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디스 하향 경고, 엄포인가? 충고인가?

미국의 신용평가회 사인 무디스가 5년여만에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3에서 A2로 올렸다. 사진은 지난 2006년 무디스의 크리스토퍼 마호니 신용평가정책총괄책임자(오른쪽) 등 고위관계자들이 재경부를 방문하 모습.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과연 떨어뜨릴 수 있을까. 재미있으면서 관심을 끄는 질문이다. 미국의 경제여건이 어렵다는 것은 알지만 설마 미국의 신용등급을 내려야 한다고 말하는 기관이나 사람은 그의 없다. 아마 등급조정에 대한 생각을 아예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낮춰 조정하겠다고 했다. 무디스는 지난 11일 미국이 치솟는 의료보험과 사회보장비용을 줄이지 않을 경우 10년 안에 최고 신용등급을 낮추겠다고 밝혔다.

파이낸셜 타임스 인터넷판은 무디스의 미국시장 분석 책임자인 스티븐 헤스의 말을 인용, 의료보험과 사회보장이 미국의 신용등급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용등급을 낮출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이날 발언은 무디스란 회사가 공식적으로 내놓은 것은 아니다. 미국시장 책임자인 스티븐 헤스가 한 말이다. 그렇지만 이 말을 개인적 의견으로 보기보다 무디스란 회사의 의견으로 봐야 한다.

미국의 신용등급은 AAA. 1917년 신용등급이 처음 도입된 이래 미국은 지금까지 최고등급 AAA를 유지하고 있다. 90년 간 최고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무디스의 미국 신용등급 하향 경고는 이번이 두 번째다. 1990년 미 의회가 대통령이 제출한 예산안의 통과를 거부했을 때 일부 미국 채권에 대해 신용등급을 낮출 수 있다고 경고 했다.

실제로 무디스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낮출 수 있을지는 의문시 된다. 하지만 만에 하나 신용등급을 낮춘다면 미국에겐 큰 문제다.

무디스의 스티븐 헤스씨도 신용등급이 내려가면 미국이 심각한 문제에 부딪힐 것이라고 말했다.

무디스의 이날 경고는 1990년 때와는 성격이 다르다. 1990년엔 예산통과가 늦어진데 대한 경고성 메시지였다고 할 수 있다. 예산을 빨리 통과시켜 국정이 제대로 돌아가게 하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예산안만 통과시키면 문제는 해결됐다.


1990년에도 신용등급 하향 경고

그러나 이번은 사정이 다르다. 미국의 가장 골칫거리인 의료보험과 사회보장문제를 신용등급과 연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보험과 사회보장은 미국 국민들과 정부에 가장 큰 부담이다. 의료보험과 사회보장은 엄청난 재정지출을 요하는 것으로 미국 경기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경기가 좋고, 경제만 잘 돌아간다면 의료보험과 사회보장이 사회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다.

미국 상황을 보자. 우선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잇따라 금리를 내리고 있지만 상황은 갈수록 더 나빠지고 있다. 금리를 내려도 증권시장에서 며칠 약발을 보이다 효과가 바로 소멸되고 있다.

미국 달러화 가치의 하락도 미국 경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달러의 위력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달러 가치 하락은 또 국제유가를 올리는데 한 몫하고 있다.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파문과 부진한 주택경기, 세계 최대 은행인 씨티뱅크, 최대의 투자회사인 골드만삭스와 메리린치의 부실 등도 미국 경제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미국은 소비도 부진하다. 그래서 경기침체의 우려가 늘 있다.


신용등급 상향 충고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무디스가 의료보험과 사회보장문제를 들어 신용등급 하락을 경고하고 나온 것은 간단히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반적인 경제여건이 나쁜 상태에서 나온 경고여서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무디스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낮춘다면 경제여건은 더 나빠지지 않을 수 없다. 달러가치도 떨어지고, 서브프라임 파문은 더 커질 것이다.

소비부진과 주택경기 부진도 개선되기는 커녕 더 악화될 것이다. 의료보험과 사회보장문제도 악화될 게 분명하다.

한 전문가는 무디스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끌어내리는 것은 불난 집에 기름 뿌리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미국이 지금도 어려운데 신용등급까지 떨어뜨려 어렵게 만들 수는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미국의 신용등급이 내려가면 세계 최고 부국의 이미지에도 타격을 줄 것이다.

설령 미국의 경제여건이 지금보다 악화되고 의료보험과 사회보장비용이 더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신용등급을 낮추긴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무디스가 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이지만 국익을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디스가 AAA 가운데 A를 하나 떼어내겠다고 한 것은 ‘좋은 의미의 사전 충고’로 보면 좋을 것 같다. 경고보다 충고가 더 어울린다. 아마 무디스의 속셈은 의료보험과 사회보장 적자를 빨리 줄여야한다는 ‘선의의 충고’일 것이다.

신용등급을 낮춘다는 것은 해당 국가에게 엄청난 경제적 파장을 던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을 생각하면 신용등급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등급에 따라 국제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릴 수도 있고, 빌리지 못할 수도 있다.

신용등급을 한 단계 내릴 때마다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환율이 치솟는 일이 벌어진 것을 기억할 것이다. 자금조달이 어려운 기업은 경영난으로 문을 닫고, 가계는 소득감소로 고통을 받은 기억도 생생할 것이다. 국가신용도가 경제와 국민들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다.

무디스와 S&P 같은 신용평가기관이 국가신용을 평가한다고 하면 정부에서 나서 이들을 정성껏 맞아주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이들 신용평가기관이 기업을 평가할 때도 마찬가지다. 신용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회사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평가결과에 온통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신용평가에 대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디스나 S&P는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다. 이들이 국가와 기업신용을 평가할 때 과연 얼마나 공정하게, 정확하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신용평가기관의 횡포란 말로 평가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기도 한다. 신용평가 기관을 신용 평가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신용평가기관을 평가하는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실현될 가능성도 많다. 여론이 그 쪽으로 가면 신용평가기관의 콧대도 지금보다는 훨씬 낮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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