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 감시시스템논란

한국타이어 노동조합이 근로환경개선을 요구하며 대규모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국내 최대 타이어회사인 한국타이어가 끊이지 않는 악재에 몸살을 앓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 나오는 대형 악재에 굿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불과 1년 반 사이에 14명의 한국타이어 노동자가 줄줄이 주검으로 실려나간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최근엔 현장근로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 관리·감독하는 시스템이 사내에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말 그대로 설상가상에 엎친 데 덮친 격. 첩첩산중에 빠진 한국타이어의 현 상황에 대해 살펴봤다.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을 배경으로 두 편의 미스터리영화가 연이어 촬영됐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두 영화에 굳이 제목을 붙이자면 ‘한국타이어 줄초상 괴담’과 ‘현대판 몰래카메라’ 다.

영화줄거리는 매우 암울하고 비극적이다. 전편인 ‘한국타이어 줄초상 괴담’의 경우 불과 1년 반 사이에 14명의 한국타이어노동자가 사업장에서 의문사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암으로 죽어나갔다는 것. 국내 대기업 공장에선 보기 드문 ‘떼죽음’이다.

후속편 ‘현대판 몰래카메라’는 전편에서 보여준 ‘의문사’에 대한 답이 들어있다. 한국타이어 근로자들이 짧은 기간 줄줄이 시체로 실려 나갈 수밖에 없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생리적 현상까지 통제

한국타이어 신탄진공장 자동차용타이어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A씨는 요즘 회사 다니기가 겁난다. 회사가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수시로 확인, 중앙관리시스템으로 보고되기 때문이다.

A씨는 “내가 얼마동안 자리를 비웠는지 일일이 체크되므로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점심시간이라고 해봐야 고작 30분인데 다들 경영진의 눈밖에 나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하다보니 10분 만에 식사를 해치운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한국타이어 생산부서는 타이어재료의 수급현황과 기계의 고장여부, 생산량 등을 점검하는 생산지원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일명 ‘다스’라고 불리는 장치를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족쇄라고 주장한다.

‘다스’라 불리는 이 모니터엔 노동자 한 명이 하루 만들어내야 할 목표 타이어 개수와 분 단위 생산량 등을 쉴 새 없이 점검한다는 것.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갈 때나 담배 한 대를 피우러 갈 때, 심지어 화장실 갈 때도 반드시 ‘다스’라 불리는 이 시스템의 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게 한국타이어 직원들 설명이다.

이와 관련, 또 다른 직원 B씨는 “다스버튼을 누르지 않고 자리를 비우면 팀장한테 욕을 먹는다. 특히 나처럼 생산량 달성률이 낮은 직원들은 눈총을 많이 받다보니 아예 화장실을 자주 안가도록 습관을 들였다”며 그동안의 불편함을 호소했다.

그는 이어 “다스 덕택인지 우리가 경쟁업체보다 직원은 적은데 생산량은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회사쪽에선 효율성이 높다고 좋아하겠지만 직원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극에 이른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직원 C씨는 “3분 이상 기계를 멈추고 자리를 비우면 중앙통제실에서 ‘왜 기계가 멈췄느냐’며 생산에 대한 압박까지 준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빅 브라더’의 감시를 받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나 생산지원시스템과 관련, 한국타이어 쪽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기계가 멈추면 고장이 나서 그런지, 아니면 직원들이 밥을 먹으러 가서 안 돌아가는 건지 원인을 확실히 파악해야 하지 않겠느냐. 생산량관리는 다른 공장에서도 하고 있다. 공장 효율성을 위해 종합생산관리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의문사와 상관관계

이런 사측의 해명에도 ‘다스’에 대한 부정적 견해는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다스가 직원들의 업무적 스트레스를 가중하고, 더 나아가 잇단 돌연사에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의 의문사를 연구해온 을지대병원 산업의학과 오장균 교수는 “사망근로자들의 노심혈관계 질환에 높은 노동 강도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한국타이어 대전·금산공장 직원들의 경우 근육·심장질환이 생기면 증가하는 근육손상지표(CPK)지수가 27%로 나타나 12%인 연구소직원들보다 배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숨진 공장근로자들의 경우 근골격계에 부담이 되는 작업을 되풀이 왔다. 대부분 교대근무와 연장근무 등으로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려온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정계 또한 한국타이어의 이 같은 운영 실태를 그냥 보고만 있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노동당 이지안 부대변인은 “이명박 당선인의 사돈이 운영하는 회사라 그런지 감시시스템이름도 ‘다스’라고 한다.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를 봐야하고 점심식사도 10분 안에 뚝딱 해치워야 하는 노동자들 현실을 생각하니 아찔한 현기증마저 밀려온다”고 지적했다.

이 부대변인은 이어 “일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이런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회사 쪽 해명은 악랄한 자본의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며 노동자 인권유린의 상흔을 더욱 짙게 하고 있다. 더욱이 불과 일 년 반 사이 한국타이어에서 14명의 노동자가 돌연사한 것을 생각해볼 때 이런 감시시스템이 돌연사에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심증을 더욱 굳히게 한다”며 진실규명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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