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젊은 피 수혈, 3세 경영 본격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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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는 올해 들어 3세 경영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릴 것으로 보인다. 주요 그룹들이 연말 인사를 통해 그룹 오너 3세를 전진 배치했기 때문이다. 창업세대
의 후광에 의존한다는 일부 시민단체 등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3세 경영인들의 적극적인 행보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삼성그룹이 이건희 회장체제에서 이재용 전무체제로 신속한 전환을 추진 중이다. 비자금 의혹 삼성특검이 이 회장에서 이 전무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현대가도 과거 몽(夢)자 돌림 2세대가 아닌 선(宣)자 돌림의 3세 경영인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 등이 전면에 나섰다. 두산가도 3세인 박용만 회장이 경영 일면에 나서면서 공격경영을 선언했다. 한진그룹도 조양호 회장의 손자손녀들이 모두 임원으로 등극해 젊은 피가 수혈됐다. 일부 그룹은 3세 경영을 넘어 4세 경영이 예고되고 있다.

현대기아차그룹이 3세 경영에 시동을 걸고 정의선 사장의 진두지휘 아래 세계의 명차들과 경쟁한다는 포부로 프리미엄급 신차발표 등 공격적인 행보를 펼치고 있다.


현대백화점도 3세 정지선 체제

현대백화점그룹도 지난해 12월 정지선 부회장을 회장으로 파격 승진 발령했고, 한진그룹 역시 3세 후계구도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대한항공 상무는 최근 상무B(한진 측 기준으로 상무를 A, B로 구분)에서 상무A로 승진한바 있다. 또 조원태(32)
상무보는 상무B로 승진했다. 조 상무는 지난해 31살의 나이에 고속승진 해 한 취업정보업체 조사결과 주요그룹사 최연소 임원으로 뽑히기도 했다.

한편 조 상무A의 남동생인 조원태 대한항공 상무B 또한 장남으로 경영수업이 한창이다. 조원태 상무B는 2004년 대한항공 차장에서 부장으로 승진하면
서 입사한 후 3년 만에 임원으로 초고속 승진하며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조원태 상무B는 한진 계열사 유니컨버스 대표이사도 겸하고 있다. 또한 막내딸인 현민 씨는 LG애드에서 광고 업무를 담당하다 지난해 대한항공 광고선전부 과장으로 자리를 옮겨 경영수업이 한창이다.

이어 효성그룹도 3세들이 경영일선에서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유통전문 동양과 애경도 관심사

조석래 회장의 세 아들 가운데 첫째는 조현준 사장이다. 또 차남 조현문씨는 중공업PG 부사장으로, 막내 조현상씨는 전략본부 전무로 경영일선에 참여하고 있다.

그 밖에 신세계 정용진(40) 부회장은 일찌감치 경영일선에 참여했다. 1995년 전략기획실 대우이사로 경영수업을 시작한 정 부회장은 기획조정실과 경영지원실 등 핵심부서를 거쳐 부회장으로 승진했으며 현재 신세계의 차세대 CEO로 등극할 일만 남겨두고 있다.

1972년생인 정지선 회장은 그룹 총괄부회장으로 승진한 지 5년 만에 만 35세의 나이로 그룹의 수장이 됐다.

정 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3남인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2001년 현대백화점 기획실장 이사로 입사해 기획관리담당 부사장을 거쳐 부회장직을 맡아왔다.

이번 인사로 2003년 2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부친인 정몽근 명예회장에게서 네 차례에 걸쳐 지분 17.1%를 넘겨받아 최대주주가 된 정지선 신임 회장에 대한 경영권 승계 작업이 공식 마무리됐다. 그는 지분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증여세 1700억 원을 국세청에 납부하기도 했다.

두산그룹은 형제간 분쟁 이후 지주회사 전환을 결정하고 5남인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체제로 본격 전환했다.

박 회장은 2007년 국내 기업의 해외 인수합병(M&A) 역사상 최대 규모인 49억달러를 들여 밥캣 등 미국 잉거솔랜드 3개 사업부문을 인수했다.

밥캣 인수는 단순히 ‘최대’라는 수식어를 넘어, 국내 기업이 세계 M&A 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밥캣 뿐 아니라 박용만 회장은 두산그룹 인수합병 행보를 사실상 진두지휘해 왔다.

박 회장의 향후 행보는 추가 인수합병과 두산인프라코어의 경쟁력 강화에 모아져 있다. 두산이 새해 국내 시장에 매물로 나올 굵직한 기업의 인수에 성공할 경우 그의 위상은 더욱 강화될 수도 있다.

그동안 재계에서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1981년 29세에 그룹 회장을 맡았고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외아들인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1999년 37세에 회장직을 물려받는 등 20, 30대 젊은 회장이 몇 차례 나온 적은 있지만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대기업 오너 일가의 3세 중에서 그룹
최고 지위에 오른 사례는 정 회장이 최초다.

올해 36세인 정 회장의 CEO 승진은 이른 감이 있지만 유통업계에서는 젊은 피를 중심으로 신세계와 롯데라는 양대 유통그룹과 경쟁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정 회장의 동생 정교선 전무는 지난해 2월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정 회장과 신동빈 롯데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채동석 애경그룹 부회장 등 ‘유통업계 4인방’의 자기 색깔 내기가 한층 속도를 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자녀들 모두 같은 그룹 근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상무는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후 1999년 대한항공 호텔면세사업본부를 시작으로 경영에 참여했다.

이후 2002년 호텔기판사업본부 기내판매팀 차장, 2005년 상무보, 지난해 상무B로 승진했다.

특히 조 상무가 기내식 사업을 맡으면서 대한항공이 본격적인 명품 항공사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그는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국제적 감각을 갖춘 예비 CEO로 주목받고 있다.

다른 대기업 3, 4세의 승진 여부도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

사원으로 입사한 지 3년 만인 지난해 12월 전무로 초고속 승진을 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장녀 정지이 현대U&I 전무는 전무 직함을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동양그룹은 현재현 회장의 외아들인 승담씨가 지주사 격인 동양메이저 차장으로 입사했다. 이로써 장녀, 장남, 차녀 등 1남 3녀 중 세 자녀가 동양그룹 계열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장녀 정담 씨는 동양매직 차장으로, 차녀 경담씨는 동양온라인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올해 세 자녀에 대한 승진 인사는 없다.

한편 애초 이건희 시대 20년을 맞아 지난해 인사를 단행할 것이라고 예상됐던 삼성그룹은 정기 인사가 불투명한 상태다.

이재용 전무체제로 전환을 진행해왔으나 애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등 지분 확보과정의 편법 시비로 어려움을 겪은 데다 삼성특검에서 에버랜드 미술품 은닉 의혹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 당분간 내부 단속과 함께 국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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