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은 아웃사이더다. 학생운동 판에서도 NL이 아닌 비주류였고, 진보정당 운동에서도 자주 진영에 밀려날 처지에 섰었다. 보수정당으로 치부하던 민주당에 동참해서도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비서실장이 어울리는 옷으로 보였다.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문재인 대통령 후보 선대위의 대변인까지 했지만 박 의원은 여전히 비문으로 불렸다. 19대 국회의 이종걸, 박영선 뒤를 이어 20대에 삼성 저격수로 등극했지만, 바로 그 이유로 전반기에 활동하던 정무위원회에서 배제당했고, 별 관심 없던 교육위원회에 유배되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총리실,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보훈처 등을 소관기관으로 하면서 기업의 지배구조, 시장의 불공정거래 행위, 금융정책 등을 담당하는 곳이다. 금융기관 등을 상대할 수 있어 물 좋은 상임위로 불리는데, 정무위의 진면목은 기업의 지배구조, 공정거래 문제를 통해 대기업 집단에 영향력을 끼친다는 데 있다. 박 의원은 20대 국회 전반기에 정무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이건희의 차명계좌,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삼성생명 보유지분 매각 문제를 제기하면서 삼성의 주적으로 떠올랐다.

지난 여름 늦깎이 원 구성 과정에서 삼성에 밉보인 박 의원이 삼성과 화해한 청와대의 주문으로 정무위에서 밀려날 거라는 미확인 소문이 돌았다. 표면적으로는 인터넷전문은행의 은산분리 완화에 강한 반대 입장을 가져서라지만 그 뒤에 삼성이 있다는 그럴듯한 소문이었다.

소문이 사실이었는지 박 의원은 교육위에 배정되었고, 상임위에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더라는 소문이 더해졌다. 그러던 중 서울대 유전자가위 특허 빼돌리기를 터뜨려 안타를 치더니, 비리 유치원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만루 홈런을 날려버렸다.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안다. 사립 유치원 원장들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집단인지, 건드리면 얼마나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지. 사립 유치원 원장들은 지역에서 유지 행세를 하고, 지역 유권자인 학부모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유치원은 학교와 다르다.

교사는 지역사회와 섞이지 않고 정치와 거리를 두지만, 유치원 원장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원장 한 사람이 유치원을 거쳐간 몇백명 아이 부모들의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있고, 그들에게 직간접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표를 구애할 수밖에 없는 선출직들은 표심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과 척지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억지주장을 해도, 심지어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차라리 눈을 감을지언정 싸우는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다.

서운해 하면 피곤해지고, 밉보이면 차기 선거 전망이 먹구름이 끼는데 감히 사립 유치원 원장들에게 등을 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조직도 촘촘하고 응집력도 대단하다. 불리한 정책이 시행되거나 정부예산을 증액시켜야 할 일이 생기면 휴업도 불사하고, 지역구별로 의원들을 맨투맨 마크하면서 로비에 나선다.

돈에는 독야청청해도 표에는 녹을 수밖에 없는 것이 정치인의 운명이다. 유치원이, 교회와 절이, 택시가, 공무원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몰라서 못 건드리는 것은 아니다. 건드리면 불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위험하고 차라리 벌집을 건드릴걸 후회할 정도로 상처를 입는다는 것을 알기에 안 건드리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사립 유치원 원장과 같은 이권 집단을 피해 정치생명에 위험을 초래하지 않으려는 생존 욕구를 비난하는 건 쉬운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 의원 은 자기 정치생명을 건 것이다. 정치적 계산이야 있었겠지만, 유치원 원장 손아귀에 있는 표가 아닌 국민들 손에 있는 한 표 한 표를 믿고 저지른 일이다. 지켜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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