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칼날 정조준 잠 못 이루는 재계

재계의 ‘9월 괴담’이 현실화되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직후 대대적인 공기업 비리 수사에 이어 이달 들어 주요 기업 비자금 수사까지 검찰의 칼바람이 매섭다. 여기에 국세청, 감사원까지 가세해 협공을 펼치고 있다. 현재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기업은 수사가 진행 중인 공기업을 비롯해 모두 30여 곳에 육박하고 있다. 일반기업으론 동양그룹, 강원랜드, 프라임그룹, 롯데물산, 태광실업 등에 대해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고 있다. 특히 검찰은 LBO(Leveraged Buyout 차입인수)방식 M&A(인수·합병)를 한 동양그룹 등에 업무상 배임죄를 들이대며 압박하고 있다. LBO방식 M&A를 통해 몸집을 키운 금호아시아나, 유진, 이랜드, 두산, STX, C& 등은 검찰 칼날이 어디로 향하는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M&A의 ‘달콤한 덫’에 걸린 승자의 저주가 시작됐다.

금호아시아나, 두산 등 대형 M&A를 통해 비약적으로 성장한 기업들이 인수 합병 과정에서 무리한 차입이 결국 짐으로 작용되면서‘유동성 위기’를 맞고 있다. 또한 검찰이 LBO(차입인수)방식 M&A를 성사시킨 일부 기업 총수에 대해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고 있다.


프라임그룹 차명계좌 분석

검찰의 사정(司正)수사가 전 정권을 겨냥한 ‘코드수사’성향을 띄면서, M&A과정에서 전 정권과의 특혜설이 나돌았던 기업들은 검찰 수사에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다.

요즘 검찰은 바쁘게 움직인다. 여기저기 압수수색에 소환, 출국금지, 체포 소식이 들린다.

검찰은 국세청, 감사원과 삼각편대를 형성해 공기업 수사에서부터 전 정권에 특혜 의혹을 받았던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 전대월· 최규선 씨 비자금, 프라임그룹 등을 비롯해 동양그룹 M&A과정 배임혐의 등을 수사하고 있다.

이들 기업뿐만 아니라 LBO 방법 M&A로 몸집을 키워온 금호아시아나그룹, 하이트맥주, 유진그룹, C&그룹, CJ그룹, 이랜드, 호남석유 등도 검찰 수사가 은쪽으로 불똥이 튈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 대검 중수부장실 캐비닛에는 비(秘)파일이 항상 300~500건 정도 쌓여있다. 이 얘기는 서초동 검찰청 주변에 공공연하게 떠도는 소문이다.

서울지검의 고위 간부를 지낸 한 인사는 “공직기강이나 전 정권에 사정의 필요성이 제기되면 당장이라도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면서 “파일의 정확도는 첩보 수준을 넘는다. 당장이라도 구속 수사를 할 수 있을 만큼 자료가 철저히 준비되어 있다. 파일을 토대로 수사를 언제, 어디서 누가하는 것이 좋을지를 논의한 뒤 칼을 빼든다”고 말했다.

사정수사는 대검중수부나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서 맡고 있다. 범죄 첩보 생산과 수사 부서간 긴밀한 관계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사정의 주축인 서울중앙지검장은 매주 화요일 검찰총장을 찾아가 수사의 가닥을 잡는다. 수사필요성이 제기되면 검사장-3차장-특수1,2,3부장을 거쳐 수사 검사가 결정된다는 것.

재계의 한 관계자는 “검찰의 사정수사가 공기업 비리 수사에서 기업으로 번지고 있다. 수사가 어디로 향할지 종잡을 수 없어 불안하다”면서 “전 정부에서 특혜 의혹을 받아 몸집을 키운 기업에 비리수사로 번질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 검찰 수사에 종착역이 어디인가에 재계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전 정권의 특혜설이 나돌았던 프라임그룹이 검찰의 첫 타깃이 됐다.

검찰이 프라임그룹의 ‘비자금 조성’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노승권 부장검사)는 2일 서울 광진구 프라임그룹 본사를 압수수색한 데 이어 백종헌 회장 등 관련자 5명을 출국금지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프라임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비자금을 조성한 단서가 포착이 된 것. 조성한 비자금이 M&A 로비를 위해 전임 정권 실세들에게 건네졌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확인하고 있다.

또한 검찰은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회계장부와 전산자료 등을 통해 계열사 간 의심스러운 자금 흐름이 있었는지 조사하고 있다. 국세청은 지난 해 프라임그룹에 대해 세무조사를 벌여 400억원을 추징한바 있다. 검찰은 당시 세무조사를 했던 국세청 관계부서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아 정밀 조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남 광주 출신인 백 회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실세들과 친분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업계에서는 프라임그룹의 고속성장에 이 같은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감찰의 수사칼날이 프라임을 비롯한 전 정부에 특혜를 받은 기업을 겨냥하자 재계 일각에선 ‘코드수사’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듯, 검찰은 전 정부나 특혜의혹과 전혀 관계가 없는 동양그룹을 타킷으로 삼아 의혹들을 불식시키고 있다.


