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들어 국책 연구기관들이 전 정부 때와는 정반대의 연구결과를 발표한 사실이 10월 17일 밝혀져 충격적이다. 자유한국당 소속 정태옥 의원이 국책 연구기관들의 지난 10년간 연구보고서 200여 건을 분석한 결과, 문 정부 정책기조에 맞춰 결론이 뒤바뀐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노동연구원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연구보고서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감소를 가져오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부정적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이 노동연구소는 문 정부가 들어서자 “최저 임금인상이 상당한 불평등 축소 효과가 있다”며 긍정적으로 뒤집었다. 현 정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다. 또 에너지경제연구원은 2016년 원자력발전의 사회·경제적 고용효과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9만2000명의 고용 유발 효과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문 정부가 들어서자 작년 12월 보고서에선 원전의 고용효과는 낮다며 거꾸로 갔다. 이처럼 일부 국책 연구소들은 집권세력의 비위를 맞추고 아첨하기 위해 연구결과를 뒤집는다. 곡학아세(曲學阿世) 그것이다. 국책 연구기관들이 집권세력의 입맛대로 연구결과를 짜맞추려면 차라리 그런 연구기관은 없는 게 더 국가를 위해 낫다.

연구기관들의 추한 곡학아세를 접하며 미국 고위관리들의 직위를 건 직언(直言)들이 떠오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뉴욕타임스 9월 7일자에 자신을 ‘행정부 고위관리’라고 소개하면서 익명으로 트럼프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적시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회의할 때는 “설익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며 때때로 무모한 결정으로 치닫는데 후에 그의 결정은 철회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했다. 이 고위 관리는 행정부 내 반발세력을 ‘어른들’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철부지 어린애로 은유했다. 41년 전에도 존 싱글러브 주한 유엔군사령부 참모장은 지미 카터 대통령의 어린애 같은 주한미군 감축에 반대했다. 싱글러브 장군은 대통령의 미군 감축을 끝까지 반대했고 그로 인해 강제로 퇴역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고위관리들은 대통령에게 비위맞춰 주고 아첨하기 바쁘다. 김대중 대통령의 4억5000만 달러 불법 대북송금을 ‘불법’이라며 반대하고 나선 고위관리는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순실 국정농단’ 때도 고위관리들은 대통령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바른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지금 문 대통령도 어린애 같은 ‘탈원전’과 ‘소득주도 성장’ 정책으로 경제를 어렵게 몰아가는데도 고위관리들 중 누구도 어른답게 궤도 수정을 권유 못한다. 도리어 관련 국책 연구기관들은 연구결과를 왜곡해 문 대통령 비위 맞추기에 급급한다.

지난날 우리나라의 어떤 총리는 총리실 집기 배치를 청와대를 향해 재배치했다. “임을 향한 자세”로서 충성심의 표출이었다. 또 어떤 총리는 매일 대통령한테 문안전화를 했다. 아첨의 극치였다. 4성장군 출신인 송영무 국방장관은 “세계 경제규모 10위권인 한국”이 북한을 “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친북 코드에 맞추기 위한 견강부회였다. 장군직을 걸고 미군 감축을 정면 반대했던 싱글러브 장군과 비교하면 역겹다. 대통령에게 아첨하는 고위 관리들과 국책 연구기관들에게서 옳은 직언과 분석을 바랄 수는 없다. 나라는 망가져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의 고위관리들은 국가와 정의를 위해 직위 파면도 두려워하지 않고 바른말을 한다. 미국엔 정부 내에서 직언하는 호국세력이 건재한데 반해 우리 정부 내엔 ‘아첨 세력’만 득실댄다. 대한민국도 미국 같이 풍요롭고 건강한 자유민주 국가로 일어서기 위해선 ‘적폐 청산’보다 권력 주변의 ‘아첨 세력 청산’부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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