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게 진 빚 갚으려” 세계경영 재시동


24조원 추징금에 기반 없어 재기불능 시각도

지난해 12월 31일 사면 복권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72)의 행보에 눈길이 쏠린다. 김 전 회장은 설 연휴를 보내고 미국, 중국, 베트남 등 해외를 돌며 사업 감각을 되찾을 것으로 알려져 추측으로만 나돌던 ‘활동 재개설’이 사실화 될 전망이다. 그는 또 새 정부의 새만금개발사업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사업 참여여부도 관심사다. 지난해 말 사면복권 돼 공식 활동에 법적 제한은 없다. 하지만 반대여론이 만만찮아 사업 참여는 쉽잖을 것으로 점쳐진다. 김 전 회장의 이런 움직임은 ‘명예회복’과 ‘마지막 봉사’를 이루고 싶다는 본인 의지에서 비롯됐다. 그의 부활조짐이 보이자 숨죽였던 ‘대우맨’들도 힘을 보태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대우그룹의 옛 영화를 다시 되찾아 보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경제의 불안과 김 전 회장의 건강문제가 걸림돌로 남아 있다. 김 전 회장은 최근 담석증이 도져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간단한 시술을 받은 뒤 회복치료를 계속하고 있다. 또 심장병도 완쾌되지 않은 상태여서 곧 미국에서 정밀검사를 받을 예정이다.

김 전 회장이 보이고 있는 최근의 움직임은 일단 경영일선 복귀시도로 풀이된다. 대우그룹이 1999년 7월 19일 해체된 지 8년 6개월 만에 보이는 행보다.

그는 최근 서울역 부근의 대우재단빌딩 18층 사무실에서 ‘대우 맨’들과 수시로 접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경제계에선 그가 부활을 위해 물밑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꿈틀거리는 용’ 김우중

그는 또 국내·외 금융권인사들과도 자주 접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금 조달문제를 타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도는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측근들은 “아직 구체적인 건 아무 것도 없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은 부활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빠르면 다음 달 중순 ‘김우중 부활 프로젝트’가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김 전 회장이 부활을 준비하고 있는 정황은 그의 일과에서도 잘 드러난다.

사면 전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집과 병원만 오갔으나 최근엔 대우재단빌딩 사무실에 출근하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출근하는
날엔 이동호 대우자동차판매 사장, 장병주 전 ㈜대우 사장, 강병호 전 대우자동차 사장 등 ‘김우중 친위대’로 알려진 인사들도 이곳을 찾는다.


해외순방 통해 부활하나

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안에 대해 논의하는 지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측근들 입을 통해 직·간접으로 확인되는 내용을 종합해보면 대우의 옛 영화를 되찾기 위한 일련의 움직임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측근들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국내·외 자금흐름을 주목하고 있다. 이장호 부산은행장 등 국내 금융권인사들과 연쇄적 만남을 갖고 펀딩(자금동원)이나 해외자금조달 환경 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이처럼 ‘부활’하려는 표면적인 이유는 국가에 대한 봉사다. 경영실책으로 국가경제에 엄청난 피해를 끼친데 대한 속죄차원에서 일을 꾀한다는 것.

그는 최근 “개인 비즈니스가 아닌 국가적 사업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다. 과거 대우가 일궈낸 해외네트워크가 있어 투자자금만 모을 수 있으면 가능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 어떤 ‘봉사의 기회’가 주어질 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우선 김 전 회장은 해외사업을 통해 국익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 3~4월께 베트남 등지로 나가 현지에서 건설 사업에 나설 것으로 전해졌다.

대우자판의 이 사장은 지난달 29일 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 전 회장이 지난주 ‘설이 지나면 다른 나라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중국, 미국, 베트남 등을 돌며 사업 감각 회복에 힘쓸 것으로 안다”고 말해 경영일선 복귀를 시사했다. 그러면서도 이 사장은 “김 전 회장은 뭘 하겠다. 어떻게 하겠다 등의 말은 안 한다”며 억측을 경계했다.


사업위해 글로벌 인맥 활용

특히 베트남 하노이신도시 건설프로젝트 입안자로 지금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김 전 회장은 귀국 전 베트남에 머물면서 그곳의 국토개발사업을 자문해 왔다.

여기에 김 전 회장은 베트남정부로부터 하노이 인근 수백 만 평의 땅에 대한 독점적 이용권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베트남과 연계한 사업을 이룰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김 전 회장의 측근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최근 글로벌시장의 자금흐름 및 파이낸싱 등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에 그가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카자흐스탄 등 과거 대우가 명성을 날렸던 동유럽과 CIS지역에서 에너지개발 및 금융 사업으로 재기를 꾀할 수도 있다.

김 전 회장이 이처럼 해외 쪽에 관심을 쏟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지구촌 곳곳에 포진해 있는 그의 인맥 때문이다. 측근들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해외의 현직 국가원수급 인사들 수 십 명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그들의 정책결정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것.

