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방만한 공공지출이 그리스를 유럽의 골칫덩이로 전락시켜 국가 부도 사태까지 몰고 간 사실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 중에서도 공무원의 급격한 증원이 핵심 요인이었다. 제조업도 변변치 않은 상황에서 무려 18만6000명의 공무원이 늘었으니 국가 부도 사태를 일으킬 수밖에 없을 노릇이다.

공무원 임금과 연금을 지급하느라 재정이 거덜 나자 그때서야 그리스 정부가 부랴부랴 공무원을 줄이기 시작했으나 그에 따른 연금 삭감으로 국민을 가난에 빠뜨리는 우를 피하지 못했다.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가장 손쉬운 대안인 공무원 일자리 늘리기를 선택했다가 화를 부른 대표적인 국가에 들었다.

아르헨티나도 최근 12년 만에 다시 IMF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국가 부도 사태를 막기 위해 정부 부처를 반으로 줄이려 했으나 공무원들이 노동부 청사를 인간 띠로 에워싸며 시위를 하는 어이없는 상황에 봉착하고 말았다. 포퓰리즘 정권이 일자리 만든다며 공무원을 두 배 가까이 늘린 결과였다.

이 두 나라의 예에서 볼 수 있듯 공무원을 일자리 창출의 주요 수단으로 삼는 건 매우 부적합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가 그리스와 아르헨티나처럼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공무원 17만 명 증원을 밀어붙이려 해 그렇게 될 경우 이들이 퇴직 후 받아갈 연금은 92조 원에 달하게 된다. 안 그래도 공무원 연금은 매년 2조 원씩 적자를 내 국민 세금으로 메워주는 실정이다. 이런 식이면 2055년까지 누적 적자 보전금이 300조 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여기에다 17만 명이 추가되면 우리 미래세대 한 명당 440만 원씩 더 부담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공무원이 많아지다 보니 인구 감소로 인해 소멸 위기에 놓인 기초자치단체에 공무원은 오히려 늘어나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경북 영양군의 경우 올해 상반기까지 21명의 공무원이 늘어 공무원 한 명이 37명의 주민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인구 같은 하나의 행정지표만을 기준으로 공무원 적정인력을 산정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지금 정부의 공무원 증원 정책은 효율적 인력 활용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그저 일자리 창출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게 문제다.

자고로 공무원이 많은 나라에 희망이 없다는 이유는 생산적인 고용이 아니라는 데 있다. 부가가치를 창출해 납세하는 민간 고용은 생산적이나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공무원은 근본적으로 민간이 낸 세금을 쓰기 때문에 비생산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비생산적 직업인 공무원이 되겠다고 날밤을 세우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올 서울시 7·9급 공무원 공채시험 원서접수 마감 결과 평균 6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으며 국가직 9급 공채 시험의 경우 40.9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해가 갈수록 공무원 채용 시험 경쟁률이 내려가고 있는 일본과는 아주 대조적 현상이다.

우리처럼 한때 공무원이 ‘철밥통’으로 통했던 미국 역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재정이 악화되면서 공무원까지 정리해고나 임금삭감을 당하는 일이 벌어지자 젊은이들이 중간에 해고당할 위험 때문에 소방관, 경찰 등 일부 직군을 제외하고는 공무원에 크게 몰리지 않는다. 대신 제조업의 부활로 민간의 파워가 강해지고 있어서 공무원 대신 창의적인 일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더 많은 급여를 받는 직업을 선호한다.

10대 청소년들의 꿈이 빌 게이츠가 아니라 취업준비생 열 명 중 네 명이 ‘공시족’인 우리나라는 지금 글로벌 흐름과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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