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사람 11]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행복했다”

정재환 교수
정재환 교수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세월이 지나면 잊히는 사람들이 있다. 일반인들이야 잊히는 데 익숙하지만 소위 유명인들은 팬들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많다. 반면 평생 잊히지 않는 사람도 있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 형제자매가 그렇고 오랜 시간 지켜봐 온 나만의 스타가 그렇다. 정재환 교수는 잊히지 않는 스타다. 개그맨 보다는 방송인, 사회자 등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점잖은 외모와 말솜씨는 그의 표징이다.

 

“간판 필요하냐, 무모하다는 말 듣기도”
‘나는 오십에 영어를 시작했다’ 책 출간

 

정재환 교수는 어느 순간 TV에서 사라졌다. 전성기에 수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만큼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그의 모습이 또렷하지만 TV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정재환 교수는 TV 방송보다 대학 강단에 주로 서기 때문이다.

그가 최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국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최근 KBS쿨FM ‘박명수의 라디오쇼’에 출연했는데 그게 이슈가 된 것이다. 지난 한글날을 앞두고 tvN ‘어쩌다 어른’ 초청특강에도 나갔다. 정 교수와 한글이 무슨 연관이 있을까 궁금한 사람도 많다. 사실 정 교수는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방송에서 그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없게 된 이유 중 하나다.

그가 최근에는 책 한 권을 출간했다. ‘나는 오십에 영어를 시작했다’라는 제목의 이 책은 어른들을 위한 영어책이다. 일요서울은 지난 11일 오후 성균관대학교 캠퍼스에서 그를 만났다. 정재환 교수는 현재 성균관대학교에서 초빙교수로 한국사를 강의하며 경기대와 추계예술대에 출강하고 있다.

정재환 교수는 지난 2000년 마흔 살의 나이에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했다. 자연스레 ‘늦깎이 학생’ ‘만학도’라는 호칭이 따라붙었다. 

 

“머리 뛰어난 편 아냐
 엉덩이로 버텼을 뿐” 

 

그는 “일도 중요하지만 공부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대학교에 입학했다”고 말했다. 배움의 갈증이 겄단다. 당시 주변에서는 “간판이 필요하냐는 말도 무모하다는 말도 들었고, 한창 일할 나이에 무슨 공부냐는 진지한 충고도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상하게도 공부가 하고 싶어서 묵묵히 학교에 다녔다. 역사를 공부하고, 3년 만에 인문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했을 땐 스스로 놀랐다”고 말했다. 

학부를 마친 그는 방송가로 돌아가지 않았다. 운명의 장난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를 찾는 사람도 적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밟았다. 하지만 그것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정재환 교수는 “나는 머리가 뛰어난 편이 아니다.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거라기에 말 그대로 엉덩이로 버텼을 뿐이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학기 중에는 친구, 동료, 선후배들조차 만나지 않았다고 했다. 방학이 돼서야 그들을 찾았고 지인들을 만나고 나서는 또 공부만 했다.

 

“공부하는 건 힘들다”
 재미와 호기심 덕분

 

정재환 교수에게 방송인으로 살 때와 교수로 사는 지금 중 어느 때가 더 행복한지 물었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행복하다”며 “살며 배운 것 중 하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행복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주변에서는 정 교수에게 ‘방송 열심히 했으면 더 잘 나갔을 텐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단다. 이에 대해 그는 “‘잘 사는 것’의 척도가 돈이나 인기 같은 것이라면 그들의 맞다. 하지만 돈이나 인기 혹은 지위가 잘 살고 못 사는 것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면 삶이 너무 슬프지 않을까”라고 반문한다.

늦깎이 공부를 하고 석·박사까지 다 따낸 그에게 공부가 힘들지 않냐고 물어봤다. 정재환 교수는 “공부하는 건 힘들다. 전문서를 읽고, 어려운 강의를 듣고, 시험 때면 온몸이 뻐근할 정도로 과부하가 걸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미와 호기심이 그를 지금 이 자리까지 이끌었다.

정 교수는 한글운동사를 공부하다 일본어를 공부했다. 일본어가 필요해 어쩔 수 없이 공부한 것이다. 일본어 자체를 공부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학원에 나가 20대 청춘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말을 섞는 게 민망했단다.

하지만 그는 일본어능력시험 1급을 따냈고 일본어로 웬만큼 읽고 말할 수 있게 됐다. 그는 “1990년대 초 일본에 갔을 때는 벙어리였는데 지금은 일본 여행을 다니면서 보고 먹고 자는 것을 스스로 해결할 정도는 됐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지난 2017년 ‘큐우슈우역사기행’이라는 책도 출간했다.

그가 이번에는 영어서적을 펴냈다. 이유가 궁금해졌다. 정 교수는 “우리 세대는 어릴 때 국경이 높았고, 외국인을 만날 기회도 외국에 나갈 기회도 없었다. 영어가 꼭 필요하지 않았고, 쓸 기회도 적었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변했다”고 말했다.

평균 수명 100세를 앞두고 있는 요즘 정 교수는 사람들에게 “공부를 하라”고 권했다. 그는 “공부가 가장 돈이 안 든다”며 “등산이나 여행도 좋지만 공부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즐기며 공부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는 50~60대“

 

정재환 교수는 “자발적으로 즐기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는 바로 50대와 60대다”라며 “무엇을 할지는 각자 선택하면 된다. 역사, 철학, 문학도 좋고 외국어, 인공지능, 4차산업, 주식투자 등 많은 선택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실용 분야를 선택한다면 일터에서 직접 활용하거나 자본을 증식할 수 있을 것이고, 비실용적인 분야라 해도 삶을 더욱 풍요롭고 윤택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공부 얘기를 하다 성균관대의대 나덕렬 교수의 얘기를 전했다. 뇌를 건강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두뇌 활동을 애야 하는데 고스톱도 좋지만 ‘외국어 배우기’가 치매 예방에 최고라고 했단다.

정재환 교수는 인터뷰를 마치며 5060세대에게 한마디했다.

“한국인으로서 인생의 전반기를 대한민국에서 보낸 5060이지만 인생 후반기는 세계인으로서 더 넓은 세상을 무대로 사는 것이 즐겁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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