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ㆍ상의 ‘내’가 재계 맏형이오

서울 여의도동에 있는 전경련 회관(좌) · 서울 중구 남대문 옆에 있는 대한상의 회관

경제단체 맞수인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와 대한상공회의소(이하 상의)는 오랜 시간 저마다 ‘재계의 맏형’ 을 주장하며 신경전을 벌여 왔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친기업 분위기 조성, 경제 살리기 동반자로 기업에 힘 실어주기에 나서자 두 단체의 움직임이 부쩍 빨라지고 있다.

최근의 움직임은 반목보다 새 정부의 눈에 들어 단체위상을 강화하는 쪽으로 바뀐 듯한 모습이다.

앞으로도 두 단체 간엔 ‘재계 대표 단체’를 내세운 ‘기 싸움’이 이어질 전망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또 양쪽 단체 회장의 인맥 대결도 볼만 하다.

재계 관계자들은 “두 단체가 ‘실용정부’ 시대를 맞아 대립하기 보다는 선의의 경쟁을 통해 진정한 경제단체 본연의 자세로 기업발전 촉매역할에 힘써야할 것”이라고 촉구하고 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로 이어진 지난 10년간 ‘무용론’ ‘통합론’ ‘폐지론’까지 나오며 전경련과 상의 위상은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위상 축소로 두 단
체는 때론 존립을 위한 명제로 날카로운 대립을 보이기도 했다.

두 단체가 중복해서 거느린 대기업 회원들이 많고 업무 역시 뚜렷한 구분 없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 차원의 조정이 필요하다는 논란도 끊이지 않아왔다.

‘실용정부’시대를 맞아 두 단체가 상생을 통해 진정한 경제단체로서 제 역할을 해나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MB당선, 우선 순위 경제단체가 어디냐

전경련과 상의가 ‘경제 대통령’을 표방하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으로 기세가 한껏 올라 있다.

대통령 선거 직후 전경련과 상의는 저마다 ‘이 당선인이 먼저 방문할 것’이라며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새 대통령이 우선방문 순위로 둔 경제단체가 어디냐는 것에 대한 이른바 ‘기 싸움’이었다.

대선이 끝난 뒤 상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아우르고 10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상의가 재계 대표성이 있는 만큼 당선자와 가장 먼저 회동할 것”이란 논리를 내세웠다. 또 이 당선자가 후보시절 전경련 대신 상의초청에 응한 사실도 강조했다. 세계적으로 재계 대표단체는 일본과 우리나라 말고는 상의가
맡고 있다는 논리도 내비쳤다.

전경련도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대규모 투자는 대기업이 맡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들어 이 당선자가 전경련과의 만남에 우선순위를 둘 것”으로 자신했다.

이 당선인은 대통령 후보 땐 상의초청에 응했지만 전경련은 찾지 않았다. 그러나 당선 뒤엔 전경련을 먼저 방문했다.

재계에 따르면 이 당선인이 후보시절 전경련을 찾지 않은 이유는 조석래 전경련 회장과 사돈 관계여서 찾기가 껄끄럽기 때문이었다는 후문이다.

‘이 당선자 먼저 모시기’ 이후 두 단체는 재계 대표단체 역할을 놓고 물밑경쟁을 보이고 있다.

전경련은 이달 중순 주한외국기업 단체들과 이 당선자와 초청간담회를 가졌다. 조석래 전경련 회장은 다음 달 한ㆍ미 재계회의에 참석, 양국 간 경제협력 강화를 강조할 계획이다.

상의도 이에 질세라 최근 경제계 정책제언 발표를 통해 공약실천방향을 제시했고 전국 상의 회장단 400여명과 이 당선인을 초청, 신년인사회를 여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재계 안팎에선 두 단체의 이 같은 움직임을 두고 ‘잘 보이려는 의도가 지나쳐 아부형’에 가깝다는 핀잔도 나오고 있다.

최고 권력자와 가깝다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보다 단체 본래의 기능과 역할에 충실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견해다.


움츠려 왔던 두 단체

1961년 ‘군사정권’의 공업화 추진정책에 호응하기 위해 출범한 전경련은 대기업들의 구심점으로 재계 맏형 노릇을 해왔다. 그러다 전경련 위상에 금이 간 것은 외환위기 이후다. 그 때 전경련 사령탑이었던 김우중 회장은 대우그룹사태로 불명예 퇴진했다. ‘환란 주범=재벌’이란 따가운 눈총 속에 정부가
대기업을 개혁대상으로 삼은 정책을 펴온 뒤 전경련과 대기업들은 바짝 엎드려 있어야 했다.

삼성, 현대차, SK, LG 등 재계 ‘빅 4’ 회장들은 회장단 참석을 등한시했다. 자연히 가시방석과도 같은 전경련 회장직 맡길 서로 고사했다.

전경련이 침체된 사이 상의로 재계 맏형 역할이 옮겨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들이 나왔다. 상의 중심의 전경련 통합론까지 나왔다. 위기를 느낀 전경련은 한때 상의 폐지론을 들먹이며 맞장을 떴다.

1884년 설립 후 65개 지방상의와 3만5000여 회원사를 거느린 상의 역시 최근 2~3년간 부쩍 움츠려들 수밖에 없었다. 2005년 7월 터진 ‘두산그룹’ 형제의 난으로 박용성 전 상의 회장이 중도하차하면서 믿음에 금이 갔다.

지난해부터 회원가입이 강제조항에서 임의조항으로 바뀜에 따라 회원사들의 탈퇴로 존립위협 상태로까지 빠졌다.

재정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상의가 선택한 카드는 상의회관 리모델링을 통한 임대료수입으로 살길을 찾았다.


수익성 영역 침범으로 대립

전경련과 상의가 벌여온 ‘대표단체’ 논쟁은 ‘밥그릇 싸움’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게 재계의 후문이다.

전경련과 상의의 태생은 달랐다. 전경련은 대기업, 상의는 상·공업으로 각자 업무와 역할이 나눠져 왔다.

지구촌시대를 맞아 기업들의 사업이 다양해지고 경제단체들이 수익성을 좇으면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자 두 단체는 대립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전경련은 대기업과 선진국을 중심으로 경제협력을 꾀하고, 대한상의는 중소기업과 개발도상국 위주의 경제협력에 힘쓰기로 암묵적인 합의가 이뤄
져 왔다. 그러나 이 영역이 깨진지 오래다.

전경련은 2003년 북아프리카, 루마니아 등에 사절단을 파견하면서 중소기업들도 대거 포함시켰다. 또 상의가 중국에 사무소를 설치하자 그곳에 실무진을 보내 현지망 가동 준비에 들어가기도 했다.

두 단체에 회원으로 가입된 업체 관계자는 “경제단체들이 비슷한 사업을 하고 회원사들은 늘 행사참여를 요청하는 공문에 혼란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경제단체들이 대외활동 홍보와 수익성만 좇고 있다. 무엇이 회원사와 기업들에게 이익이 되는지는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새 정부가 경제단체들에 대한 업무 교통정리가 필요할 때”라고 강조했다.

전경련과 상의에겐 ‘이명박 대통령 시대’가 호기임엔 틀림없다는 관측이 대세다.

과거처럼 재계 대표단체가 누구냐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구태를 보이기보다 단체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해야 한다는 지적에 두 단체 사람들은 귀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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