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대표가 더불어민주당의 당대표로 취임한 지 이제 갓 50일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전부터 당대표였던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당은 급속도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그가 당대표가 된 뒤에는 당이 정국을 주도하고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이해찬 당대표가 정국을 주도하고 있다.

물론 이전에 당대표를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당대표 역할을 수습할 필요가 없기는 했지만, 1기 당대표 때 당을 확실히 장악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끌려 다니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원맨(one man)체제로 당을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해찬 대표는 당··3각 체제의 중심에서 정국을 주도하고 있으며, 그러한 상황을 당내에서는 주류 비주류를 막론하고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고, 여권 내 차기 대권주자들도 몸 사리기에 여념이 없다.

이해찬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20년 집권론을 꺼내들었고, 지난달에는 민주당이 대통령 10번은 더 해야 한다는 이른바 ‘50년 집권론으로 발전시켰다. 10.4선언 11주년 행사로 북에 가서는 자신의 살아생전에는 정권교체를 볼 수 없다며 생존집권론으로 진화시켰다.

어떤 비전과 어떤 정책으로 정권을 연장하겠다는 구체적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보수 야당에 대한 적개심만으로 유권자를 동원하여 정권을 연장하겠다는 여당 대표의 장기집권론이 씁쓸하다. 정권 창출의 모체가 되어야 할 더불어민주당을 어떻게 변화시키겠다는 구상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 명확하게 보이는 것이 있다. 차기 대권후보에 대한 구상이다. 그는 11년 전 대선 당내경선에서 같은 친노계열의 후보였던 한명숙 전 총리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주저앉히면서 친노후보 단일화를 이뤄 정동영 후보, 손학규 후보와 경쟁했으나 3위로 후보가 되지 못한 쓰디쓴 과거가 있다. 그때의 실패는 그가 대중정치인으로서의 자신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길은 킹메이커의 길이었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옹립해 친노세력의 명맥을 잇게 하여 결국 19대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것은 누가 뭐래도 이해찬 대표의 공이 제일 컸다.

친노세력의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되던 김경수 경남지사가 뜻밖의 드루킹사건으로 상처를 입은 상황에서 친노세력의 명맥을 이을 대권후보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 발생했다. 이낙연 총리나 박원순 시장, 김부겸 장관과 같은 사람으로 친노세력의 명맥을 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친노세력 대권후보 부재의 틈을 타서 이들이 치고나가게 되면, 친노세력의 최고 실력자인 이해찬 대표의 입장에서는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해찬 대표가 눈독을 들인 사람은 11년 전 자신에게 친노세력의 후보 자리를 양보한 경험이 있고, 대중성이 있으며, 정치인으로서도 검증된 자신의 보좌관 출신 유시민 작가였다. 그는 자신이 이사장을 맡고 있던 노무현재단의 신임 이사장으로 유시민 작가를 앉혔고, 유시민 작가는 본의(?) 아니게 정치를 재개하였다.

지난 15일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유시민은 10월 초 한국리서치가 조사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여권정치인 선호도 조사에서 11.1%의 선호도를 보여 12.7%의 이낙연 총리, 11.5%의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3강 체제를 형성했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3.1%였다. 전략가 이해찬 대표의 구상이 일단은 맞아떨어진 느낌이다. 아직 가야 할 길은 멀지만, 이해찬 대표를 등에 업은 유시민 이사장에게 이낙연 총리와 박원순 시장의 앞길이 버겁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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