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회장 ‘눈물의 비밀’


프로야구단은 적자다. 2005년 프로야구 8개 구단이 지출한 총액은 1772억. 각 구단 평균 221억5000만원을 야구단 운영을 위해 지불했다.

관중은 줄었는데 선수들의 몸값은 치솟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프로야구가 절체절명 위기에 빠져있다. 현대 유니콘스는 구단주를 찾지 못해 해체 위기에 놓였다. 매년 수 백 억원씩 적자를 감내하며 구단을 인수할 기업을 찾지 못했다. 우리나라 프로야구사에서 커다란 중심을 차지했던 야구단의 해체위기가 임박하다. 이에 야구팬들의 촛불시위, 선수들의 기금 10억 출자, 선수협과 감독들의 호소문 발표 등 야구를 사랑하는 팬들과 관계자들은 현대 살리기에 분주하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현대그룹 계열사들은 아무 말이 없다. “돈이 없다”는 것이다.

사회공헌을 위해 8400억원의 기금을 내놓은 정몽구회장도, 40억원이 부담스럽다는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도, 지분 76.2%를 가지고 있으면서 2000년 이 후 한 푼의 지원금을 내지 않은 하이닉스 반도체(구 현대전자)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다른 기업들마저 인수를 꺼려하고 있는 시점에서 프로야구 24년 역사동안 한국시리즈 4번 우승의 명문구단인 현대 유니콘스 사태를 바라보고 있는 프로야구를 사랑하는 국민들의 가슴만 애타고 있다. 현대가 사회공헌 무엇이 문제일까?

“정주영, 정몽헌 회장만 살아있어도 현대 유니콘스는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1996년 프로야구단을 출범한 현대야구단 사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중론이다.


야구단 창단 공 들인 정주영 회장

고 정주영 회장은 프로야구단을 창단하기 위해 19년 동안 공을 들였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현대 야구단의 승전보를 전하면 아이처럼 좋아했다고 전한다. 골프장에서 친 공이 페어웨이를 벗어나 러프에 빠졌지만 싱글벙글할 정도로 야구단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또 정 회장이 후계자로 선택한 고 정몽헌 회장도 야구단과 관계된 일이면 무조건 OK사인을 보낼 정도로 각별했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야구단 창단은 올림픽을 이끌어낸 집념처럼 강인하고 집요했다.

현대 야구단의 역사는 실업야구 시절이던 1977년부터 시작된다. 정주영 회장이 한일은행과 제일은행 팀을 합쳐서 인수하려다 제일은행 측 노조의 반대로 무산 됐다.

두 번째는 1981년 프로야구 출범 때 인천을 연고지로 한 기업체로 선정됐으나 서울 올림픽 유치 때문에 무산됐다. 이어 현대는 프로야구 가담을 위해 대한야구협회 행정을 맡기로 하고 이현태 현대석유화학 회장이 1994년 3월에 대한야구협회 회장에 취임한 다음 11월에 현대 피닉스 실업야구팀을 창단했다. 그리고 다음해인 1995년 8월 인천의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해 현대 유니콘스를 만들었다.

인수 대금은 470억, 당시 예상가 200억 원을 뛰어넘은 파격적인 금액이었다. 왕회장의 야구 사랑을 보여주는 단적이 예다.

그러나 현대 야구단은 2001년 정주영 회장의 사망과 왕자의 난, 2003년 야구단을 총괄했던 정몽헌 그룹 회장의 투신자살 등이 잇따라 일어나자 위기가 찾아온다.


정몽헌 회장은 야구단 행사에 열정

현대 야구단은 2003년 인천 연고를 신생팀 SK에 54억 원에 넘겨 구단 운영비로 사용하고 연고지를 서울로 바꿨으나 LG와 두산에 주어야 할 27억 원을 이행 못해 신인 1차 드래프트에서 제외되는 아픔을 겪으며 힘든 운영을 해왔다. 2005년까지 구단은 매년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80억 원, 현정은 현대 회장과 정몽윤 현대화재해상보험 회장이 각 40억원씩 각출, 구단운영비를 지원해왔다. 그러나 현 회장이 구단의 어려움을 이유로 야구단의 지원 중단을 밝힌다.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은 2005년 5월 KBO 현정은 회장과 만나 직접 돌파구를 찾으려 했으나 오히려 그 자리에서 오히려 현 회장에게 현대야구단 매각요청을 받는다. 그리고 현대그룹은 2006 시즌을 마치고 끝내 더 이상 구단을 운영하기 힘들다는 의사를 KBO에 표명하고 경영권 분규로 인해 지원을 중단했다.


구단운영 적자 40억의 의미

2006년 현대 야구단의 연간 운영비는 현대기아자동차그룹에서 80억원, 현대그룹에서 40억원, 현대해상화재보험에서 40억원(광고비 명목)이었다. 나머지는 입장수입과 범 현대가(家)의 십시일반으로 채웠다. 그러나 현 회장의 지원포기로 현대기아자동차와 현대해상화재보험도 한 발짝 물러났다. 이에 2006년까지 정몽구, 정몽윤 회장의 지원금만으로 꾸려가다 2007년부터는 현대기아차의 지원마저 끊기게 된다. 이때부터 현대 야구단은 명문구단에서 지청꾸러기로 전락하고 마는 신세가 된다. 왕회장의 평생숙원 사업이었던 야구단이 현대그룹 각사의 이해관계와 얇은 주판알 튕기기로 싼 도매급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때문에 몸값이 급 하락한 현대 야구단 주가는 2005년 심정수가 현대에서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4년간 받은 60억원과 같아졌다.

