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장애)

해리(dissociation)란 분리되는 것을 말한다. 무의식적인 방어기제의 하나로 스트레스나 갈등 상황 또는 큰 충격이나 생명을 위협하는 트라우마를 겪었을 때 주로 보이는 정신 이상 징후다. 의식이나 기억, 정체성 등에서 급격하고 일시적인 변화가 일어나,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기능에서 일정 부분이 상실되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해리장애에는 해리성기억상실(dissociative amnesia), 해리성주체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이인증장애·비현실감장애(depersonalization/derealization disorder)가 포함된다.

해리성기억상실은 자신에 대한 개인정보를 기억하지 못하는데, 일반적인 건망증으로 설명하기에는 지나치게 광범위한 것이 특징적이다. 뇌의 질병이나 손상에 의한 상태와는 다르게 기억은 존재하지만 마음 속에 깊이 묻혀서 회상이 되지 않는 상태가 지속된다. 주위 환경에 의해 자극이 되면 기억이 떠오르게 될 수 있다. 갑작스러운 기억력의 상실과 동반된 해리장애 증상으로 인해 병원 응급실을 방문하는 경우가 흔히 발생한다. 기억상실은 국소적, 선택적, 전반적, 지속적, 체계화된 경우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기억상실 증상이 발생하는 동안에 신체형 증상이나 전환 증상을 보일 수 있고, 의식의 변화와 자신으로부터 분리되어 있거나 떨어져 있는 느낌의 이인증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허구적이고 실재적이지 않은 느낌의 비현실감 등이 동반될 수 있다. 우울증과 자살사고 역시 많은 예에서 동반되며, 성인기 혹은 소아기의 학대 혹은 트라우마가 많은 경우에서 발견된다. 치매나 섬망 그리고 의학적 상태로 인한 기억력 장애와 다른 점은 다른 인지 기능의 여러 영역에서의 문제 없이 단독으로 개인적인 정보에 관련된 기억 상실이 관찰되는 것이다.

해리성주체장애는 이전에 다중 성격 장애라고 불렸던 것으로 두 개 이상의 별개인 성격이 존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성격 간의 이동이 때로는 매우 급작스럽고 드라마틱하게 이루어진다. 환자들은 각각의 성격에서 경험한 것들을 일반적으로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성격의 존재를 완벽하게 인지하기도 하고 때로는 본인이 아닌 친구 같은 남으로 경험하기도 한다. 몇몇 문화에서는 빙의의 경험으로 보기도 한다. 여러 명 중 어떤 사람이 혼자 나타나거나 또는 여럿이 자기 자신에 관해 언급하는 형태를 보인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기분장애 진단기준을 만족하며, 조현병, 경계성 성격장애 혹은 꾀병으로 잘못 진단될 수 있기 때문에 주의 깊고 자세한 정신 상태 평가가 진단에 있어 필수적이다.

이인증(depersonalization)이란 자신으로부터 분리되어 있거나 떨어져 있는 느낌이 지속적으로 또는 자주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흔히 스스로를 감정이 없는 로봇이나 기계와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하고, 자신으로부터 떨어져서 마치 자신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보고하기도 한다. 때때로 환자는 자신이 분리되어 있는 느낌이 들어 “내가 없는 것 같다”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생각의 문제로서 “내 생각이 내 머리 속에 있는 것 같지 않다”라고도 하며, “손이나 발이 신체의 다른 부분과 떨어져 있는 느낌”처럼 신체감각의 문제로 표현되기도 한다.

비현실감(derealization)이란 자신의 환경으로부터 떨어져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허구적이고 실재적이지 않은 느낌을 말한다. 마치 자신이 현실이 아닌 꿈을 꾸고 있거나 현실이 명백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보고하기도 하고, 자신을 둘러싼 외부가 생명이 없는 인공적이고 무색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물이 커져 보이거나 작아 보이며, 매우 정밀하게 보이는 등의 주관적인 시각적 왜곡이나 소리가 작게 들리거나 크게 들리는 등의 청각적 왜곡 등이 동반되기도 한다.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이인증과 비현실감은 정상인과 임상환자군 모두에서 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인증·비현실감 장애의 경우 정확한 유병률이 알려져 있지 않고, 다소 드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인증과 비현실감은 뇌전증, 편두통 환자에서 흔히 나타날 수 있고, 마리화나, LSD 그리고 항콜린성 약제 등에 의해서도 유발될 수 있다. 또한 경도 또는 중등도의 두부 손상에서도 유발될 수 있다. 명상 중의 특정한 상태 또는 특정한 종교나 문화권에서 수행의 일부 중에도 이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이러한 경우 대개 병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또한 최면 상태, 자극 박탈 경험 등에 의해서도 나타날 수 있다.

이인증 장애·비현실감 장애의 증상은 급성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서서히 진행되기도 하는데 대개 불안이 동반된다. 자신의 경험에 대해 당황해 하며, 때로는 이러한 증상에 집착하기도 한다. 증상의 기간은 수시간에서 수일간 지속되기도 하고, 때로는 수주, 수개월, 수년 이상 지속되기도 한다. 이 장애를 진단하기 위해서는 이인증 또는 비현실감 증상이 지속적이거나 자주 재발해야 하고, 이러한 경험으로 인해 사회적, 직업적 기능의 손상이 동반되어야 한다.

해리증상을 보일 때, 평소와 달라진 모습 때문에 혼란스러워 하기도 하고 당황해 하기도 한다. 해리증상은 해리장애 외에도 다른 약물이나 의학적 상태, 기질성 뇌질환이나 뇌의 신경학적 질환 및 조현병이나 우울증, 공황장애 같은 정신적인 질환에서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감별진단에 유의하면서 평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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