나 현실을 돌아보며 몇 마디 보태고 거들 수 있게 한다.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은 회의와 불만에 찬,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타성에 빠진 인물을 앞세워 관객이 이들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기억을 다시 세울 수 있도록 한다. 우리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극 속 인물들은 사무실, 길거리, 주점 등에서 가볍고도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데 이 같은 광경은 무대와 관객석의 거리를 좁히는 동시에 관람하는 정도에 따라 무대 위를 현실로, 이를 지켜보는 객석을 비현실로 여기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그 과정은 ‘나 역시 저 사람처럼 외로운가, 힘든가, 슬픈가’를 생각하는 것으로 시작해 고독과 괴로움의 정체성, 이를 표출하거나 감추는 방법의 갈래를 고민하는 것까지 정해진 답 없이 이뤄진다. 인물에 몰입할수록 그가 실재처럼 느껴져 연극은 잠시 현실이 되고 ‘현실’ 맞은편의 관객은 무대에 있던 예술성을 얻거나 현실 대 비현실이라는 이분법에 구애받지 않는 중간쯤으로 간다. 연극의 영향력으로 관객은 평소의 외로움, 힘겨움, 슬픔, 불안, 욕망을 다른 시선으로 되짚는다. 연극에서 교환하는 현상이며 개인이 갈구하는 위로와 도피의 다른 서술이기도 하다.

연극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은 한 인간의 내밀한 불안과 권태가 ‘말’로써 유출되고 확인됨을 보인다. 작품은 시대 앞에서 도태되고 방황하는 ‘시대비평’ 상황을 희비극으로 드러내는데, 인물들은 말의 굴곡과 의외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내면의 불안을 노출 시킨다. 경청보다는 자신이 해야 할 말에 더 집중하거나 상대의 고민마저도 하고 싶은 말에 끼워 맞추는 방식은 대화의 지속성을 막는다. 이 같은 소통 불화를 반영하는 작품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불화하는 대화 형식 또한 소통의 단면임을 추가로 반영한다. 그 단면은 시대비평 팀장 김남건을 통해 드러난다.
오랜 세월 몸담은 계간지가 상업화되는 것이 못마땅한 김남건은 광고업계 출신인 서상원 편집장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태도로, 자신을 무기력하고 염세적인 상태로 만드는 것으로 불만을 표시한다. 김남건의 정신은 그의 수다처럼 혼란스러운 와중에 통찰을 내뿜으며 머릿속 해석은 자주 전복된다. 길 잃은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종종 ‘할 말’을 함으로써 존재감을 표출하는 것으로 그 직설과 무례함에는 자신의 불안을 위로받고자 하는 심리가 있다.
김남건의 말은 때로 주변 사람의 비난을 받기도 하며 속내를 바닥까지 꺼낸다는 점에서 일부 희생성을 띤다. 말함으로써 수치와 쓸쓸함을 새삼 실감하거나 더 심화 되는 결과를 낳는다. 특히 속내를 숨기고 말을 조심스럽게 함으로써 자기를 보호하는 디자이너 팽지인 등은 그에게 냉소, 무관심 따위를 보내나 나중에는 그를 통해 자신의 이면을 확인한다. 김남건의 소외는 그가 상업주의 흐름에 반대한다는 것과 ‘시대비평’을 지키려는 점에서 예술성을 얻는데 그 예술성은 실패하는, 모순적인, 외로운 인간을 함축한다. 속내를 꺼내는 그의 용기는 한 발 뒤로 물러나는 소심함 사이에서 우열을 차지하지 못하는데 이는 예술적 감정의 기복과 시간의 움직임과 흐름을 비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은 대화의 무책임과 상호작용의 무수하고도 무미건조한 가능성을 유머러스하게 또 깊이 있게 전달한다. 어제 뱉은 진심을 오늘 후회하는 행위와 여태껏 살아오면서 세운 가치관을 스스로 부정하고 다시 줍는 행위를 통해 우리의 불안과 권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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