왕회장이 470억원을 들인 야구단이 10여년이 지난 현재 60억원에 불과한 금액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야구단의 헐값 매각과 관련해 야구관계자들과 시민들은 KBO보다는 현정은 회장과 현대 계열사에 원망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대체 올림픽, 월드컵, 엑스포 등 굵직한 세계적인 스포츠 유치에만 집중하고 국내 스포츠에는 인색해도 너무나 인색한 그룹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주판알 튕기기에 노련해 얄미울 정도라는 것이다.

또한 아버지의 숙원사업을 적자라는 이유만으로 모른척한다는 것은 인간적인 도리에도 어긋난다는 것이다. 또한 현대그룹의 현회장도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아무리 회사경영이 힘들다 하더라도 야구단에 애착이 많았던 남편과 시아버지와 뜻을 받들어 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현대 관계자는 “현대 그룹이 야구단의 운영을 돕겠다는 말은 이미 지난 일이다” 며 “담당자가 없으니 전화 주겠다.”고 전화를 회피했다.

현대 그룹의 맏형인 정몽구 회장도 이 같은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비록 현대기아자동차 야구단을 운영하고 있지만 8400억원을 사회공헌으로 내놓을 정도로 여유가 있다면 대승적 차원과 맏형의 도리와 분열된 현대가의 화합을 위해서라도 현대 야구단의 일부 운영비를 맡아 분담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KBO 관계자는 “물심양면으로 지난 2년간 현대가에게 설득하고자 많은 공을 들였으나 허사였다” 며 “어떤 회장의 경우 야구단의 지원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이지만 몇몇 회장은 이에 대해 확고하게 부정적인 의지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어 “결자해지의 차원에서라도 수많은 계열사를 운영하고 있는 현대가 야구단을 그대로 운영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현대야구단의 한 팬은 “현대야구단을 보면 형제간의 깊은 골을 알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프로야구는 26년간 운영되어 왔다. 그동안 국민들은 야구로 웃고 울고 즐거워했다.

그만큼 국민적인 사랑을 한 몸에 받아왔다. 당시 각 기업들은 야구단 창단이 곧 기업의 상징처럼 대유행이었다. 하지만 지금 야구의 인기가 시들해졌다. 관중이 줄었으며, 선수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올라 적자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현대를 제외하고 야구단을 운영하는 다른 7개 기업은 적자를 감당하며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운영하고 있다. 바로 기업이 국민들에게 받은 이익을 돌려주는 윤리의식에서 시작한 것이다.

스포츠에서 기업들이 노리는 경제적인 이득은 수많은 관중을 몰고 다니는 스포츠 스타나 팀이다.

월드 스타인 카레이서 독일의 슈마허는 일 년에 5,900만 달러(약 710억 원),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5,300만 달러(약 640억 원)를 벌어들였다. 세계적인 축구 명문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지난 2006년 AIG와 스폰서 4년 계약을 맺으면서 5650만 파운드 (1056억)를 받아냈다.


비인기종목 지원하는 그룹 본받아야

그만큼 스포츠 마케팅은 기업입장에서 매우 매력적인 홍보수단이다. 그러나 이건 소위 장사가 될 때 이야기다. 흔히 비인기종목의 선수나 구단은 매년 적자운영에 허덕이며 힘겹게 스포츠 명맥을 이어간다. 국내에서도 승마, 핸드볼, 역도, 배드민턴 등 올림픽에서만 반짝하고 비인기 종목인 스포츠가 있다. 그러나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측면에서 비인기종목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기업들도 있다. 현대야구단을 포기한 현대그룹에 대한 원망이 가시질 않고 있는 이유다.

야구단은 일개 기업의 것이 아니다. 야구단은 지역이 있고, 그곳에 사는 시민이 있고 또 그들의 자존심이 걸려있다. 단순한 100억이나 200억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정신이 숨겨져 있다. 돈의 논리를 뛰어넘는 기업정신으로 무장한 현대의 옛날이 그립다는 사람들이 많다.


#현대야구단 기막힌 매각사
주인 네 번 바뀌며 좌충우돌

삼미, 청보, 태평양, 현대야구단. 26년 동안 4번이나 주인이 바뀌었고 다시 5번째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모두 인천을 연고로 한 구단이다.

현대의 전신인 삼미는 1982년 프로야구 원년에 인천을 연고로 제6구단으로 참가했다. 하지만 철강·해운업이 주업종인 삼미는 자금난에 시달려 85년 5월 청보 핀토스에 70억원을 받고 매각했다.

85년 후기리그부터 페넌트레이스에 참가한 청보도 단명에 그쳤다.

당시 50대 기업에도 들지 못했던 청보는 의욕적으로 프로야구에 뛰어들었지만 역시 자금난에 시달리며 87년 10월 태평양에 넘어갔다. 공식 매각 대금은 50억원이었다.

태평양은 5년 거치 5년 분할 상환의 조건으로 야구계에 발을 디뎠다. 94년 막강 투수력을 앞세워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기도 했지만 95년 8월 태평양은 현대에 470억원을 받고 경영권을 넘겼다. 프로야구 역사상 역대 최고의 매각 금액이었다. 95년 프로야구단에 뛰어든 현대는 공격적인 경영으로 한국 프로 야구사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지난해까지 11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4차례나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98년 첫 우승을 시작으로 2000·2003·2004년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그러나 야구계의 ‘공룡’이었던 현대도 2001년 모기업
의 부도로 결국 야구단을 매각하게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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