대우그룹 시절 김 전 회장을 가까이서 보필한 백기승 전 홍보이사는 “일단 국내ㆍ외 지인들의 의견을 폭 넓게 들은 뒤 시간을 두고 사업재개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김 전 회장은 오는 3월 22일 대우그룹 창립기념일 행사 때도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은 대우그룹 모태인 대우실업 창립기념일로 대우출신 임·직원들이 매년 공식모임을 갖고 있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 40주년 기념식 때 편지를 보내 “대우의 영광을 지속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대우맨’들 모임인 ‘우인회’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이 이번 행사에 참석, 전·현직 임·직원들과 공식적으로 만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 전 회장이 이 행사에 참여할 경우 이 자리에서 어떤 말을 할지도 관심사다.

그러나 일부에선 김 전 회장의 부활이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고령으로 건강문제가 걸려있는데다 사업을 위한 국내 기반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새만금사업 참여 가능할까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대우자판의 지원과 부인(정희자씨)이 운영하는 아트선재센터, 아들인 선협씨가 대표로 있는 아도니스골프장 정도다. 때문에 그가 큰 사업을 벌이기엔 무리가 따를 것이란 지적이다.

한편 재계 일각에선 김 전 회장이 새 정부의 새만금개발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것을 계기로 부활의 나래를 펼 것이라 보고 있다.

강현욱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새만금태스크포스(TF) 팀장은 “지난 22일 오후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김 전 회장이 ‘새만금이 잘 개발되면 좋겠다’면서 ‘기회가 되면 조언을 해드리겠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 전 회장이 새만금사업을 통해 복귀하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김 전 회장의 한 측근은 “김 전 회장은 비단 새만금 뿐 아니다. 여건이 되면 국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많은 사업들에 봉사하고 싶어 한다. 새만금사업 참여도 그런 맥락에서 한 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전 회장 복귀를 두고 반대 여론이 곳곳에서 일고 있어 이 역시 걸림돌이다. 특별사면 되자마자 자성의 시간도 갖지 않고 곧바로 제기를 노리는 것은 성급한 행동이라는 것.

또 사면 전엔 지병을 이유로 형집행정지 상태에 있다가 사면이 되자 곧바로 건강한 정상인으로 돌아오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란 비난도 나오고 있다.

추징금 24조원이란 무거운 짐을 진 김 전 회장이 부활에 앞서 국민적 비난여론을 과연 어떻게 잠재울 것인지, 또 재기를 위해 어떤 과정을 거칠 것인지가 궁금해진다.


#경제계 활약 중인 ‘대우맨’들은 누구?

대우그룹이 해체된 지 올해로 9년째를 맞았지만 ‘대우맨’은 여전히 살아 있다.

주요 기업의 대우출신 최고경영자(CEO)는 20여명.

증권업계와 건설업계, 중공업계, 무역업계 CEO에 대우출신이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대우출신의 현직CEO는 증권계에 김 전 회장의 직계라인으로 꼽히던 박종수 우리투자증권 사장을 비롯해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김기범 메리츠증권, 진수형 한화증권 사장, 황건호 한국증권협회장이 있다.

추호석 파라다이스 대표이사, 정성립 대우정보시스템 사장, 박세흠 대한주택공사 사장, 김현중 한화건설 사장, 이승창 대우일렉 사장,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 강영원 대우인터내셔널 사장, 윤영석 두산중공업 부회장, 서종욱 대우건설 사장, 김기동 두산건설 사장, 최재범 메디슨 대표 등도 대우출신이
다.

그러나 ‘대우 맨’이란 간판아래 뭉쳤던 이들의 결속은 이젠 느슨해져 있는 상태다.

3년 전 만들어진 김 전 회장과 대우의 추억을 나누는 인터넷사이트는 없어졌다. 또 젊은 옛 대우직원 일부가 만든 세계경영포럼 등도 활동이 뜸하다.


##김우중 전 회장, 대우자판 명예회장으로?

김 전 회장이 해외순방을 계획하는 등 부활의 신호탄을 쏘자 경제계 일각에선 대우자동차판매가 김 전 회장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할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대우자판의 이동호 사장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또 김 전 회장이 사면되자 한껏 고무된 대우자판의 내부 분위기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대우자판은 김 전 회장의 사면소식이 전해지자 전 대리점에 피자를 돌리며 일제히 축하파티를 벌였다.

대우자판 관계자는 “대우자판은 유일하게 독립기업으로 남아 대우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때문에 직원들은 짐 전 회장이 대우자판을 통해 경영일선에 복귀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활동의 바탕이 없어 대우자판을 이끌 가능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대우자판은 대우그룹이 은행권으로 소유권이 넘어갈 때 유일하게 남아 대우의 명맥을 잇고 있는 회사다.

이 점을 감안하면 김 전 회장이 대우자판에 적을 두고 ‘대우 부활’을 꾀할 가능성이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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