현재현 회장
M&A과정 불법행위 의혹

검찰은 동양그룹 지주회사인 동양메이저의 한일합섬 인수 과정에서 배임 혐의로 동양메이저 추연우(49) 부사장이 지난달 구속된 데 이어 지난 3일 현재현(59) 동양그룹 회장까지 소환조사를 했다.

검찰은 3일 현 회장을 소환,14시간여 동안 강도 높은 조사를 벌여 현 회장의 업무상 배임 의혹 부분 등에 대한 혐의 일부를 밝혀낸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된 현 회장은 조사 과정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바뀌었으며 피의자 신문 조서까지 작성했다는 것.

검찰 관계자는 “추씨와 현 회장이 함께 한일합섬 M&A 과정에서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일부 확인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벌였다.”면서 “동양메이저가 지난해 피인수기업(한일합섬)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 한일합섬을 인수한 것은 피인수 기업에 위험을 떠넘기는 LBO방식”이라며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시켰다.

이에 대해 동양그룹 관계자는 “한일합섬 인수는 LBO방식이 아니다. 검찰의 오해이다”고 해명,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대법원은 지난 2006년 11월, LBO방식으로 건설회사 신한을 인수한 김모씨에게 업무상 배임죄 판결을 내린바 있다. LBO란 기업 인수자금을 마련할 때 피인수 기업의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차입금의 직접적인 상환 부담이 피인수 기업에 넘어가게 된다. 인수자가 피인수 회사에 아무런 반대급부를 주지 않고 피인수 회사의 재산을 담보로 제공하면, 피인수 회사에 손해를 끼쳤기 때문에 배임죄가 성립된다는 게 법조계 판단이다.

법조계에선 담보제공에 관해 피인수 회사의 주주총회나 이사회 승인이 있고, 인수자 자신 뿐 아니라 피인수 회사에 동시 이익이 있더라도 배임이 인정된다고 보고 있다.


LBO방식의 M&A기업
업무상 배임죄 적용.

재계 일각에선 LBO방식 M&A가 업무상 배임죄가 적용될 경우 국내 여러 기업들이 한꺼번에 수사선상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흘러나오고 있다.

동양그룹을 비롯해 금호아시아나그룹(대한통운 인수), 하이트맥주(진로인수), 유진그룹(하이마트 인수), C&그룹(우방인수), CJ그룹(신동방인수), 이랜드(까르푸 인수), 호남석유(KP캐미칼), 두산(한국중공업), 2001아울렛(뉴코아 인수), 세아홀딩스(기아특수강), STX(싸용중공업), 한화(대한생명) 등이 LBO 파이낸싱을 통해 M&A를 성공시킨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들 기업들은 한결같이 검찰수사가 자신들의 회사로까지 번질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검찰에 이미 내사중인 기업이 있는 걸로 알고있다. 일부는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포착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계는 “LBO는 외국에선 일반적인 M&A방식”이라며 “게다가 검찰의 잣대도 모호하다.”고 반발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M&A를 위해 선진기법 도입은 긍정적이다. 자기 자본보다 훨씬 많은 차입을 통해 M&A가 성사될 경우 모럴해저드를 조장할 소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LBO는 기업이 이익을 내서 순차적으로 기간을 두고 차입금을 갚아나가는 것이다. 일부 기업이 LBO파이낸싱을 하면서 풋백옵션(나중에 특정가격에 주식을 되팔 수 있는 권리)을 제공하는 것은 모럴해저드나 다름없다. 이는 주주의 이익을 반하는 배임혐의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실제 일부 기업에선 LBO파이낸싱 방식의 무리한 차입으로 인해 유동설 위기를 겪고 있다.

금호는 대우건설 인수할 때 과도한 풋백옵션을 내걸었다. 대우건설 인수전이 벌어졌던 지난 2006년 7월 주가는 1만8000원대를 오르내렸으나, 부족한 인수자금을 마련하고자 주당 3만4000원에 풋백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투자자에게 준 것이다. 두산도 2007년 7월 미국의 중장비 회사 밥캣을 인수하면서, 인수를 위해 차입한 돈이 밥캣이 올해 에비타(EVIDTA, 세금·이자·감가상각 차감 전 이익)의 7배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과도한 약정을 했다.

하이마트를 인수한 유진그룹도 인수를 위한 종자돈 7천억원을 우리은행(3천억원)과 다른 재무적 투자자들(4천억원)로부터 마련했다. 그래도 인수에 필요한 1조9500억에 1조2500억원이 부족해 농협에서 다시 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주가가 하락하면서 과다한 차입이 문제가 되어 유동성 위기설에 시달리고 있다.

익명의 M&A전문가는 “주식시장에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본 전제를 깔고 있는 이러한 인수합병은 유동성 위기를 불러 올 수밖에 없다.”면서 “이번 검찰 수사를 통해 과도한 차입을 전재로 한 LBO방식 M&A가 건전한 방식으로 M&A 시장이 바꿔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MB정권 초기 사정수사를 못했던 검찰이 공기업에 이어 일반 기업에 까지 수사를 확대하면서 재계에선 어느 기업이 프라임, 동양그룹에 이은 다음 타킷이 될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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